2005년 미주문학 캠프에 다녀와서 / 강학희

2004.07.29 13:32

강학희 조회 수:199 추천:13

2005년 미주문학 캠프에 다녀와서 / 강학희

2005년 미주문학 여름캠프 날자가 8월20일로 잡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이번에는 갈 수가 없겠구나." 했던 건 그 날이 바로 남편 귀빠진 날이기 때문이었다. 동행하기로 한 시인님께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말씀드리며, 날짜도 그렇고 또 같은 교수님들이 오신다는데...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니, "글쎄,내 생각엔 오히려 같은 교수님이 오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애. 작년엔 개론을 하셨으니 올해엔 분명 좀더 깊은 말씀을 하실 것 같은데..." 사려깊으신 선배님 말씀을 듣고보니 공감이 간다. 허지만 역시 날짜가 마음에 걸려 아들 내외와 큰 조카에게 전화를 걸고 사정을 얘기하고 어떻게 할까? 물었더니 걱정 말고 다녀오시라고 자기들이 깜짝 파티를 할테니 아무 염려 말라고 등을 민다.

마침 사정을 알기나 한 듯 한국에서 남편의 제일 친한 친구가 8월20일 온다고 전화가 와서 8월21일날 서로 골프 라운딩을 약속하니 부담없이 다녀와도 될 듯해서 그냥 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이티켓을 구입하려 첵크해보니, 어이쿠! 그 사이에 가는 날의 표는 괜찮은데 돌아오는 날, 일요일 밤 비행기의 값이 떠블이 넘는다. 그래도 아직 월요일 첫 비행기표는 최저 세일 가격으로 남아 있기에 저녁을 먹으며 "아무래도 토요일날 가서 월요일 아침에 곧장 오피스로 나가야겠나봐요. 일요일 표가 너무나 올라 값이 두배가 되버렸네요." 하니 두말않고 "비싸도 일요일 날 와." "돈 더내도 서로 덜 불편한 게 낫지 뭐." 라고 하지만 나는 혼자도 아니고 둘이 가는데 덥썩 비싼표를 사기도 그렇고, 차라리 조금 고생은 되도 쓸데없이 낭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인데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자기 좋을대로 해" 할텐데 이번엔 뭔가 조금 쌓인게 있는 것만 같아 "그만 둬요. 가는 게 싫으면 그만 두지 뭐." 하고 나도 몰래 볼멘 소리가 먼저 튀어나와버렸다. 늘 마음과는 달리 한발 더 먼저 나와 버리는 말, 꼭 한 다음에 후회하는 말이 문제를 야기시킨다.

결국 또 우리의 관점 차이, 조금 불편해도 절약하자는 내 생각과 내가 조금 더 내더라도 여러 사람 편하게 하자는 그의 생각이 맞붙어버린 셈이다. 아침이면 무슨 말을 하겠지 하고 컴에 입력 사항은 그대로 두고 잤지만,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데도 이상하게 아무런 말이 없는 걸 보면 아직도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사람의 심리가 참 이상한 것이 그때까지 너무나 미안하던 마음이 싸악 가시며 "그냥 편하게 가게 하지...." 토라진 심정이 되어 컴을 열고 summit에 click을 쳐서 이티겟을 사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조금은 떨떠름한 상태로 비행장에 나가게 되었는데, 새벽 다섯시에 도착하신 선배님이 선물을 내미시며, 미안하다 하시니, "아휴 난 혼자 있기 싫어 일찍 오라 한 건데..." 말 끝을 얼버무리며 슬쩍 속을 보인다. ( 에그, 미련... 처음부터 그러지, 이젠 너무 늦었잖아....)

9.11 이후에는 보통 탑승 2시간전에 나가야 하지만 경험으로 보아 로칼 비행장은 1시간 전에도 별문제가 없기에 선배님께 아침 잠 좀 더 주무시라고 한 시간 전에 나가자고 했는데...아불싸, 이게 웬 일인가... 다들 왜 이렇게 부지런한지... 겨우 패씽 보드 받아 검색대로 가니, 이번엔 더 기나긴 줄이 공항 밖까지 도대체 몇 겹줄인지 아득하다 못해 멍해진다. 마침 옆의 월남 아가씨도 같은 입장이라 누군가에게 부탁해보자고 하니 그녀랑 줄 중간쯤의 월남인 커플에게 다가가 사연을 이야기하고 우리를 끼워 줄 수 있는지 물으니 선뜻 자기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며 허락하니 넘 고맙기도 하고 뒷 사람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계속 미소를 지으며 어설프게 서서 열심히 줄을 따라갔다. 겨우 4분 전에 신발을 챙겨신고 gate로 뛰어가 트랩에 오르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든다. 아,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랴. 물론 공항에 나오는 친구는 워낙 단짝이라 얼마든지 기다릴만한 친구이긴하지만, 그래도 일정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야말로 여러사람을 다 귀찮게 하게 될 것을...

사실 마음먹기가 힘들지 떠나고 보면 커피 한잔 마시고 나면 내릴 거리인 엘에이인데...,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랑 김시인님댁으로 가니 멀리서 1시간이나 드라이브하고 오시는 박시인님, 집안 사정으로 캠프는 못가시지만 같이 식사하자고 오신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애들 맡기고 나온 고시인이랑, 이 것 저 것시켜 놓고 서로 주고 받고, 햇볕 쏟아지는 테라스에 앉아 도란도란, 까르르, 킥킥...그리움을 쏟아놓고나니 아침 결 좀 어두웠던 기분이 조금씩 개이며, 친구들, 문우들을 만나는 기쁨에 묶였던 생각에서 놓여나 떠들게도 된다.

