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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5 06:04

강학희 조회 수:252 추천:1

어떤 어매 / 강학희

니 어제 떠난  뒤 내 얼매나 잘 잤는가 모린다
니 오기 전  내 맴은
분탕질한 웅덩이 멩키 뿌연한기 참말 앞이 안보였는디...
이젠 말갛다 하늘이 다 비킨다
으메, 몸도 맴도 날아 갈 것 맹키 가벱꼬,

그늘졌던 웅뎅이엔 햇살까정 들어 따땃하다
그저 물이 있다꼬 달가드는 하루살이 떼를 보라카던
니 말 오래 씹다보니 내 살캉이 떨리두마,
다 아는 것도 잊아뿔고있다 니랑 말을 섞어보니 이제야
다  뵌다  아주 맑그케 다 뵌다,  참말로 니는
내게 웅뎅이를 비차는 한줄 햇살인갑다.


주치의 이메일

누구 나이를 만져 본 사람 있나요?,

나이는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나요?

한때, 푸성귀 늘어놓고 소꼽장난하던 어린 텃밭 기억하나요?
어린 신랑 각시로 돌아가 자꾸 자꾸 기억을 불러보셔요

아이로 돌아가 싱싱하게 푸르렇던 생각으로 우거지셔요

푸름과 당의 수치는 반비례한다니까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히히하하허허

실바람 웃음바람으로 채워보셔요
당신의 몸과 마음 경계를 허물어버리지요.  자, 그럼 이제,
경계없이 묽어진  가을 초저녁처럼 신선한 몸,
한닢 푸른 상추닢 같은 당신의 맛을 보시어도 좋을 때입니다

무언가가 모자란 맛, 닝닝하고  실 없는 사람 맛이지요?

세상조림을 끝낸  맛은 잔기가 없어진 맛입니다.

아- 이제, 당신의 몸나이는 몇살일까요?
아이처럼 속이 다 보이는 그런 당신의 몸시가 기다려지네요.


가보家寶에 대하여 / 강학희


친정 아버지의 본명은 프란시스코, 돌아가신 기일은 8월20일이다
그의 본명도 프란시스코 생일까지도 8월20일 대타의 운명이란다

죽기로 살아야한다고, 죽기로 따라다녀서 결혼 후 이민 온 곳이
정말로 미국 샌 프란시스코. 토끼띠 외아들은 소띠 며느리 만나
개띠 딸 하나 토끼띠 딸 하나 낳아 할아버지와 큰손녀는 개띠고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소띠고 아들과 막내 손녀는 토끼띠가 되어

쌍쌍이 식성도 취미도 생김도 이하 동 둘둘둘 편먹고 낄낄살며
속상해도 칼로 물베기가 되는 이유가 그 놈의 운명론 때문인지,

호주왈 우리 집 가보는 하늘이 내리신 불가침 타고난 운명론이다.


넋두리, 그리워서 더 그립다 / 강학희


떳다,
떳다 비행기가, 저 비행기는

고픈 배에 꿈만 잔뜩 먹고살던 우리 베이비부머*들에게는
따.따.따. 콩볶듯 불만 질러놓고 가던 비행기만은 아니다
동무들과 불탄 막대기를 들고 산으로 들로 다니다
떳다 떳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신나게 목청으로 따라가던
비행의 꿈이다.

배터지게 이밥먹는 일보다 비행기 한번 타보는 게 젤로
큰 소원이었지만,

애들은 자고나면 어제는 잊어버리고 또다른 내일을
꿈꾼다 눈 앞에 떠서 날아가는 신천지만 보인다
신천지 아메리카로 아메리카로 날아라 날아라 비행기를 타고 온 곳,
십년 십년 또 십년을
아직은 아직은 꿈은 뒷 주머니에 꾹꾹 누질러놓고,

애들아, 우리 어릴 때는 비행기 한번 타보는 게 꿈이었지
땅콩크림 바른 토스트에 오렌지 주스 한 잔은 성찬이었지
지금, 미국에서 곰탕 한 그릇에 깍두기 한 보시기 같은,

어딜가도 비행기를 타야하는 큰 땅덩어리에서 희망도 얼픗 배가 부른지
옛맛도 잊어가고 옛얼굴도 가뭇하고 사라진 비행기꼬리에 남겨진 한 줄
비행기구름처럼 옛시간도 희미하다 그러나 늘 비행기는 다시 뜨듯 그,
시절 돌아온다면, 아-
배터지게 빵먹고싶다는 생각보다 가슴 쁘듯한 사랑이나 해볼 걸  
떠나기 오기 전 친구랑 몇날 몇일 뒹굴며 추억이나 더 만들 걸

지나 간 건 지나,
가서 더 생각나고 지금은 지나 갈 걸 알기에 지나기도 전에
더욱 더 아릿하고
그 때 그 이야기 나눌 사람 하나 둘 사라지고나면 넋두리는 누구랑 나눌까
옆에 있어도 그리웁단 말이 새삼 가슴을 친다.

*베이비붐 세대(Baby Boomer):전쟁 후 태어난 사람들로 나라에 따라 연령대가 다르다.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이후 1965년 사이 출생한 사람들.

작은 시인 / 강학희

내 마음을 아는 걸까

제 집으로 떠나는 4살박이 엘리스
꼭 껴안으니 눈물을 똑 떨군다

차문을 열고 들어 가다 뛰어 와
내손을 잡고 차앞으로 데려간다

[할머니, 자동차도 나랑 똑 같은가봐, 봐요! 눈물나는 걸]
이슬이 또륵 또르륵 흐르는 차창를 보이며 제 마음과 같단다
헐, 사물에 나를 이입시키는 일은 밤새 끙끙대도 어려운데
이 어린 눈은 세상 만물이 다 제 마음이로구나

보는 것의 마음이 다 읽히는가 보다

아, 부디 저 어린 맑은 눈이 그대로 맑도록
우리가 사는 세상 상처내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작은 시인이 손을 흔들며 간다
나의 이기적인 세상눈을 씻기고 해맑은 작은 시인의 눈을 달아주고간다



사랑은 내리사랑일 밖에 / 강학희


나의 할머니는 늘 바늘을 들고 사셨다
할머니의 바느질로 집안은 늘 고루고루 반드르르하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쳐진 어깨를 땡겨주시고
고모의 벌어지는 입을 함초롬히 꼬매주시고
엄마의 나달한 허리를 찝어 가뿐히해주시고
손녀의 손가방 툼새도 꼬깃한 배춧잎으로 메워주시고

할머니는 좀처럼 입은 여시지않고
묵묵 손으로 말씀하신다
말보다 손길로 다독 다독, 따복 따복, 할머니 바늘은
늘 바쁘다 땀.땀.땀. 할머니의 침뜸으로 봉합된 자리
이어지고 아물어져 서서히 꾀메인 자리조차 잊힌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할머니의 가늘한
허리는 겹겹 치마끈에 묶여지고 드난다난 할머니의
열손가락은 뉘일 시간조차 만나지 못한다

할머니가 지쳐누우셨을 때 누구도 뽑아드리지 못한
적삼에 꽃혔던 바늘 끝내 칠성판 앞에서야 뽑히고
찬바람 막아주던 바지런한 손 마침내 가지런해졌다

나 죽으면 가슴을 열어보아라 하신 말씀 한마디는
시꺼멓게 타서 숭숭 뚫린 할머니의 훤한 가슴인가
어느새 손녀가 할머니 가슴이 되고 보니 겁이난다
바지런한 바늘이 되어 주지못한 값은 어찌 하려나

그래도 이제 하나는 안다 소리없이 웃으면서 대신
기쁘게 기워갚으려는게 할머니 마음이란 걸
근데, 이 사실은 할머니가 되어야 알게되니 사랑은
역시 내리 사랑일 수 밖에 없는가 보다.

