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0

2011.09.30 23:58

강학희 조회 수:143


# 41 가짜 눈물이 슬픔을 업어준다/강 학희

안구 건조증이라고?
그 많던 눈물 다 어디로 갔는지,  
인공 눈물 넣어도 눈은 울고 난 것처럼 벌겋다

어릴 적 울보였던 나 어디로 가고 
눈물샘 뚫고도 가짜 눈물이 나를 울고 있다 
가짜로 울다 보니 진짜로 슬퍼지고 
정말 슬플 때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고, 
진짜 가짜 사이 눈이 없다 내가 없다
궁 물 없는 빳빳한 슬픔 슬퍼도 울지 못하고 
진짜 가짜가 서로 헷갈려
가짜 눈물이 중고 설움까지 닦아주는데, 
오늘은 왜 눈물이 흐를 까
다시 눈물샘이 막힌 걸 까 
나도 모르는 슬픔이 저 혼자 울고 있을 까

“괜찮아, 모르는 슬픔은 슬픈 게 아니야”
가짜 눈물이 슬픔을 업어준다
눈 밝아지고 마음도 맑아지고,


#42 어부바 이별의 굴렁쇠 /강 학희

“마마! 맘마!” 다음으로
손녀가 참 좋아하는 말은 "안고! 업고!"이다  
우리 몸의 앞과 뒤, 
봉 끗 포근한 가슴과 둥글 넙적 널척한 등판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든 게 다 담긴 땅이다
 
태어나서 안기고 업히다 
손녀를 안고 업다 다시 아들에 안기고 업혀 
환 고리 마무리하는, 안고 업고 말달려보니 
오고 감이 훤히 보인다
따뜻한 한 생을 다 보듬어주는 말이 아닌가,

안고 업다 보니 다시는 안기고 업힐 수 없는 
아버지 등이 떠오른다, “등”하면 “응”하고 
달려오는 아버지 등처럼, 
손녀가 안고 업고하자면 오케이 나를 내민다 
아직 안기고 업힐 때가 아니라 감사하다고 
어부바 하고 편히 쉬라고,


# 43 노을 녘 엄니 말을 따라가다/강 학희

황혼지고 바삐 돌아가는 사람들 속
옴쏙 쏘 옥 들어 간 작달막한 할머니 
한 팔은 지팡이 짚고, 한 팔은 허공 짚고 
반 토막 꼬부라진 채 저물어간다 간간, 
쪼그라든 거시기가 흘러내리는지 아랫도리 추스르며 
그렁그렁 볼록한 구릉 궁글어간다 

아- 저 삭은 등성 자꾸 눈에 밟혀서
굽은 등판 붙안고 펑펑 울고 싶어서,  
“늙으면 알라가 되니 라, 그 때 업어도” 
뼈아픈 엄니 말씀 업어드리고 싶어서, 

내 등에 한번도 업혀보지 못한 채 가신 울 엄니
어스 럭 송아지*걸음마로 따라가 포옹하면 
주름 선한 눈웃음 번질 것만 같아서,
그늘진 등성 오래 밝아질 것만 같아서,
산 능성으로 손 내밀어 허공 짚고 따라 가다
핑 눈물바람이 먼저 길을 내달려 
석양 불꽃 속으로 사라진 엄니, 

*어린 송아지


#44 아이와 어머니의 교차점/강 학희

늘 새벽녘에 잠드는 아이 
이유 모르는 어머니는 아이야, 잠들어야 좋은 꿈꾸지
걱정으로 잠드는 어머니 

아이는, 깨어 있고 싶어요 내 바램 만들고 싶어요 깨어 
직접 꿈을 만나고 싶어요
꿈 속 어머니는 잠든 아이를 안고 있다  
꿈 밖 아이는 잠든 어머니를 안고 있다 
아이는 새벽녘에 잠든다 다시없을 그 시간 보듬고 싶어 
어머니, 꿈은 언제 내게 오는 걸까요

걱정으로 잠든 어머니 보는 아이, 어머니 깨기 전 
잠들고 싶어도 새 날이 오는 시간 놓치고 싶지는 않아, 
꿈을 안고 잠든 아이를 어머니가 본다


