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0

2012.02.01 23:33

강학희 조회 수:190


                #27시詩작법, 외로움을 긁다/강 학희 (시인의 말)
 


언제부터 인지 
절절함이 사라지고
안과 밖, 그날과 이날이 같아지고
온몸 가려워 너무 가려워
절절히 긁고, 또 긁어도 연유는 알 수 없네

수소문한 시인의 가려움증은 
“간절이 빠져나간 허망이라! 긁다 보면 무엇이 
간절한지 알아진다” 하는 친구 시인 조언에,

시인의 가려움은 솟지못한 글자들의 외로움이라고?
밤새 솟았다 아침이면 까무룩 해지는
붉은 반점들이 훨훨 날지 못하는 내 시詩어들 자리라고?

그래, 삼지사방 긁혀 흠집 난 시詩라도
분명 내 것, 부디 떠나지는 말아라
오돌토돌 허문 자리에서 봄이 솔 듯 시어들아 솟아라,
쉽게 쓰인 시는 동주님도 부끄럽다 했지
두드러기처럼 도드라지지 않은 시詩라도
울긋불긋이 라도 하다면,

50년 외로움을 긁어주고 토닥거려준 나의 반쪽, 
외아들 마이클 삼 딸 며느리, 나오미와 유끼, 
미코, 베프 현숙 외 글벗들 에게.

#29 DNA줄기 끈/강 학희


그늘진 곳에서 더는 자라지 않는 나무
한쪽으로 슬그머니 기운다 
꽃도 열매도 벌 나비도 오지 않는, 
혼자 서지도 못하는 나무에게 버팀목을 준다 
기대여도 추스르기 힘들었나
감아준 끈 밑으로 겉옷마저 훌렁 흘러내린다 
햇살의 보살핌도 아랑곳, 시들한 늙은 가죽나무
아파트 벤치에 앉아 
풍 맞은 칠순 아들에 기대 오뉴월 햇빛 바라기다 
거뭇거뭇 검버섯 핀 구순 간난이  
주름 짜 글한 아들 왼 눈 펴주며 
삐딱하게 웃는다 찌그러진 모자 미소가 꼭 닮은 꼴이다  
늙은 나무와 버팀목 그 사이
못 감은 눈으로 라도 꽈-악 잡고 가는
끈 질 긴 연줄,  

# 29 쉰 등/강 학희


새끼들이 모두 떠난 사람의 
쭈그러진 늙은 등은 허전하여 바라볼수록 눈물이 난다 
위대하여라 등 이여*시를 읽다 

가만 눈 감고, 
등- 드-으응 하니 응- 으-응 한다
내 등은 언제라도 응하는 등이다
내 등은 어깨도 내미는 무등이다 

힘들면 언제나 오라는 쉬는 등
걱정은 모두 업어가는 쉬는 등
쉰 살에 떠난 아버지의 젊은 쉰 등 
잔등, 콧등, 귓등, 손등, 발등까지 만지고 싶다, 거기 
얼굴을 묻고 쓰다듬고 싶다 

이젠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딸
세상에서 가장 그립고 사모치는 등은, 지금 없는 
돌아 간 등이다 누구라 쭈그러진 
등짐일지라도 만질 수만 있다면 행복이지 않을 가, 

*이도윤의 등

#30 언니 냄새/강 학희


오랜만에 언니에게 들렸다
여기는 돌아올 수 없는 외길,
코로나로 새 식구가 늘고 
이별잔치 치르고 
흠뻑 소란하지만
그리움을 키우는 사람들을 닮아 
풀밭은 주름 없이 유난히 푸르다

유언처럼 풍광 좋은 곳으로 이사 온 지도 십년
뉴 포트 언덕 아래로 반짝이는 바다,
모락모락 사람 냄새 끝자락과 맞닿아 있어
이 동네 사람들은 발소리만 들어도
후박나무 잎새가 팔랑거린다 

동네 한 바퀴 휘-이 돌아보면
참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문득 낮은 소리로
킥킥대는 애들 웃음소리에 오 소소 풀잎이 돋는다
지척에서 또 듣고 싶은 달달한 애착으로  

저 만치서 달려오는 막내손녀 보고
휘이 달려와 나뭇잎에 머무는 바람, 
풀처럼 파란 언니가 왔다


#31 질겨 맛난 껍데기/강 학희 


자박자박 어둠이 걸어 들고 
발 시린 참새들 어미 둥지로 사라지면
하나 둘 가로등 불빛 깨어난다 
낡은 작업복도 장화도 불빛에 취한다
빈 속에 기름마저 빠져버린 껍데기들 
껍데기 채우러 간다 망원 골목으로
 60년대 그 화덕으로,  