바람에 대하여/ 강학희


바람이 분다
바람은 숲을 깨우고 바다를 건너
창을 두드리며

온다 바람은
제형체도 제소리도 없이 만남을
소리로 남기며

채운 것은 채운만큼
비운 것은 비운만큼 그 만큼의
몸짓만으로,

잘 지냈느냐고
세상길로 오시는 님의 손길로
바람은 그저

제 바람결로
힘든대로 아픈대로 틈틈새로
말만 전하고 자리 없이 간다

바람이 가고나면,
뻥뚫린 가슴으로 다시 일어설
힘이 솟는다



동병상린, 참 춥다 / 강학희


어디를 둘러 보아도 십년 가뭄처럼
몸도 마음도 생각도 목마른 오늘
나름 옳다고 고집하던 노숙자엔
작은 도움이 더 도움 되지않는다는
고정 관념을 엎어버리고

따끈한 스프라도 한 사발 마시길
진진한 마음을 얹어주며
어디서 시작되었든 우얀동 제발
잃어버린 길목 만나기를

갈팡 질팡 제 자리 찾지 못하고
몸따로 마음따로 허우허우
노숙하는 마음도 만나기를

자고나면 뺏고 쏘고 죽고 죽이고
뉴스없는 새상이 얼마나 그리운지
뉴스보다 눈감고 기도하는 일
하 많아 참으로 처참한 날

노숙자가 노숙자만의 일인가
참 일없다 가슴을 휑하게 훓고가는
바람, 바람, 바람, 참 춥다
따슨밥 한끼 먹어도 목메이고,



서재 밖 풍경 / 강학희

굳은 허리 두드리며 집으로 찾아드는 시간
어둠이 사르르 내리는 산등성에 하나 둘 불빛 돋는다
별들이 이 집 저집으로 가만가만 내려앉듯,

모락모락 불빛이 익어가고 이야기 속에
하르르 번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별빛 닮아가는 눈빛
엄마의 토닥임으로 사르르 잠드는 지상

서재 창 밖으로 보이는 잘익은 저녁 풍경
별들의 소리 없는 노래에 훈훈한 지상의 저녁녘은
보기만해도 평안한 잠깐 사이 내일이다,

생각해보면 잘익은 저녁 풍경 한 조각이 행복인데
생각없이 잠자리에 눕기가 왜 이리 어려운가




꽃마음 / 강학희

동지 섣달에 활짝 눈떠버린 진달래 보다가, 곁불처럼 발그레 피어난
분홍 꽃잎파리 미치도록 이뻐서, 그래 한번은 미처볼만은 하지 끄덕,

미치고싶어도 미치지못하는 철든 내 마음 슬쩍 미안해지다가 들키고
싶지가않아서, 왜 때도 모르는 거야 한마디 살짝 걸쳐놓고 몇날몇일
꽃질까 꽃질까 모진 바람에 아니 아니 어째 꽃깔 모자라도 씌울까나,


시작법, 외로움을 긁다 / 강학희


언제부터인가 간절함이 사라지고
그날과 이날이 같아지고
구태여 안과 밖 나름이 무너지고
부터,

온몸이 가려워 가려워 너무나 가려워
몸서리치도록 너무 가려워 가려워서,
알수 없는 간절함으로 간절 간절하게
긁고 또 긁다가

진저리치도록 껍데기 다 벗어지도록
간절간절히 긁다
밤새 솟았다 아침이면 가무룩해지는
발긋 빨긋한 두드러기 속을 보았네

시인의 가렴증은 간절함이 빠져나간 허망,
긁다긁다보면 무엇이
간절한지 알아진다는 별난 처방, 시인의
가렴증은 솟지못한 글자의 외로움이라는,
진단이 참말이었네

지금 나는 전신이 외로움에 감긴 붉은
한마리 벌레, 오롯 나혼자만의 나이다
온밤 간절로 밝히고 가려운 허물 벗을 때까지 발정난 수만개
촉수로 한밤을 기어 가려움을 요리할 애벌레,아,발진한 진물,
외로움의 숙취만 붉을 아침이여!

그 아침의 전율이여! 온몸에 두드러기 문자반점으로나마 부디
내게 오시길! 불나방 내 詩여!


노을 / 강학희



발갛게 속타는 가슴

애닳아 애닳아 붉고 또 붉어지다가

끝내 사랑은 다 태우고

푸석하니 겁붉은 불탄 자국만 남은

저 것은 뉘 가슴인가

저 자리는 뉘 자리인가

선혈 쏟은 어느 시인의 피멍인가



새들도 아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을까 / 강학희



가로등 위
쪼르륵 여섯마리

맨 앞 한마리 바싹 고개들고
두리두리

뒤의 다섯마리 다닥다닥붙어
고개묻고 잠들고

고개에 얹힌
앞자리 란 무게 참 빳빳하다

뒤의 무리를 위해 고개 세운
저 새도 알고 있는

저 자리의 제몫을,

내가 사는 미국과 내가 살던 한국의 대선
그 선두주자들도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만큼의 이자리
너무 감사하고 미안해서,
정말 너무 많이 미안하고 감사해서,

따르는 무리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따르는 무리 얼마나 사랑해야하는지

알고 있을까 정말 알고 있을까

새들도 알고 있는 걸 그들도 알고 있을까

-2012 11월 5일-





다 내 탓이다 / 강학희

선산지기 육촌 아제는

살아생전
친정아버님께 땅마지기 받아
대대로 그 산아래에서
선산을 지켰다

떠나가신
친정 아버님묘까지
대물린 아제의 아들내외는
때되면 벌초하고 떼 입히고
바람막이하는데

헬 수 없는
귀한 몸 받고도  
자식들은 다 물건너 남의 나라에서
미사전이나 올리며 재당숙아제의
당연한 효도나 믿는다

가지 않음을 가지 못함으로
위로하면서

효도는 효도한 사람의 복락이랴,
후제에 어찌 얼굴들고 서려는지
부끄러움 알면서도
태평양 쉬이 건너지 못함은
뉘 탓이겠나,


장대비 뚫고가는 노란나비 한마리 / 강학희

축, 처지는 무거운 날개
깃을 세워 빗살보다
더 빨리
파락파락 필살로 날아가는
노란나비 한마리

누가 감히
빗속이라 울음 울 수 있겠나,


끝까지 열심히 / 강학희

보슬비에 젖은 흰 꽃잎 하나
차창에 딱붙어 파닥파닥파닥

놓는다는 것 저리 힘든데...
부고는 왜 이리 자주 오나

하얀 꽃 하나 무슨 말 남았나
손 놓치 못하고 파닥파닥파닥

진땀에 젖어서 입 부르트도록
힘들게 힘들게 파닥거리는 말

끝까지 열심히 오로지 끝까지
더욱 더 열심히,


희망사항, 무아지경 / 강학희

이즈음 집사람이 하는 걸 보면
답답하기도 어이없기도 하지만
한번쯤 눈을 질끈 감기로 한다
두번에 한번 침묵하기로 한다

정신 없어?, 어린애 같어 반복,
반복하면 있는 정신도 나갈 것 같아
지금보다 더 어린애가 될 것만 같아

하잖은 말이라도 자꾸만 하면
그 말이 씨가 된다지 않던가
나이먹으면 아이가 된??�� 않던가
말씨를 다듬으며 나를 달랜다

이즈음 집사람이 하는 걸 보면
가슴이 아파 더 홧소리가 나지만
고개떨구고 가슴을 들여다본다
두번에 한번은 말씨를 숨기며
두번에 한번 삼킨 말씨가 숲을 이루길
너도 없고 나도 없는 無我之境
말없이 걸어도 다 통하는 나我무無숲,


희망사항, 띄엄띄엄 쉬엄쉬엄 / 강학희


요즘 상세히 보고 상세히 들으면
내 속이 내 속이 아니다
눈감고 귀닫고 혼자 중얼중얼하다

종종 띄엄띄엄보고 띄엄띄엄듣고
띄엄띄엄하니 얼쩡한 내가 웃긴다

띄엄띄엄 보다, 띄엄띄엄 듣다가
중얼부얼하다가 혼자 웃어보니까
근데, 세상이 훠-얼 수월해진다

안그래도 쏜살같이 가버리는 시간
잠깐 잠깐 답답한 마음 바람 쐬며
잠깐 잠깐 시간의 발목 간지르며
클클 킬킬 웃으며 쉬엄 쉬엄 가자

나쁜 얘기 띄엄띄엄 건너 뛰고서
좋은 얘기 쉬엄쉬엄 나눠 보면서
띄엄띄엄 쉬엄쉬엄 건너가보자고,


팔월 십일일 이천 십이년 공간의 공유 / 강학희


사람, 참 아름다운 책 한 권이라고
공광규시인은 아름다운 책이란 시를 썼다.