# 45 모하비에 삼 천 배 드리다/강 학희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모하비 
풍무風舞의 광기는 변덕스러울수록 위대한 걸까?

수천 바람족이 춤추는 무대 
여기는, 태양과 회전 초* 몇 개 모래 산 배경은 필수 
천지는 휘모리 천수의 살풀이 춤사위가 한창이다

회오리가 열공하는 스튜디오 
여기는, 몽골여우 부드러운 금빛 잔등이 억수 광풍 
손아귀에 순식간에 쏴 아아- 금 물결로 스러지고,

열풍 족 모래 그라 피디 작업장 
여기는, 태양을 소화하느라 들끓는 모래 속 억하심정을 
낙타와 순례자가 몸으로 시현하는 즉흥공연장이다 

허공에 필 살기 날리는 바람 곶 
여기는, 다만 무릎으로 드리는 삼천 배 땀방울에서만 
보이는 오로라가 사는 곳, 춤바람난 풍양 풍 씨 모래 모씨 
텃세로 구름도 쉬어 가지 않는 풍화 만발한 모하비 
여기는, 언감생심 순풍 순씨는 발들이지 못한다는 
늙은 낙타의 전언이다 

*Tumble weeds 회전 초, 뿌리에서 분리되어 바람에 굴러다니는 사막식물

 # 46 석불을 닮다/강 학희 

천불천탑 사찰 림, 
천불 산에는 크고 작고 못나고도 잘난 부처들, 장대한 와 불, 
마애불, 꼬질꼬질 눈 코 없는 어른부처에서부터 아기부처까지,  
돌 속에 돌부처, 돌탑에 돌부처, 돌 부처 천지다 
첩첩 산중 첩첩 시간 뭉개고 바수어 처 처가 돌무덤이다 
돌멩이 모두 불성이다 돌부처 밭이다

처 처가 불상인데, 
이상하다 영험 하다는 부처님 눈 코와 귀는 어데다 떼어주고 
눈코, 귀 없이도 빙긋이 웃고 있으니 영험하긴 참 영험 하다 

산 아래 돌담, 디딤돌, 장아찌 누름돌도, 절구통에서 돌확까지 
모두 다 돌부처다  
산 아래 부처는 닳도록 중생 먹여 살리느라 반들 맨들 늙었 나 
맨드리 민머리 불상이다 

천불천답 빌딩 숲,
고수레에 배 터질 듯, 절로 미소 뜬 불상보고 
저도 부처인 줄 빙긋 웃음 붙이는 처사도 속 없는 석불 한 덩이, 

*돌부처 코를 갉아먹으면 아이를 갖고 귀를 갉아먹으면 낙태한다는 풍설도 있다

# 47 그대 여, 빛살 테라 피 받아 보시라 /강 학희  

그대 여, 불타는 사막으로 한번 와 보시라 
선인장 가시보다 따가운 나바호어 황토 밟아 보시라  
억 만년 목마른 붉은 동굴, 겨우 몸 한 칸 부릴 만한 
공실에서는 지식의 무게 필히 고개 숙이리

한두 발짝, 쪽 길 걸어내면 문득, 쏟아 드는 빛 줄기 
전신에 오색 볕을 바르고, 빛 물결 한 뜸 한 뜸 
온기로 수를 놓으시니, 세상 언어는 먼 말, 빛과의 대화는 
차라리 벽에 기대어 빛의 춤사위나 묵시할 일이다

흙벽의 붉은 머리털 한 올 한 올 쓸어주는 빛의 손길에서  
빛은 어둠을 어찌 섬기는지 암영의 그림 절로 읽히고, 
억 만년 전 숨결과 대화도 가능한지 
둥둥 둥 어딘가 잠재했던 인디오 전생음도 살아나
느닷없는 글썽 임마저 불거지려는, 

그대 여, 발 시린 날은 하운*처럼 헌 발 황톳길 걸어
엔탈롭캐넌 빛나는 어둠의 빛살 테라 피 받아 보시라   
앓는 줄 모르던 나병마저 스러져,   
죽어가던 그대 심 박동 빛발 차리니, 빛의 손길 벅차 시리니
 
*한 하운,17세에 한센병 발병 저서 『한 하운 시초』『보리피리』
『나의 슬픈 반생 기』 외

# 48 맙소사, 또 그를 부른다/강 학희

산책로를 넘자 문득 펼쳐진 들꽃 벌판 
저절로 Oh, My Lord! 
시급한 원고 쓰는데 갑자기 멈춰버린 컴퓨터에
외마디 Oh, My God!  
휘 청 구두 굽 보도 블록 사이 뒹굴며 
다급히 Jesus Christ!  