드디어 꽃마을을 향해 제일 젊은 안시인이 운전대를 잡고, 작년 지나간 길이라 조금은 익숙한 풍광을 보며 편안히 타마큘라에 도착하였다. 이런 저런 사연을 안고 도착한 문학캠프 일박 이일 역시 작년과는 달리 아프도록 짠한 애정의 명강의를 듣고, 시인님, 수필가님, 평론가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반가운 낯익은 문우들과 달밝은 밤 여흥 까지 지내니 집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도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해 오는 길에 대접받은 점심과, 코나커피, 팥빙수까지 그야말로 따끈하고, 시원(빙수) 섭섭 몽땅 다 가슴에 꽉꽉 채워넣고 돌아오니 기다린듯 오시인님께 남편이 어제 오늘 부흥회가 있던 교회에서 앵콜 말씀이 있다고 연락을 주신다. 내가 캐톨릭인 줄 아시는 김시인님이 가만히 "같이 갈래" 하고 물으시는데 마침 나도 일요일 아침 미사도 못드리고 조금 찜찜하던 차라 교회에라도 가서 보속 기도라도 드리자는 마음에 선뜻 따라나섰다.

대형 교회의 단상 앞 뒤에 전면 스크린이 걸린 것이 성당과는 판연히 달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마침 옆자리 성도가 미주문학 소설가님이시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강연 목사님이 편안한 인상에 잔잔한 음성으로 꼭 우리 성당에 나오시는 수도사님 같은 분위기라 내 마음도 차분해지고, 특히 말씀의 시작부터 "우리의 몸은 운동을, 우리의 정신은 미소를, 우리의 영혼은 사랑한다는 한마디를...반복은 기적을 낳는다." 어,..... 내가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온 것처럼 짜릿해지며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이 자리에 오기 위해 준비 되었던 것이구나. 그제야 이 걸음의 의미가 이해되어지기 시작한다. 1.2.3.의 법칙, 한번 말하고, 두번 듣고, 세번 맞장구를 쳐주자" 언어는 존재의 집, 경험을 언어화하지 않으면 보관이 되지않는다....계속해서 해주시는 모든 말씀들이 마치 문학 강연의 연속 프로그램처럼 귓 속으로 쏙쏙쏙 들어 온다.

본인의 직업은 유통업, 학교에서는 지식의 유통, 밖에서는 좋은 말씀을 전하는유통업을 하며 전공은 모방과 표절, 은사는 했던 얘기 하고 또하기, 들었던 얘기 듣고 또듣기와 읽었던 글 두고 두고 또 읽기이시란다. 이 것은 너무나 좋은 것을 너무나 적은 사람이 알기에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소망 때문이며,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진열장 안에 넣을 자료가 창고 안에 없기 때문인 것, 계속 읽고 말하고 반응 좋은 말을 찾으신단다. 그리고 이런 유통 업을 하다보면 더욱 더 좋은 말을 배우고 간직하며, 반면에 나쁜 말의 미각을 잃어버리게 되어 스스로도 좋은 말처럼 변화되어지는 기쁨도 만나게 되는 것이라 하신다.

글을 쓰는 우리들 또한 언어 유통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삼다의 법칙을 따라 가다보면 쌓이는 데이타 안에서 절로 원리가 보인다는 것과 똑같은 말씀이 마치 문학 강의의 총정리해주시는 것만 같다. 남이 잘되기를 소원하는 사랑이야말로 단기적인 행복 뿐아니라 나아가 스스로의 성공을 이루는 사랑의 원리라, 반짝 반짝 속을 비추시는 말씀에 왜 이렇게 힘들게 월요일 아침 비행기 표를 사게 되었는지 편하지 않던 발걸음을 끝까지 밀고 왔는지...그 건 내 힘이 아니었음이 확연해진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의 계획을 다시 확인하는 감동의 전율에 지금껏 주신 것들에 얼마나 많은 원願들이 모여져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새삼 보이는 것, 들리는것, 함께하는 주위의 모든 것들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에 절로 눈물이 난다.

허나 사람의 마음은 또 얼마나 요상한지, 이런 마음을 미리 아셨는지 의지는 돌아서면 마음을 바꾼다 하신 말씀처럼 그렇게 감동으로 듣고 돌아온 좋은 말씀이 아직은 뇌 안에서 오른쪽 뇌방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기만 하는가, 나눔의 알파파 파장을 생성해 가슴까지 내려 오지 못하는가, 손을 잡고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첫마디를 선뜻 꺼내지를 못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듣고 더 묵상하며 나를 닦아내야 심心방이 열리려는지 모르겠다. 아! 평생토록 넘으려던 단단한 벽, 그 것은 바로 내 안의 이 얄팍한 자존심 한장이었구나. 이 한장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뛰어넘어 가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구나. 아마도 이번 문학캠프의 여정은 바로 이 것을 깨우쳐 주시려 하심이었던가 보다. 더 비우고 겸허히 엎드리라 하심의. 오래 전 대학에서 연극을 할 때 연출가님의 말씀이 명배우는 자신을 버리는 사람이라하셨는데 역시나 모든 근원은 같은 것을.

2005년 문학캠프 있게하심과 그 노고 위의 모든 손길 위로 감사의 정을 얹는다.
행동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감행했던 내 자신의 고집스런 반란(?)에도 등을 두드려주고싶다. 32년만에 혼자 지낸 생일의 미안함은 두고 두고 갚을 수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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