나도 오늘 참 아름다운 세 권의 책을 만나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시에게 말하고 싶다.

한국에서 오신

시쓰기 위해 아들과 성적표 공개 약속하고 주중이면 제주에서 대전으로 올라오는 엄마시인, 다문화 일꾼들에 마음 여는 따뜻한 시를 읽어주는 반도체사장시인, 흙으로 돌아가 시심을 뿌리는 농부목사시인, 바로 어제 만났다가 헤어진 사람처럼 반가운 첫 포옹으로

미국에서 만나
댄빌 유진 오닐의 생가에서 오래된 유진 오닐의 동양사상 이야기를 나누고, 해지는 저녁 글사랑하는 문우들과 한자리 이루어, 어느 시인의 또 다른 세번째 이야기 상재를 축하하며, 책 속의 책 이야기, 여기 지구상 한 권 시집 속 이야기에 눈으로 입으로 밑줄 긋고

또 언젠가 시간이 부려다 주는 그 때에
또다시 환한 눈빛 지으며 오늘, 지금, 여기를 잇던 한 공간의 노래 참 좋았었다고.

시간은 지나가는 한 순간의 열차일 뿐,
협궤 오르내리다 만나진 공간의 지금이 오늘 소유한 명작의 한 줄이 아니겠느냐고,





희망사항, 수목장 / 강학희


- 한 손에 들기 버거운 커단 레몬을 주시는 老시인, 먹고 남은 것 썩히고 삭혀 주면 이리 실하다고, 특히 삭은뼈가 열매를 실하게 맺는다고. 나도 거름통 하나 만들어 낭비심을 알뜰히 모두고 삭혀 희망사항을 키운다. -


거름통을 들여다 보면,

날 것 설은 것 무른 것
주제를 다 허물지 않은 뻣뻣한 혼돈, 냄새가 역겹다
시간 지나 그늘 머물면
밀린 것 눌린 것 터진 것
분별없이 끼어드는 들뜬열기의 혼동, 형체가 뜨겁다
시간 지나 어둠 삭으면
역겹던 냄새 역하던 모습
서로 얼키고 스며 너와 나 경계없이, 모두가 하나다

꽃나무에 거름주며 정성껏 키우다보면,

한세상 살아가는 이치 만나거니
나 아직 온전히 허물어
새콤하고도 달콤한
열매를 맺지는
못하였으나
시나브로
남은 나
허물어
섞고



나도 한줌,
훈훈한
거름






수목에 뼈가루 묻어 그 날토록 한 줌 거름되기를,



노을녁 엄마의 말을 따라가다 / 강학희


황혼을 지고 바삐 돌아가는 사람들 속
옴폭, 작달막한 할머니
반토막으로 꼬부라진 채 걸어간다

한팔은 지팡이를 한팔은 허공을 잡고
곱사등처럼 볼록한 작은 구릉을 밀며

간간 쪼그라든 자궁이 흘러내??쩝�
아랫도리를 추스대며 우물우물 가는

아- 이 저물녁에야
저 삭아가는 등성이 눈에 들어오는지, 곱은
저 등판에 얼굴을 묻고싶은지 등을 대고싶다

저 구릉엔 얼마나 많은 발걸음이 지나갔을까
휘고 굽은 굽이는 아직도 뉘 그리운 이 있어
다 저물녁 고물고물 달 가듯 저물어 가는지,

아- 나는 얼마나 무거운 어머니 등짐이었나
저 숨가뿐 구릉을 누지른 내 육중한 욕심은,

한번도 제 때 업혀보지 못한 채 가신 어머니
눈 앞 새끼 따라가듯 허우허우 허공을 짚고
어릴적 내 걸음마 걸음으로 저녁을 넘어간다

노인이 되면 아이가 된단다 그 때 업어다오
다 늦은 저물녁에 뼈아픈 엄마의 말을 업고

뒤둥뒷둥 앞서가는 등판을 따라가 포옹하면
천진한 눈빛, 환한 아이 웃음 번질 것 같아
그늘진 등성 아주 오래 밝아질 것만 같아서,



잃어버린 것들 / 강학희


때론 지금도 눈을 감으면 부산 피난 시절, 대청동 메리놀수녀원 언덕에서 바라보던 국제시장의 불구경이 생시처럼 생생하다 국방색 담요를 뒤집어 쓰고 덜덜 떨면서 보던 짜릿하고 무섭게 치열하던 밤의 불꽃, 태풍에 이리저리 입을 벌리던 시뻘건 화염은 춥고 배고픈 시절, 내가 본 그 어떤 불꽃보다 뜨겁고 붉기도 붉어 철없이 아름다운(?) 찰나로 남아있다.

오십년 뒤 메리놀수녀원은 사라지고 국제시장은 그 국제시장이 아니어도 가고싶냐는 해인수녀님의 말을 갸웃거리며 8살 아이의 두근거림으로 들어선 국제시장, 태워버린 산천도 경계도 없어진 지금 어디에도 그 살기등등하던 불꽃도 생기도, 배고픈 허리에 생生이 뚝뚝 흐르던 아귀 아귀 뜨거운 불기도 사라지고 편안함이 안주한 배부른 푸념 난무하고 있다.

석우도 춘모도 그 시절 친구 소?컥� 영영 잃어버렸어도 태풍 지나고 나눠 먹던 우수수 떨어진 뒤란의 잘익은 살구의 달큰하고 쌉쌀한 기억은 아직도 입가를 멤돌고, 타버려도 타버려도 창창하게 쏟아나던 죽순 같이 파아란 생기 아직도 생생한데, 기억 없는 메아리만 돌아온다 굳세어라, 굳세어라 부르던 부둣가 언니오빠도 영도다리 아래 푸른물로 흐를뿐이다.


희망사항, 자화상 / 강학희

1.

살짝 스쳤는데 툭 떨어져 깨진
난분 하나, 작은 흔들림에 쉬이 넘어진
멀쩡해보이지만
멀쩡하지만은 않은, 깨어져서야 보이는 실체.

그럴 듯 멀쩡히 돌아다니는
내가 만든 네안의 나는 누구인지
이리저리 떠도는 나, 말.말.말, 詩語가 머리박고
적나라한 밑바닥,

말의 뿌리는 여실히 드러나고
말과 말 사이 공백과 공백 사이 두려운 ?� 무늬,
차마 어느 눈빛도 마주 할 수가,

2.