평생 믿던 엄마야! 어디로 가고 저절로
급하게 부르는 아버지! 그도 나를 들으실 까 
나의 소망 보실 까
의심이 더 많은 나, 늘 갸웃대면서도
오늘도 “오 마이 갓” 다급히 그를 부른다
 

# 49 한뎃잠 깨어 울다/강 학희

눈뜨고 안개 걸어오는 소리 보다가
바람이 깡부리고 가는 소리 듣다가 

눈감고 수심에 물드는 소리 듣다가
강물이 꽃잎 잉태하는 소리 보다가 

햇살 보둠 속 한 잠깐 단잠 긋다가 
호접의 비몽사몽 단꿈 속을 헤다가  

송사리 봉돌에 쓴 옹알이를 적다가
오가는 생각자리 읽다 옮겨 쓰다가

한뎃잠 깨어나서 문득, 나는 누구?
예는 어딘지 모르는 나방 한 마리,


#50나는 매일매일 부활한다 /강 학희 

오늘의 나는 오늘이 첫날, 오늘 
새로 태어난 여기가 처음시작 날이다,
오늘을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밤이 눈뜨면 다시 백면 갱지, 
오늘은 오늘 하루 시한부, 단 하루살이
오늘에 최선 다하는 이유이다

오늘, 나의 오늘은 마지막 날
오늘 밤은 오늘 밤 여기가 무덤이라고,
오늘 근심 걱정과 함께 죽는다

새날은 새날, 내일이 아닙니다    
내일은 내 일 시작하는 새날, 
나의 달력에는365개 오늘만 담겨있습니다 


# 51웨스턴6가 조약돌 빌리지/강 학희

카멜 밸리 페블비치는 닳고 닳은 돌멩이들,
검고 희고 갈색 동그란 조약돌들이 모인 몽돌* 해변이다 
동그란 것들은 닥지닥지 모여도 찌르거나 씹는 일 없이 
둥글게 품고 살아간다 밟혀도 채여도 돌돌 돌아온다  

울라 마켓, 인심이 빵빵한 젖가슴같은 카멜로나, 
비비 치킨 집, 만사 오케이 라는 벨라 아주머니,
차올 담배가게, 통통배 하오하오 타오 할아버지, 
있어도 없어도 빙긋 벙긋 
좀생이 콜라도 오케이, 노숙자 공짜 병 물도 오케이, 
없는 삶이 미안한 눈빛이다
함께 부딪으며 아픔을 둥글려 품어주는6가 웨스턴 노변 
둥그레 모여 사는 조약돌 해변이다 
대공황이 내동댕이쳐도 이리 둥글, 저리 궁글
코비 녀석 매달려도 왼쪽 오른쪽 한번씩 맞고 보낸다 

통통 머리 굴려 뾰족한 나를 말아 넣으면 동글 몽톡할까? 
걷어차여도 선선히 굴러갈 수 있을까? 
꽉 막힌 10번 하이웨이 울화 삼키고 큰 사고 아니길 바라며 
귀도 뻥긋 눈도 방긋 입도 빵긋 
거울 속 동글 납작 조약돌 하나 굴러온다 둥글 굴러가자고,
좋은 시작이야 코도 벙글벙글 동참하고,  