하나, 두-울 밀려드는 사연,
시뻘건 숯불 위 잘나가던 한 때 이글이글 익어가고
잘리고 저미고 씰긋대던 시간도 지글지글 구어지고, 
진짜배기 속내는 쏙 뽑아버린 속없는 껍데기들 깝시다  
오기도 간도 쓸개 마저도 몽땅 빼 버린 빈 껍데기다 

조-타! 잔을 기울이는 왕껍데기, 졸껍데기, 
껍데기끼리 마음 털고 눈물 털고 주머니 털고, 탈탈 
빈털털이 껍데기로 망원 아래 합정 사거리까지 전진,  
‘네도 묵어봐라 내 껍데기 쫄 아 쫄깃쫄깃 맛깔 나다’ 
속 없는 껍데기들 악악대는 질겨서 맛있는 밤, 
다 껍데기다 맛난 빈껍데기
껍데기로 돌아가 낄낄댄 그 허랭한 시절 그립지만,
몸은 우리에 갇혀 잘 먹인 돈 돈돈이라, 


#32 북어 껍데기 /강 학희



예전에는 껍데기는 관심 없이 버렸는데 
요즘엔 껍데기가 그 중 제일이라
사과 고구마 새우 북어 껍데기까지 다 뜯어먹는다 
마켓에 북어 껍데기만 한 아름 따로 모아 진열했다 
어류 콜라겐에 주목, 상술 한 봉투가 잘 포장되어 있다

말라 비틀어진 북어 꺼풀 한 줌 짠물에 담가주면, 
까슬한 껍데기는 유영하던 한 시절 푸른 물결 찰방거리다 
잃었던 내장 기억으로 말랑하게 살아난다 
첩첩 오래되어도 어미 자궁은 잃은 아기 기억하듯, 
껍데기의 오래된 내장은 유효하다 

달달 평생 끓이던 열불에 보드란 껍데기 볶아 
물 미역 생채 위에 올리면 껍데기 나는, 입맛조차 
다시지 못하는데 부자父子는 아직도 파먹을 게 남았다 
속은 관심 없고 짱짱한 겉만 보면서 
힘차게 머리를 박는다


# 33 꽃을 수선하다/강 학희



결혼 40주년 마흔송이 장미 바구니가 왔다 
황홀은 잠시, 화 무는 십일 홍 
몇 날 빤짝한 절정은 수천 꽃잎의 아쉬움이다

추레한 낡음 수선할 길 정녕 없는지
나름 곱살한 몇 얼굴 살릴 수는 없는지
막힌 곳 이어주면 공연한 헛수고일까?

꽃을 수선하다, 
넘어져 조각조각 난 고관절 끝까지 수선해보자 
내 고집에 아픔만 키우다 가신 울 엄마 생각에 
“스러짐은 처음부터 내장된 마무리여”
말씀 새겨 수선한 꽃은 물병 대신 벽에다 건다

결국 손 안의 한 때는  
검붉은 흙 장미 목관 안에 보관되는 우리, 선선히 
드라이 플라워 본체나 잊지 말자
옆에서 칭얼대던 손녀 아랫도리 씻겨주니 까르르 궁둥이가 
시원히 웃는다 후르르 꽃 이파리 거시기도 사뿐하고, 

받아들이며 살아있는 기분 가붓하지만,
못 내 떠나기 전 몇일 더 보듬어 드릴 걸, 살짝
한 숨 바람이 인다


# 34 오늘도 행복하기/강 학희


시리얼 한 사발, 사과 한 알에 커피 한잔 
간단한 아침식사보다 
엄마의 콩나물 국과 깻잎장이 더 좋다

양송이 스프, 뉴욕 스테이크에 와인 한잔
낭만의 저녁식사보다 
상추쌈에 깡 된장, 삼겹살 구이 질펀한 
평상 위 상차림이 더 좋다 생각하다 
그렇다고 행복하고, 그렇지 않다고 불행할 까?

행불행은 생각을 끄고 켜는 일, 
오늘은 오늘을 위한 것, 생각 스위치를 바꿔보자! 
어제의 뒷방 스위치 끄고 오늘의 앞방 스위치 켜고 
긍정을 막는 아냐 블라인드 걷어내고 
감사의 창 활짝 열어 빛살 들이면,

어제는 그래서 괜찮았고 오늘은 이래서 기쁘고
내일은 그리할 것에 즐겁고, 스위치 끝까지 돋우면
지금은 그러하므로 더욱 행복하다고, 


# 35 어떤 시인/강 학희

그가 떠나면서 
내 것을 달라고 했다
난 참 많이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에게 주려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서랍 안에 있는 것들,
그 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게 머물 뿐

그를 빈손으로 보낼까
밤새 뒤척여도 나만이 줄 수 있는
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음은 이쪽 
몸은 벌써 저쪽으로
그렇게 흘러가야 할 시간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돌려 세워
가만히 손을 잡아
내 것을 쥐어 보냈다

그 밤 신음하던 시 한 수,
그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이 없었다면 
참 많이 울었을 것이다.