소문의 입구를 빠져나와, 면구함과 모호함 사이
수많은 나 사이 무엇을 [수정] 클릭해야 하는지,
작은 말뿌리 하나라도 잡으려
나와 나 사이 그 너머 네게로
뭉클하기도 메마르기도한 말과 말 사이 얼크러지는,
눈.눈. 빛.빛. 눈빛 사이 방황과 방황 사이

끝내, 작다는 게 치부는 아닌 듯
깨진다는 게 막무가내는 아닌 듯
그저 볼 수 있음이 다행인 듯, 머리숙은 눈빛으로

한낱 물상이랴 교감하지 못했던 나와
무심을 탓하는 나 사이, 나와 시詩사이
다시 발아 될 속뿌리 있기를
오래 떠난 여린 나도 살찐 詩도 돌아오기를,

깨어진 화분, 깨어진 내 속에서 나를 보며 희망한다


DNA 줄기세포의 끈 / 강학희



그늘진 곳에 더는 크지 않는 나무
한쪽으로 벌렁 기운
꽃도 열매도 벌 나비도 오지 않는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하는 나무

곁의 고목 버팀대로 아침으로 밤까지
흘러내리는 가죽을 벗기고 벗기고
추스리고 추스리고 또 추스리며
다만 쓰러진 몸을 세우기 위한
보살핌이 삶의 목적인 늙은 가죽나무

허리굽은 구순 어머니와
풍맞고 이혼한 칠순아들

찌그러든 왼쪽 눈과 쪼글한 오른쪽 눈
따뜻한 시선 길게 이어진 입가
저 가늘고도 긴, 줄기의 끈


오늘이라도 한 방울 푸른 산소이고 싶다 / 강학희



숲 속 싱그런 푸르름에 가슴이 환하다 나무들이 뿜어내는 정기에 온몸의 세포 깨어난다 너는 언제 세상에 푸른 산소 한 방울이라도 보태었는지.., 그냥 공짜로 얻는 것들의 고마움, 나도 네게 무상의 산소이고 싶다.


살아가며 고맙고 소중한 이 생각날 때
오늘이라도 꼭 껴안고 살픗 웃기라도 한다면,

나, 오늘

?섶璨� 한방울 산소라도 더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먹구름 까만하늘 조금쯤 개일 수 있지는 않았을까
힘들어 쳐진잎새 조금쯤 펴질 수 있지는 않았을까

살아가며 미안하고 불편한 이 생각날 때
오늘이라도 참 미안해 두손 잡기라도 한다면,

나, 오늘

세상에 한방울 산소라도 더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묵은깃털 뽑은 솔개처럼 생생 기운 나지 않았을까
낙엽 떨꾼 나목처럼 다시 봄을 꿈꾸지는 않았을까

사는동안 어려웁고 가여운 이 생각날 때
오늘이라도 좀 어떠니 마음이라도 전한다면,

나, 오늘

세상에 한 방울 산소라도 더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조금쯤 기울던 한 세상 반-듯 돌아서지는 않았을까
세상에 사랑도 노래도 다시 무성해지지는 않았을까

사는동안 오늘 생각난 일 오늘 생각날 때
최선 다해 스스로라도 잘했어 말할 수 있다면,

나, 분명

오늘 세상에 한 방울 산소라도 보탤 수도 있을 것을
두팔 벌린 나무처럼 하늘을 품어 볼 수도 있을 것을
푸른 그늘로 그대의 걸음을 쉬어 줄 수도 있을 것을,


사랑아! / 강학희


넌 대체 언제 내게로 온거니?

살그머니 내 안에 들어와 나도 몰래 내가 되어버린
문득 새벽을 눈뜨게하고
빛나는 별들과 눈맞게하고
뽕끗 솟아나는 싹눈이 되고
분홍 꽃눈망울을 튀우게하고
세상에 하나뿐인 꽃으로 나비와
동침하게하는, 내 삶을 온통 상사화로 분탕질하는

넌 대체 언제 내게로 온거니?

이 나이에, 난생처음 내 입으로 사랑한다 고백하게하고
이 나이에, 난생처음 너 없이는 안되겠어 고백하게하고

닿을 듯 잡힐 듯 아슴한 향방,방향에 미칠 것만 같은
잊을 듯 돌아서 눈을 감아도 떠도 거기 눈 앞에 있는

이 미친 사랑, 시詩야, 내 시詩야-


평생처음 애끓이며 쫓아가도 잡히지는 않는
평생토록 하, 속상해도 흔적조차 보이지도 않는
그래도 남은 생 그냥 미처 죽고 못살아도 좋은

이 미친 사랑, 시야, 시詩야, 내 시詩야-

넌 대체 언제 내게로 온거니? 내게 있어주어 고마워.

굳어진다는 것에 대하여 / 강학희

분홍빛 갓난 아기 손톱 발톱을 깍다보니
아竪湧� 참 말랑하기도하구나
손톱발톱, 살도 뼈마저도 참 말캉 말랑하기도하구나

누르스름 내 거친 손톱 발톱을 깍다보니
어른들은 참 뻣뻣하기도하구나
손톱발톱, 피부 뼈마디도 참 뻣뻣하고 퉁그러졌구나

요즘따라 옆에서 자주 듣는  
당신, 나이들수록 점점 뻣뻣해지거 알아 하는 말을
새삼, 살아간다는, 세월먹는다는 일을 알겠다

일상에 굳어져 가는 것들을 깍다보니
무심히 굳어진 내 손톱발톱 깍아내도
무심히 굳어진 마음은 들켜버리고 만다는 것을,

무안하고 참담해진 마음에
식초라도 한사발 채워서라도 말랑해지고 싶다
야들야들 혀꼬부라진 소리로 사랑이란 말랑한
침바른 말 한번쯤은 해보고도 싶다.


지금 당신도 통화 중이신가요? / 강학희



음성 메세지를 보내도 텍스트를 보내도
답신이 없는 당신은 어디에 계신가요?

지금 당신도 통화 중이신가요?

저기, 가는 사람들처럼 세계가 모두 통화 통화 중인데
왜 모두 모두 소통은 안된다 하는가요?

스마트 폰처럼 더 스마트해진 세상이라는데
카카오톡처럼 매순간 톡톡톡 톡talk만 하는 세상인데
왜 서로 서로가 소통이 안된다는가요?

모두 다 다른 언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인지
색맹인지 문맹인지 컴맹인지 그래욤, 넘 담담한 세상
왕따당?� 애들은 고층에서 뛰어내리기도 탕탕탕 장난 총질이나 하는데,
오늘도 오클랜드 오이코스*에서 난사한 메세지
받지 못하셨는가요?

음성메세지도 텍스트조차도 답신 없는 당신,
오늘도 통화 중이신가요, 아님, 아주 통화두절시킨 건가요?
하늘에 계신 우리 모두의 아버지,
툭툭툭 툭
눈물 메세지 보냅니다 '답신 요망합니다


당신은 무죄입니까? / 강학희



그녀는 말한다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평생 사는 고통은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고통이 아니라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을 선택한 고통이라고,

한번도 사랑하지 못한 사람과 평생 사는 고통은
한번도 사랑하지 못한 고통이 아니라
한번도 사랑하지 못한 고백을 포기한 고통이라고,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지금도 사는 고통은
한번도 사랑하지 못한 선택이 아니라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선택을 선택한 고통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 나는 유죄지만

너는 무죄냐고?

등 / 강학희


[자식들이 모두 떠난
사람의 쭈그러진 늙은 등은 바라볼수록 눈물이 난다
위대하여라 등이여] 시를 읽다

눈을 감고
등. 등. 등. 드-ㅇ 하니
응. 응. 응. 으-ㅇ 한다

언제라도 답하는 "응"이 내등이다

내등은 등돌린 등이 아니라
무너져 쭈그린 등이 아니라
오르지 못하는 등이 아니라

언제라도 어깨너미 타는 무등이다

힘들면 언제나 오라는 "등"
걱정은 모두 업어가는 "등"
지금도 가슴 데워주는 "등"

쉰살 내 아버지의 젊은 등. 잔등, 콧등, 귓등, 손등,
발등까지 만지고싶다. 가슴을,
거기 묻은 등을 쓰다듬는

아버지보다 나?見纛� 딸이
세상에서 가장 그립고 사모치는 것은
지금 업힐 수 없는 아버지의 등이다

세상의 자식을 길러낸 위대한 등이여,
누가 아비의 등을 딛지않고 세상에 나왔는가



파란 그리움이 머무는 곳 / 강학희




오랫만에 언니에게 들렸다
풍광 좋은 이곳에 이사 온지도 십년

언덕 아래로 반짝이는 바다
모락모락 번지는 사람 냄새,
그리움의 끝자락이 닿아있는
이 한가한 동네 사람들은 발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다 아는지...
후박나무 잎새가 팔랑인다