몽돌, 모가 나지 않고 둥근 돌



# 52 굴러가는 것은/강 학희
     - 모든 굴렁쇠는 다 제 틀에 맞는 꾸밈새여야 한다-

털.털.털. 문제 있다
툴.툴.툴. 세워 달라

손가락보다 짧은 못 하나
순간의 궤도에서 찰나의 마찰을 만나 
튀어 오를 때 
얼마나 깊이 찌를 수 있는지

오 만 마일 보장 
탱탱하던 자존심 다 터지고 찢겨
누더기 살점 사이 텅 빈 속이 보인다  

단단한 것일 수록 
여린 부분은 숨겨져 있기 마련
끼임 새 벗은 굴렁쇠가
어디 너 하나 뿐일 가 
오늘 하루의 긴장도 입김을 빼고 
몸을 더듬는다

그 많은 상처도 충격도 다 받아 안는 
내 틀은 얼마나 감사한 것인 가


# 53 왁자지껄이 걸터앉은 손바닥/강 학희
         
부수어진 기왓장 하나에도
깨어진 옹기 한 쪽, 틀어진 문틀 이문 살*에도,
갈라진 구들장 귀퉁배기에도 
주인 없는 시간은 숨쉬고 있더라 

무너진 담벼락 민들레 한 칸 집에도
몽땅 싸리비 거미줄, 붉은 부지깽이 발가락에도,
벌어진 굴뚝 개똥지빠귀 둥지에도
주인 없는 시간은 숨쉬고 있더라

시간은 잿빛 연기처럼 자취 없어도
늙어가는 것들은 그 때 그 숨소리 품고 있더라 
다시 돌아온 옛 퇴청 마루,
묵은 시간 쓱 밀어낸 손 바닥에는 

언능 씻고 밥 먹자 요번 콩자반 참 꼬숩다 
이엄이엄** 왁자지껄이 걸터앉더라 
방 골 틈새 이 바 구가 
사방 간에 야야 큰 아야, 작은 아야 왁자하게 
엄니 버선발 마루턱을 뛰어나오더라  


*굳은 살 **이리저리 한꺼번에 잇고 이어서, 끊임없이

#54 당신의 토스터는 안녕하신 가요? /강 학희

토스터를 누른다 
날 것이 나오기도 탄 것이 나오기도 한다 
멍텅구리가 되었다고 이제 그만 안녕하시겠다고,

40년 이민 생활동안 나는 어떤 토스터였나?
건드리면 발끈 튀어 생으로 앓았을 가
지레 눌려 다 태우고 징징거렸을 가 그러나, 나는  
총체적으로 오작동 적은 국산 정품,
Made in Korea 가열 스프링은 특수 체질이라 감사하지요
종일, 통통 요리 조리 맛나게 조리하지요

삼식이 님이라도 신나 손수 접대 가능하지요, 
그대 여, 그래도 당신 토스터 매뉴얼은 꼭 읽어주세요!
날 빵 놓고 혼자 뜯는 인생만큼 서러운 건 없으니까요!  

매뉴얼: 
한 번씩만 살짝 누르십시오! 여러 번 누르면 자동 조절 
기능을 잃는 특수 체질, 오작동에 튀어 오를 수 있습니다 
과한 힘과 높은 콧대 태울 수 있으니 필히 관심 바랍니다

#55사랑의 기약 /강 학희

꽃 피었나 하니 벌써 꽃이 지고 있습니다 
하얗게 흩어지는 봄, 
허공으로 봄이 잔잔바리* 지워지고 있습니다

붐비던 사람들 벌써 흔적조차 없고
화사한 꽃잎만 흩날리는 거리
휘몰아치는 꽃샘바람만 차갑습니다

이러 히, 모든 아름답던 한 시절은 눈 깜박 사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로 
아득히 멀어갑니다 그대, 우리 만남과 헤어짐은 이러 히, 
갈 길도 모른 채 기약 없이 손을 놓는 것, 
존재 순간부터 부재 순간까지 
오직 기억하는 건 꽃피어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꽃 지고 난 
서글픔, 막막감마저 함께 사랑하는 일입니다

꽃 피었나 하니 벌써 꽃이 지고 있습니다 
하얗게 흩어지는 봄 
꽃잎 같은 시간들, 차마 눈물겨운 이파리들 
허공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래요, 눈물겹지 않은 아름다움은 봄이 아니었나 봅니다