# 36 아기시인/강학 희

손녀가 떠나는 새벽 5시 
“집에 가야 지” 속삭임에 잠꾸러기 발딱 깨 마이 홈? 
투정없이 눈 비비며 일어난다 아, 집이란 이런 거구나

성애 하얗게 낀 차창 보다 
“할미, 차가 울어, 나처럼 눈물 나!” 이슬방울로 
저를 비유한다 아, 시적 표현이 란 이런 거구나

다시 달려와 쪽 입맞추고 
“할미 오케이? 자고 나면 비행기 와 나 내일 와” 
시간은 돌아오므로 괜찮다고 아, 위로 란 이런 거구나

네 살 아기시인 떠난 후로 
하늘 보면 새털구름이 남긴 행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보고싶다고 옹알옹알 귀연 시인 옹알이가,


#37가을을 풍경하다/강 학희

풍경을 마주한다
해마다 오는 가을이지만 해마다 다른 풍경
마주한 다른 나,

허공에 걸린 사진
가을빛 스테인드글라스 신비로운 문양 사도행전 지도 같다
그 들이 지쳐간 갈피마다 
형용할 수 없는 노랑 핏자국, 숭숭 뚫고 나간 말씀들 수북이 찍혔다 
메마른 전언이 떠도는 
가을 성전 풍경하다

한 해의 수난 처
그루 그르 14 나무 성상에 무릎 꿇어 풍경을 경배한다
나성에는 없는 
그린 베이 가을 성전에는 갈잎 협성기도 만장하고,
찬란한 무 봉의 손 길이 여
풍경을 풍경하는 갈바람 하늘을 향한다



# 38 Emeryville 연상작용/강 학희

물안개 헤치고 동트는 새벽,
에머리 빌* 해변으로 새떼들 조르륵 몰려든다 
못다 나눈 얘기들 조잘대다 
뚜-우- 태평양 뱃살 가르는 소리에
어데서 만나자 발가락 상형문자들만 남기고,  
점.점.점 허공으로 떠오른다
물총 새떼 오늘을 물어 해변의 뒤뜰로 나른다 
물바람 물총새 자전거 자동차 빌딩숲 숨소리
도시를 깨운다 시간을 세운다
째깍째깍 시간의 톱날 속으로 스미는 사람들, 
소소한 시간의 혓바닥 손바닥 발바닥 비비다 
점.점.점. 반점으로 저문다
1/365 시간의 뼈 속 무게만큼 지우고 다시금 
물안개 헤치고 동트는 새벽, 
나는 하루의 무게만큼 자란다


*Emeryville북 가주 버클리 가까운 곳의 해변 도시 

#39기억의 랑데부/강 학희

돌아다보니, 
지나간 시간은 어디로 날아간 걸까
지나간 시간이 있기는 있었던 걸까
지나간 시간은 시간이 아니던 걸까

돌아다보니, 
과녁 없는 화살처럼 어딘가로 날아간 
시간을 지나는 나는, 오로지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너 만을 위한 너의 지나간 시간일까

돌아다보니,
지나간 시간은 나를 해체하고 나는 오는 시간을 해체하고, 
우리는 방금  
새 시간을 통과해 어디로 가는 걸까

돌아다보니, 
나는 오래된 달리 기억의 영속 중 
어딘가 녹내리는 시간이었던가 문득 알 수 없는 사막도 
바다도 다 데자 뷰
지금시간이 나를 살고 있나 내가 이 시간을 살고 있나 

돌아다보니,
기억은 점점 낯설어지고 멀어지고 
차츰 희미한 영속으로 지나가도 거기 무척 익숙한 무엇이 
있듯 없듯 
어딘 가에서 날아와 어딘가로 가는,


# 40 빛을 잡다/강 학희

눈물이 줄줄 흐른다
왼쪽 눈물샘이 막힌 것 같다고
악물 치료 후 두어 시간정도면 괜찮을 거라며
난시도 있네요 오른쪽 시력이 상당히 나쁘지만
다행히 왼 눈이 보안해서 참 다행이라 한다  

왼쪽 눈에 거즈를 댄 채 선글라스 끼고
거리로 나서는데 비틀, 세상에나! 온통 뿌옇고 
불분명하다 양 눈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한쪽 눈만으로 보니 이렇게 다른 것이다

아, 함께 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둘이라는 건 이렇게 감싸는 것이었구나 결혼 43년동안 
나는, 우리 삶의 왼 눈이었을까 오른 눈이었을까?
혼자가 아니어서 세상이 살아 볼만한 곳이었던 것을,
혼자가 아니라 세상 살기 힘들다 티티새였구나
분명히 머리 속도 눈앞도 밝아지는데 
안 뵈는 척 비틀, 고마운 그의 손을 꽉 잡는다
빛을 잡은 손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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