이 동네 한바퀴 휘-이 돌아보면
새삼스레 산다는 일이
참 별거 아닌 오소소소 이야기하는
킥킥키키 애들의 고소한
웃음소리 듣는 일이란 걸 깨닫는다

여기, 돌아올 수 없?� 외길
다 사모치는 이별잔치 치르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움만 가득한 사람들 닮아
풀밭이 유난히 더 푸르다
풀밭처럼 얼굴도 파랗다 주름이 없다

저 만치서 달려오는 막내손녀 보고
휘달려 와 나무잎에 머무는 바람,
언니 냄새다

풀처럼 파란 언니가 왔다




알까? / 강학희


어디서 대형사고 났을까
누군가 서로 화끈하게 부딪은 걸까

꼬리에 꼬리물린 긴 차량의 행렬
쭈-욱 저 멀리 구불구불
그 끝을 모르겠네

어차피 길은 기다림 따라가는 것
차창너머 번져나가는 멘델스죤의 무언가처럼
방금 누군가가 놓친 풍선처럼
서서히 한 길로 달려가는 슬로모숀의 비디오,

매일매일 이러구러
사는 일 또한 이 같은 풍경인 걸
지금이 조금
조금씩 평행으로 흘러가다
막장의 접경 너머 어느 순간 사선으로 조우하는
슬로비디오 데쟈뷰다

하나 두울 세에-ㅅ...
순간, 깜빡 손 놓치면
쿵- 안의 숨바람 모두 뱉아내고 접선되는
수상한 접선, 저기 ?� 길 위
삐리- 삐리-삐리- 대형사고의 사이렌소리
분명 화끈한 운명적 만남인 게다

지금 막 립� 저 손, 손, 손들은 서로
기억할까 서로 서로가 어떤 한 때의 재?맛� 걸
알까? 운명은 예고없는 불상사로 온다는 걸
알까?




사라진 돌부처의 코 / 강학희



5월26일 미국의 현충일, 메모리얼데이 연휴 오레곤의 크레이터 레익을 보러 가기로했지만 아직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여행이 허가되지 않는단다

인터넷으로라도 구경하자하고 이곳저곳  명산 명승지 산사를 오가다 화순읍 능주 서쪽 이십리

허 운주사에 머문다 사찰림의 천불산 천불천답 크고 작은 잘생기고 꼬질한 가지각색 어른부처

아기부처 돌 속 돌부처 와불들, 천지가 다 부처 다  첩첩 시간에 뭉개지고 바수어진 처처가 다

돌밭이다 돌무덤의 돌맹이들 모다 모다 불상이다 산아래 내려온 초가의 디딤돌 절구통 눌림돌

모다 다 돌탑이다 돌부처다

흠, 남은 석불들 이승의 무량수전 지키느라 듣지도 보지도 말아야했는지 돌부처의 코도 귀도

다 문드러졌다 닳아 없어진 영험한 돌부처의 코와 귀 다 어디로 간 걸까 다시 클릭클릭 뭉개진

돌부처의 코와 귀의 연유찾아 연휴를 할당한다 처 처 불상 코도 귀도 없는 돌부처*들 우는지

웃는지 은근무상한 저 천년의 미소연휴의 노을에 물든다

* 돌부처의 코를 갉아 물에 타 (비고산이라 부름) 먹으면 아이를 갖고 귀를 각아 먹으면 낙태를

하나는 풍설이 전해진다


어느 아름다운 이별식 / 강학희


늘 다니는 산책로에 공지문이 붙었다 아침산책 친구의 이별식이라니 믿기지 않는 한 걸음으로 다가간 공원 식탁엔 한장의 사진과 두병의 잿가루, 이승의 마지막 친?마� 하늘로 간 죤은 홀가분한지 행복한지 황구를 바라보는 눈길이 환하다 속 시원히 하얀 이를 드러낸 미소가 들릴듯 하다.

남겨진 산책로 친구들 손에는 그의 뼈가루와 한줌의 들꽃씨, 산책로 저만치 숲길 속으?� 훨훨 들꽃씨와 함께 그를 날린다 맨 주먹으로 눈가를 쓸어내리며 견공들의 등을 쓰다듬어도 우리는 안다 어느 봄날 쑤벅쑤벅 들꽃 만발한 산책길에서 분명 죤과 황구의 낮은 두런거림을 만나게 될 것을,

지금 우리가 그리는 이별의 그림은, 오늘내일모래 같은 자리 맴돌며 시간의 길 위에 무수히 찍는 사랑하는 이들의 발자국으로 그려지는 이별식의 한 조각, 잠시의 이별을 위한 우리 만남의 발자국 화석 같은 것을.


겨울에는 / 강학희



겨울에는
귀가 여려지는지... 눈이 여려지는지...

다 비워 버린 뜰에 홀로 빈 의자의
훨 훨훨 불리워가는 마른 잎새들의
내 귓가를 사르르 스쳐가는 침묵의

사랑했으나 다 떠나가야하는 숨결이
잘 보인다

겨울에는
귀가 비워지는지... 눈이 비워지는지...

온기가 서로 옮겨앉는 서러운 손길의
바람새 빈가지 더듬는 시려운 발길의
먼 어딘가 자분거리는 그리운 눈길의

함께했으나 다 떠나가야하는 걸음이
잘 보인다

겨울에는
귀도 눈도 마음 까지도 배가 고픈지...

낙엽들이 뒹-구는 텅-비인 허공으로
아직 듣지도 보지도 잡아보지도 못한
언어들이 이리 저리 휘이 돌아오는가

사르르 사륵 눈 눈 물 젖은 뒤안길이
잘 보인다

겨울에는
보이지않는 것의 소리마저 잘 들린다



참 헛하다, 봄밭 / 강학희



마지막 야물진 봄비에
꽃들은 피면서 지면서 흩날리면서
자리 잡기 아우성이다

꽃지고 푸름 새록인데
튼실턴 나무 한 그?� 감감 영영
깨어날 기미가 통없다

가만,발 밑 뻥 뻥뚫린
배곯은 손님들 흔적 뿐이다 아,
이 여린 놈! 겨우 정수리 잡고 자고 있네

어찌 겨우 내-내 그의
오랜 시름 듣지 못했을까
몇 달 내 속 앓이에 가뭇 널부렸던 가

잠시 한눈파는 동안 너를 잃는 일 이와 같거늘
고사한 고목은 베지 않기로 한다
버팀목에 버텨보기로 한다

놓친나무 한 그루 가슴에 심어두고 나
언제 누구의 버팀목일 날 있을지 참 헛한 봄밭
내 눈부처 삼으면 한다


한 밤중에 / 강학희

개짖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동네 개들이 울음에 화답하는 소리 이어지다 잠잠해진다 간간 오래된 침묵에 몸을 비트는 집의 소리만 쩍쩍 적막이 먹먹한데 문득 귓등이 축축하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데 왜 동네 개울음이 내 울음으로 주르륵 흘러 내리는지

상기 누워 있는 이 자리 어디인가 부릅 뜬 눈에 대롱대롱 한 줄 까만 거미줄 보인다 거미는 언제 왔다 간 걸까 거푸집을 벗고 누운 이곳은 다시 또 다시 묶인 상여집이던가 나 어디메서 왔다 어디메에 뉘일 것인지 시간열차의 배정을 기다리는 한 밤중인지