*잔잔바리: 자잘하게 소소하게

#56 나를 해석하는 요가클래스/강 학희 

매트를 깔고 나를 접었다 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을 마음대로 돌리기,

시간을 깔고 나를 접었다 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날을 마음에 맞추기,

몸과 마음, 생각, 물구나무서서   
거꾸로 낯설게 바라보기 눈 높이 낮추기,

쓰지 않던 힘줄, 옹 박힌 문장
이음표와 쉼표 되돌이표와 마침표 맞추기,

엄마 물 방 시절 순한 베이비로 
나를 재해석 편집 시행할 원본 찾아보기, 



#57응원가 아리랑/강 학희 

이민생활 어느 날부터   
나도 모르게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웅얼웅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칭얼칭얼 넘어간다 
발병 없이 십리고개 잘도 넘어간다 
이즘은 외국인들이 외국 교회에서 학교, 합창단에서 
한복입고 한국 말로 부른다 
세상 방방 곳곳 아리랑이 넘치고
세계 애창곡 일등이라는 데, 그럼 나처럼 
눈물주머니들이 이렇게 많이 달렸다는 건가? 

아리랑은 부를수록  
노래가 우는 사이 
눈물 주머니는 마른다 


#58신년 첫 차 만들기/강 학희 

1
툭툭, 가버린 시간 털어 버리고 신년 치마폭에 
시뻘건 새해 첫 태양을 받는다 한줌의 변명과 한 웅 큼의 원망 
한 되의 사행심과 한 톨의 양심, 낱낱 햇살에 말린다 

2
요만큼의 기대와 이만큼의 노력 찻잎처럼 비빈다 
겸허히 덖는다 해야 할 일은 묵묵 받기로 소홀치 않기로, 뉘게도 
마음 닫지 말고 다 헐자 아픈 곳 아프게 덖는다 

3
상처 란 부딪으면 부딪을수록 달궈지고 우례 히 
우러나는 열기, 잘 덖은 첫 찻잎처럼 한 해 내내 우릴수록 더욱 
향기로운 나 달구고 덖어 온전히 그대에 드리리 


#59 눈길이 무섭다/강 학희

눈, 눈, 눈이 온다
어림짐작으로 보아도 
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많은 
눈, 눈들이 몰려온다 

삼지사방에 날리는 
시린 눈, 차가운 눈, 매섭고 아린 눈
이리 저리 눈, 눈, 눈들이 쏟아진다

아무리 눈치껏 피해도
얼굴로 손등으로 목덜미 등판으로 
소리 없는 눈, 눈, 눈들이 파고든다 

피할 길 없는 숱한 눈
쌓이는 눈, 얼음 같은 눈길이 무섭다 
나는, 녹지 않은 눈길이 제일 겁난다 

가슴과 가슴 사이사이
땡땡 언 빙판길, 차가운 눈길 어찌 녹이나
녹지 않는 눈에 
눈도 삐뚤, 코도 삐뚤, 입도 삐뚤 
삐뚤이 위로 함박 눈이 온다 나를 덮어주는 하얀
눈, 눈, 눈이 온다 


#60 할머니의 묵언 수행/강 학희

늘, 적삼에 바늘을 꽂고 사신 할머니
바느질로 아들 쳐진 어깨 댕겨 주고 
며느리 일손 반절 덜어주고, 넌 짓 손녀 용돈 얹으시며 
말씀은 묵묵, 고물고물 손으로 하신다 

다복다복 할머니 바늘 길은 천 겹 거미줄 치성, 
아물리고 꾀 맨 흔적조차 잊히는 무 봉신이다 
할머니 바늘 허리 겹겹 치마끈 동인 채 
드난살이 열손가락 뉘일 짬이 없으시다 

앓아 누워서도 뽑지못하게 하신 적삼 끝 바늘, 끝내 
칠성판 앞에서 뽑히고 마침내 손마디 가지런하시다
나 죽으면 열어 보라던 가슴팍은
열지 않아도 숭숭 구멍 뚫린 숯덩이 마당일 터, 

나, 어느새 할미이고 보니 하나는 알겠다 
소리없이 웃으며 대신 기워 갚으려는 세상 할미들의
마음, 사랑은 가히 내리 사랑일 밖에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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