이제야...40년만의 희망 / 강학희



산책로를 넘자
문득 펼쳐진 들꽃 만발한 벌판에
저절로 Oh Lord!, 그를 부른다

시급한 원고를
쓰는데 갑자기 멈춰버린 컴퓨터에
외마디 Oh my God!, 또 부른다

휘청 구두굽이
보도 블록 사이에 걸려 뒹구르며
다급히 Jesus Christ!, 부른다

평생 믿고 믿던
엄마야!는 어디 가고 나도 몰래
언제든 급할 수록 그를 부른다

엄마 】� 후,
이국 땅에서 40년 ?琉� 부르는데
먼 저 곳에서 그도 나 들으실까?
이제, 나의 소망 보?� 수 있을까

큰 믿음 없이
의심 많은 자 늘 이렇게 확인한다


강가에서 잠 깨어 / 강학희



눈감고
수심에 물이드는 소리 듣다가
꽃잎이 피고지는 소리 듣다가
강물이 잉태하는 소리 듣다가

눈감고
안개가 밀려오는 소리 보다가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보다가
강가에 햇살피는 소리 보다가

꿈속의 한 나절 다시 잠들어

꿈결에
꿈속에 나래드는 소리 듣다가
호접몽 달지근한 소리 듣다가
강가의 비몽사몽 소리 듣다가

꿈속에
몽돌이 익어가는 소리 보다가
시간이 밀려오는 소리 보다가
마음이 일어서는 소리 보다가

시한수 웅얼부얼 읊다 쓰다가

깨어나 응아응아 다시 우는가

만남 / 강학희


삶의 여정에서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목마름을 채우는 일입니다

즐거운 만남은
내 기쁨
슬픔 다 들고 가서
다른 이의 아픔마저
안고 오는 일입니다

그런 밤이면
내 안으로 들어 온
그들이 하나 되어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게 하는
아름다움을 키웁니다

그런 만남이
기다려지는 한
산다는 건
기쁨으로 남아있습니다

너와 나
양날개 되어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저기 집으로
돌아가는 철새들처럼
나의 자리는
당신의 등 뒤
돌아다보면 닿을 듯
늘 거기 있는 나 입니다

너와 나,
우리 만남의 기쁨으로
길고도 먼 삶의 여정은
눈 앞의 길입니다
함께가는 길입니다

서로 바라보며 가는 길은
추워도 춥지 않은 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은
함께라는 말입니다.



잠들지 못하는 아이와 어머니 / 강학희



늘 새벽녁에 잠드는 아이
그 이유 모르는 어머니는

아이야, 잠들어야 좋은 꿈을 꾸지...
걱정으로 잠이 든 어머니

아?甄�, 깨어있고 싶어요
새 시간을 만나고 싶어요
꿈을 깨어 만나고 싶어요

꿈 속 어머니 잠든 아이를 안고있다
꿈 밖 아이 잠든 어머니를 안고있다

아이는 늘 새벽녁 잠이 든다
다시는 없을 그 시간 보듬고
어머니, 꿈은 언제 내게 오는걸까요...

걱정으로 잠든 어머니 보며
아이는, 어머니 깨기 전 잠들고싶고
새 날이 오는 시간 놓치고 싶지않고
꿈을 안고 잠든 아이 어머니가 본다


오늘의 상황 1. /강학희


24시간 헬스센터

A는 걷고 B는 뛰고 C는 달리고 D는 당기고 E와 F와 G...
운동기구 위의 사람, 사람들 사람들

눈 앞에 매달린 수십개 텔레비죤 세트들, 1은 요리강습
2는 CNN뉴스 3은 우주전쟁 4는 약광고 5는 스포츠경기

발로 뛰면서 듣고, 손으로 당기며 눈으로 먹고 마시고...
ABCD와 1234, EFGH와 5678, WXYZ와 91011 오감의 율동,

지금 막 디저트와 다이어트 약이 동시에 써브되고,
토네이도, 홍수를 맞고 우주선으로 가뭄의 아프리카로...
몸과 마음이 만났다 떨어졌다 땀방울 방울들은 사선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의 전천후 전쟁 상황이다 고민이다
어디로 뛸까

24시간 헬스센터

먹고달리고, 달리고먹고, 달리고달리고 먹고 또 달리고...
오늘의 상황, 상황은 땀범벅 어디에서 멈추어지는 걸까?
어디까지 갈까




아름다운 사랑에 대하여 / 강학희



무언가가 눈에 밟히고
무언가가 귀로 들리고

무언가가 그리워지고
무언가가 미쁘게되고

왜,갑자기 마음이 들뜨고
무언가가 아름다워지는지

끝내 나도 몰래 저절로
그대를 아름답다 할 때
문득, 세상이 환해지고

삽작 밖에 꽃피는 일도
꽃지는 일도 경?� 없다
보는 마음이 꽃눈이니

너도 너도 너도 모다
아름다히 보이는 때가
나 떠나가야 할 때인가?


쳔사섬/ 강학희


쳔사섬
쳔사섬하기에 쳔당인 줄 알았더니*

천사섬에는 천사들이 없더라
낯선세상 낯선눈물만 있더라

천사섬 안개 속에 가리워진
세상 속을  
세월 속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눈물 속에 노란얼굴 내가 있고
까만머리 네가 있고

제나라 제집두고 이 어인 설흠인고
아마도 목구멍이 전생 업인가하노라*

1920년 먼 동방나라에서 건너온 구름씨
천사섬 이민국 벽에다 써내려간 시이다

미국인 교수의 발견으로 발표되는 한국시
'미국이 아모리 좋다지만 이 처럼도 구차한가,
내 어머님 알고보면 얼마나 놀라실까'*
50년 후 그의 시를 낭송하는 이민자의 마음이  
천사섬에서 울던 그 유학생의 마음이다.

2012년 비오는 밤이 1927년 비오는 밤이다
상항 쳔사섬, 엔잴아일랜드의 마음이다.


현대인의 고민 / 강학희

희망이란 이름 하나 / 강학희

바같 세상의 나날 / 강학희
빗속에서 길을 찾다 / 강학희

길이 젖는다
길이 흘러간다 비를 신고 길이 흘러간다
길은 사라지고 비만 남았다

내가 젖는다
내가 흘러간다 시간을 신고 나 흘러간다
삶은 사라지고 시간만 남았다

비에 젖는다
비가 흘러간다 길도 나를 신고 흘러간다
문득 앞에 남겨진 시간의 갈길 질척하다


문을 열고 공중부양 시작하다/ 강학희

강추위에 꼭꼭 닫혔던 문을 여니
마치 문간에서 오래 기다렸던 길손처럼
찬바람이 들이닥친다.

뭉근하게 가라앉았던 ?㏏Ю� 확 깨어
기침하며 정신이 돈다

맞고보면 다 견딜 일인데...
된 추위 한번 맞고
아주 오랫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

더도 덜도 아닌 그저 이만큼 뎁힌
밍근한 기운 속에서 몰라 몰라 비몽사몽
너무 오래 익숙한 공기 속에 앉았던가

온몸 부르르 떨리는 칼바람도 신선한 날
사는 일 또한 이와 같은 일
그 것이 무엇이든 제 한몸 뭉개고 갔던
눈물바람도 반겨야 할 일, 무추름히 껴안았던
별일 없던 나날이 칼끝처럼 아리다

쉽게 발 담그지 못하던 까치 발걸음
문밖으로 쑤욱 내밀고 오래 바람쐐기를 한다
무지룩이 발뒷꿈치 디디며 숨쉬기를 시작한다
바람에 맡긴 한 몸 공중부양을 시작한다




비 / 강학희


뛰어나가 그를 맞이할 만큼 좋아하지는 않아도
살며시 왔다가 간 그의 발걸음을 보면 반갑다

메마른 산야처럼 메마른 가슴 적시고 간 발걸음
자분자분 내 님의 그리운 발자욱 같이 촉촉하다

낡은 삶의 얼굴을 씻기고 새 순간으로 물들이는
멀리있는 내 님의 방울방울 영롱한 눈물이련가

햇수가 더할 수록 점점 빗님의 광신도 되어간다
나이들면 눈물많아진다는 말이 참으로 정석이다.



딱 한 사람



가끔 마음이 외롭고 쓸쓸할 때
위로받고 싶은 날도 있다.
그런 날, 휴대전화기의
번호를 뒤적여도 딱 그 한사람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다

마음 풀어놓고 싶을 때 연락할 사람
한 명 없다면, 아! 얼마나 서러운 삶인지,

딱 한 사람, 오직 딱 그 한 사람이면 족한데...
이름만 들어도, 얼굴만 떠올려도 미소가 번지는 그 딱 한 사람
누구에게도 견줄 수 없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데...
딱 그 한 사람 너무도 그리워
휴대폰 전화기를 덮을 수가 없다.
만지작 만지작 전화는 통채로 그리움입니다.




부활


밤마다 죽는다
밤마다 여기가 무덤이라는 ?珝�
오늘의 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오늘의 걱정 근심 욕망
같이 죽는다

아침마다 태어난다
아침마다 여기가 시작이라는 생각
오늘의 나는
오늘이 첫날이다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해 뜨면서 다시
백지에 하루를 그리는 ?痼甄�



하루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지요?
마음에 남은 앙금들은 다 쏟아버리고
시작된 새날에
새로운 일들을 다시 써나가십시오



오늘의 노래 / 강학희

손만 대면 툭 터질 듯한 쪽빛 하늘
더댓겹의 전선줄이 오선지 같다
포륵 포륵 참새떼들 음표로 앉아
노래를 짓고 있다

각 마디 마다 음표를 그리는 몸놀림이 바지런하다
한 마디에 열개 넘는 음표가 쓰여졌다
맘에 들지 않는지 다 지우고  
하얀 쉼표로 혼자 남았다 호르륵 악보 전체를
다 다시쓰기도 한다

나는 지금 어떤 노래를 짓고 있는가?

하나 둘 저 낙엽의 뜰로 떨어져 간 혹은 떨어져가야 할 오늘,
이시간의 우리의 애틋한 노래를
먼 하늘의 오선지 위에 눈으로 그려본다


고향의 툇마루 / 강학희


깨어진 기왓장 하나에도, 깨어진 토기 조각 하나에도
갈라진 벽돌짝 하나에도, 틀어진 문틀 조각 하나에도
시간은 숨을 쉬고 있었다

무너진 담벼락 한칸에도, 떨어진 낙엽 닢닢 하나에도
뭉뚝한 빗자루 하나에도, 벌어진 굴뚝 틈새 하나에도
시간은 숨을 쉬고 있었다

시간은 돌고돌아 멀어진 잿빛 연기처럼 자취 없어도
나는 혼자 낡아가는 그 것들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돌아 와 앉아 본 먼지만 두꺼운 툇마루

시간의 재 같은 먼지를 쓱 밀어낸 손바닥엔 추억만
가득한 어느 날의 고향 툇마루
고향의 먼 연기는 돌고돌아 내 마음으로 스?灌�, 허무한
몸짓으로 그러나 따뜻한 온기가 도는 숨소리다- 잊을 수 없는.



고랭지 배추밭에서 / 강학희


안반데기 운봉雲峰, 구름 모자를 쓰고 있는
고원이다
두 손모아 하늘로 직립시켜놓은 듯 90도로 올라간
고랭지高冷地다

안반*처럼 옴?탭� 구름 위의 땅
손가락 끝이 구름에 닿을 듯한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땅이다

추석이 되면
지리산 태백산 고산자락 고랭지에는
배추꽃이 피어난다 노랗게 피어난다
배추들이 방글방글 웃는다**

고생 만큼의 행복으로 여문 웃음,
새파란 포기웃음에 화전민 50년차 최노인도
꽃처럼 만개했다
주름살이 몽실몽실 웃는다

가내家內 동업자와 소통이 잘 되어
하늘 한번 땅 한번 보며 웃는다
벌어진 입속 배추꽃 처럼 환하다

손 마디마디 갈라지도록 나르던
돌맹이가 옥토가 되고 뿌린 씨앗 탐스런  
배추포기 만드는 일은 분명 그 손이건만,
거두는 일은 동업자 하느님 몫이라고 감사함이 그들의 주식이다.
그湧� 반찬은 망가진 배추포기이다.
한번도 잘생긴 고랭지 배추를 맛 본 적이 없다
잘나고 튼실한 녀석들은 잘 쓰다듬어 먼 도시로 보낼 뿐이다.

조석으로도 모자라 하루 두 세번 샛참으로 문안드리는 고랭지
허리펴기도 어려운 산비탈은 지금 온통 새파란 초록빛 물결이다
때론 너무 일찍, 때론 너무 늦게 내린 빗줄기
때론 고라니에 뜯겨도 그저 동업자의 선처로 겸허히 받아안는
배춧잎 같은 얼굴 얼굴들,

이미 지상이나 지하의 삶을 다 알아버린 얼굴들이다, 욕망도
원망도 다 씻겨나간 잇속 없는 환한 배춧 속 같은
하느님의 동업자들이 새벽 안개 속에 꼬물꼬물 가물가물하다
시방도 동업자 하느님과 상의 중이다. 걸음걸음 기도 중이다
흙을 사랑하는 사람들 믿음을 심고 키워 소망을 거두고 있다.
고랭지는 일용할 양식을 몸으로 감사드리는 사람들의 거처다.


고랭지 배추 농꾼 최할아버지 /강학희


최할아버지 '고랭지에서 자란 것들은 오래도록 묵혀도 싱싱하지, 근께 고랭지는 저 아랫동네보다 적게는 사오백 높게는 팔구백 미터나 높은 땅이여. 일교 차가 극심혀, 조석으로 안개가 꽉 채이고 어떤 땐 사나흘동안 햇빛 구경도 못하지만 하늘이 가차워 해뜰 때는 한낮이 불볕 같이 뜨겁지. 작물들은 제 몸이 단단하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혀. 잠깐 나오는 햇볕 같이 뜨거운 가슴을 품고 탱탱하게 버팅겨야 하니께 육질이 단단해지지. 맛도 고소하고 오래도록 싱싱하지. 근께 오래도록 맞아야 강한 쇠가 되드끼, 온갖 풍상다 겪어야 제대로 된 장인이 되는 일이나 매 한가지여. 고랭지 농사는 돌망 하나 하나가 옥토가 되고 심군 것들이 자라 돈이 될 때까정 수십년 피고름 같은 눈물이 괴이는 곳이라 공짜로 줘도 떠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여. 그저 삼시 세때 먹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낸 농꾼들만 남는 곳이여. 오십년이 넘는 세월을 머금은 지금에사 시퍼런 물결이 넘실대는 배부른 모습이 이루어진 것이지.

아침 저녁 조석으로 하늘과 땅에 문안드리고 것도 못미더워 짬짬 하루 서너번씩 더 들다보고 쓰다듬고 도닥여줘야 배추포기들은 꽃을 피운단다. 농꾼들은 배추 속이 노랗게 올라와 배추 포기가 벌어지는 걸 배추가 웃는다고 한다. 방실방실 벙끗벙끗 배추가 웃으면 그제야 농꾼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나지만 그래도 끝물까지 동업자인 하늘님의 뜻이 있어야 제대로 거둘 수가 있으니 배추꽃이 피면 땅보고 한번 하늘보고 한번 농꾼들은 진종일 벙글벙글한단다. 그게 고랭지의 기도란다. 한 해 내내 키운 잘난 새끼들 무사히 출하혀서 도시로 잘 가기를 소원하는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구름 위의 땅 안반데기 고랭지 운봉雲峰, 최노인은 터지고 거친 두 손을 들어 배추포기를 쓰다듬는다. 배추도 벙긋 최노인도 벙긋 웃음꽃이 핀다. 동업자 하느님과 손발이 잘 맞은 올해는 웃음만발이다. 손 닿을 듯 가까운 구름도 뭉개뭉개 웃음을 피우고 시방 벌어진 할아버지 입 속은 배추 속처럼 환하다 고소하다.


녹차 한잔을 음미하다 / 강학희



붉은 햇살 깊숙히 내려 앉은 한낮
숲의 고요가 담긴 차 한잔을 든다
지금 마시는 이 순간의 삶이 찻잔 속 하오의 한조각 풍경 같다

간간 먹구름 몇 자락 몰려와도 눈부신 햇살로 하늘 뜻은 환한데
본집 떠나 손발붓도록 달려온 40년
아메리카 드림의 뜻은 무엇이었나 조물거린 내 잔은 무엇이었나

잠깐 한 눈 팔면 눈 깜빡 할 사이
온기가 사라지는 유리 잔이 아닌 내 손에 쥐어진 투박한 한국산
토기잔이고 싶다 매끈하지도 얄팍하지도 않은 그러나 오래도록
온기를 보듬는,

그래, 삶이란 네 놈의 맛도, - 꿀꺽 삼키기도 뱉기도 어정쩡히
물고있으면 혓바늘 속을 파고드는 들큰 찝찔하면서도 쌉싸아한
녹차 같은 맛이었어, 단박에는 표나지 않는 뭉근하고 은근한 -

매 순간 하얗게 지워지고 또 다시
빛과 그림자 여울진 내 시간의 잔
다만, 마실 수록 너무 익숙해져서 이 건 아닌데 고개를 흔들기도
때론 전혀 낯선 맛 두렵기도하지만 단 한 순간도 놓칠 수는 없지

차를 마시듯 늘 너를 음미할테다.


나무와 책을 읽다 / 강학희


오늘 그대가 떼어먹은 햇살 한 스푼 맛은 어떠셨는지요?
?윱� 그대가 베어먹은 바람 한 자락 맛은 어떠?甄쩝熾�?

아-, 달아도 별 맛 아니라구요? 그렇지요... 오늘은 너무 맑잖아요
먹구름 한 점 없이 그저 푸르기만한 하늘 하늘 맛이 나겠어요?
하늘의 빛이 그림자도 없이 환하기만하면 세상 맛이 나겠어요?

그대 봄 바람에 꽃이 되어 벌 나비를 만나고
그대 무성해서 새떼들이 모아 품에 잠재우고
그대 탱탱하게 배불리워 고픈 짐승을 먹이고
그대 맨몸으로 뿌리 하나 움켜쥐고 세상의 산소를 내어주는 삶은,
그대 나누기 위한 존재로 서 있음이리
그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그대는 행복한 것인가요?

세상 누구에게나 제 색깔은 있지요 그러나,
가슴 터질 듯 아린 순간이 담기지 않는다면 덤暉� 색일 뿐이지요
빛을 나타나게 하는 건 그림자, 햇살은 먹구름으로 빛나게 되지요.

세상 누구에게나 제 맛집은 있지요. 그러나,
가슴 타 버릴 듯 불태운 순간이 담기지 않는다면 맛깔지지 않지요
오늘 그대의 행복한 맛에 취한 나는 그대
무릎에 앉아 그대가 만든 책을 읽어드립니다
이 시간이 참으로 뿌듯하고 맛있습니다.


모멘토모리* / 강학희


올 한해동안 무려 3명의 문우를 잃었다
세사람 모두 너무 일찍 불려갔다
잠시 잊고 살던
모멘토 모리를 가슴에 찍어주고 갔다

어느 가수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 하고
어느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란다

외롭고 쓸쓸한 줄은 알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일
아마도 눈감기 전 까지는 포기하지 못하는 일이
아닐까
'죽음을 기억하라'는 모멘토 모리는
바로 '살아 더 사랑하라'는 말이다

가고 없는 문우를 만나는 날까지 모멘토 모리를
기억하리라 사랑?� 잊지 않으리라

더욱 더 치열하게 사랑하리라.



대칭적 사유 / 강학희


1.
바다처럼 인파가 출렁이는 마켓 세일코너

크리스탈 같은 얼음침대에는 빛좋고
훤칠한 도미, 광어가 편안히 누었고 파운드에 99센트 세일
서대, 물가자미는 겹겹 만선으로 쌓였다

세상의 제 자리는 처음부터 다른 것일까
삶이란 본래 제 마음대로는 안되는 걸까

철든 오른눈이 왼눈으로 몰린 눈치밥 외눈잡이 서대
더는 내려 갈 데 없는 모래바닥에서 지상의
짠물 한 가諍Ⅷ� 끌려나와도 제 한몸 값은 바닥일 뿐이다.

2.
질척 질척 넘치는 물바닥 눈썰미로 닦는 서대 눈 호세,
인력시장에 던져지고는 온몸이 눈썰미다
눈을 내리깔고 걸음 걸음 사이사이 오가도 밟히지 않는다

늘 보는 모습 너무 익숙해서 낯설다 아니, 너무 당연해 잊고
살았던가 서대와 호세와의 눈맞춤은
오, 어느 수장水葬당한 영혼의 환생이었는지...
보이는 것이다
물기그렁하게 쏠린 그저 받아들이는 편안한 눈동자의 데쟈뷰.

가벼히 나선 마켓의 주차장엔 사람의 발걸음에도 두려움 없이
먹이를 쪼고 있는 새떼들 이미 눈치는 버린지 오랜가보다. 먹기위해,
어느날엔가 먹히기 위해 몰두해 있다.

새들이 훨훨 날아간다
또 어딘가에서 우린 만날 것이다 서로를 먹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서대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참서대라고 한다. 가자미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모양은 가자미와 비슷하게 생겼다. 최대 몸길이 27㎝이고, 몸은 혀 모양으로 옆으로 매우 납작하다. 긴 타원 모양이며, 옆으로 납작하고 눈은 작고 왼쪽에 치우쳐 있다. 주둥이 끝은 둥글고 입은 눈 아래에서 배지느러미 쪽으로 심하게 굽어 있다. 수심 30m 미만인 내만의 바닥에 서식하며, 몸길이 1.6㎝ 정도가 되면 오른쪽에 있던 눈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변태를 마치고 바다 밑으로 내려가 바닥에 몸을 붙여 생활한다. 내만의 바닥에 서식하기 때문에 그물 아랫길이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어선으로 그물을 끌어 잡는다. 6~10월이 제철이다.)






시인의 마음 / 강학희

다섯살 손녀가 떠나는 날 새벽 4시
집에 가야지 속삭임에 잠꾸러기가 발딱 일어나 마이 홈? 한다
투정도 없이 눈을 부비며 일어난다.
아, 집이란 이렇게 좋은 거로구나.

성애가 하얗게 낀 창밖을 내다보다
어머나, 자동차가 울어요 나처럼 슬픈지 눈물을 흘려요! 한다
차창의 이슬방울로 심정을 비유한다.
아, 떠남이란 이렇게 아린 거로구나.

게이트 앞에서 달려와 쪽 입맞추며
댓쯔 오케이, 자고나면 비행기는 다시 돌아와요 내일은, 한다
다시 만남으로 이별도 괜찮다 한다.
아, 위로란 이렇게 따뜻한 거로구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선명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시인의 마음,
다섯살 아기 시인의 시를 읽은 후
누군가 그리워 하늘을 보면 뭉개구름들이 손을 흔든다
따뜻한 마음이 닿을 듯 가까워진다.


산타와 희망의 속삭임을 만나셨나요? / 강학희

내가 다섯살일 때 나는 산타 할아버지를 만났고
내가 여덟살일 때 나는 희망의 속삭임을 들었다

그 후로 줄곧 나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오기를
거룩한 천사의 음성 내 귀를 두드리기를 기다렸네

희망이 눈에 보일 듯, 들릴 듯 가슴은 벅찼건만,

철들었다기에 들여다보니 이미 내 가슴은 비?邂�
산타도 희망의 속삭임도 잃어버린 텅빈 가슴이네

무엇이 나의 선물이었을까
무엇이 나의 희망이었을까

저만치서 달려오는 천사 같은 내 아이의 아이들
이만치서 가슴 한아름 가득한 선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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