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6

2014.03.12 03:52

강학희 조회 수:43

#13 배꼽의 풍문 /강 학희


무언가 그리워지면 밤하늘을 봅니다 
마른 배꼽, 저 밑까지 촉 촉해지는 내 꼭지 별 보일까?

깜박 깜빡 내게 말을 거는 별 하나, 
눈 시린 12월 동짓날 
지상에 떨어진 나는 그의 별똥별이라 하네요

1,500광년 먼 하늘, 은하계의 십자성 
암탉의 꼬리별*, 내가 누웠던 꼭지점이지요 
하늘이 무너져 별이 
뜨지 않을 때까지 나는 저 별의 배꼽 별이라 하네요 

아무리 깜깜해도 제 별만 보고 걸으면
어디에 떨어져도 어떤 서리꽃이 피어도 
무섭거나 서럽지는 않을 거라 속삭이는 별똥별의 
비밀 하나 들었어요 

지상의 배꼽 달린 모든 별똥들은 제 젖줄 달린 
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풍문인데요, 궁금하면 
몹시 추운 날 유난히 반짝이는 별에게 물어보세요
 

*태양보다 10,000배나 더 강한 빛을 내는 데네브, 암탉의 꼬리는 
북쪽의 십자성이라 불리는 十字형 백조자리에 속하며 8000년 후 
북극성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은하수 속의 별.

#14 압정그늘 /강 학희





집 앞 우체통 아래 쭈그렁이 앉아있는 
늙은 누렁이 한 마리
그저 고개만 돌려 일별하고는 우편물 
다 꺼내도록 모른 척 얼굴 묻고 꼼짝하지 않는다 
저 눈초리, 저 몸짓 섬뜩하게 익숙하다 
암 진단받고도 언젠간 받아야 할 당연한 짐인 듯 
새삼 헤집어 더 알려고도   
재삼 헤 짚어 디디려고도  
않던 처연한 언니 눈빛이다 한낮 부엌 바닥에 
갓 쉰, 부산하던 한 여인을 싹둑 잘라 던져버린 
작두 날 서늘한 그늘, 
말도 붙이지 못하고 밥도 놓지 못하고
혼자 지고 있는 그림자 위로 석양이 물들도록 다만,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쭈그러진 막무가내 압정그늘
황구 언니, 면전에 용쓰며 
물 한 바가지 떠놓고 먼데로 눈길 모은다

#15명랑한 월병을 먹다/강 학희


떴다. 싸-아-한 환 알,  
동그란 달 하나 털어 넣으면 엄마가 골 아플 때 먹던 
명랑*처럼 속이 환해지고 명랑해질 것 같아
통증 없는 달처럼 환한 얼굴로 잠들 것 같아,

두 손 가득 명랑 표 달떡 먹고
달, 달 무슨 달 엄마 같이 둥근 달 부르며 달 동네로 간다 
둥근 달 명랑한 딸내 미가 떴다  

오늘은 딸 하나 꿀꺽 삼키고 명랑한 달
키우지 않아도 보듬지 않아도 통통 차오르는 젖 맛 월병, 
산천 비릿한 엄마 젖 냄새가 떴다


*1970년대 편두통 약 이름


#16 노랑나비 효과/강 학희


축, 처지는 무거운 날개 깃 세워 
노랑 무늬 나비 한 마리
빛살보다 더 빨리 파닥파닥 필살로 날아간다
빗 속 내 울음까지 물고 간다
노랑 무늬 나비 한 마리
우주와 교감하는 놀라운 효과, 어마 무시한  
눈물 무게를 밀고 갈 수 있다니, 


#17 밥 짓다 그리움이 타네/강 학희

쌀 씻다
당글당글 싸라기 말 걸어오는 소리
하얀 이 밥 좋아하던 언니일 가 

번호는 
있어도 받을 이 없는 서러운 전화 대신 
창 열고
“밥 됐 어, 눌은밥 불기 전에 와“ 
언니를 부른다 
뭉게뭉게 한 술 뜰지 몰라,

그 새 한술 뗬나?  
토실한 언니 뭉개 작 뭉개 작 흘러가고
그리움 타는 내음 진동하네


#18 찔끔, 눈물 나도록 우습다/강 학희

잇몸 다 드러내고 
히히, 허옇게 웃은 일 은제였나? 
우 하하하 박장대소 웃을 일이 있었나? 
에 에라! 꼭 웃을 일 있어야만 웃겠냐?
우 하하하 이 히히히 
배 창시 땅기도록 웃는다
그냥 배를 잡고 있는 힘 다해 웃었더니 
찔끔 눈물까지 난다 
크게 웃자 했는데 눈물이 나는 게 우습다 
웃는다는 게 운다는 게 같은 끝이라는 게,

#19 너를 부르고 싶네/강 학희 


오늘은
마당에서 푸성귀 한줌 뜯어 놓고
너를 부르고 싶네

고추가 빨게 지기 전
소반에 깻잎, 풋고추, 묵은 된장 늘어놓고
입이 미어지게 상추쌈 먹으며 

세상의 틀에 매여 뒷전이었던
그냥 그런 얘기 나누는 한가함 속에 
늦은 조반상 마주하고 싶네 

말없이
눈으로도 얘기할 수 있는 
너를 불러 

그저 흘러가는 구름 한점 바라보며
한 입 베어 문 고추
세상보다 더 매운 그런 때가 있었지 

헛헛한 가슴
허기진 일상일 랑 평상에 뉘여 놓고
하루쯤 세상도 뒷전이었으면 좋겠네

오늘은 
더 늦기 전 야들 한 푸성귀 소리로 
너를 부르고 싶네 대면 세상으로 


#20 그 숲 한 잎의 여자*/강 학희

숲을 지날 때 
거센 바람에 큰 요동없이 되려 바람을 가지런히 
풀어놓는 산뽕나무 보았다

온몸 갉히고 숭숭 뚫린 
벌레 먹힌 닢. 닢들 되려 바람을 어르는 저 내공,
적막을 깨우는 외로운 바람의 속내 꿰뚫었나
동그란 소리 한마디씩 바람의 입에 물려 읊고 있네

늦가을 돈암시장 바람만 휘도는 산나물 좌판 앞
꿈쩍 않고 앉아있는 얼굴마저 얽힌 저 아낙,
쑹께 성게 성긴 가슴으로 세상의 자디잔 얘기를 
풀어낸다 그 숲 산뽕 입으로, 

무지근히 서서 
얽히고 뚫린 구멍 사이로 바람을 읊어내는 가락소리
세상은 이유를 
몰라서 살아지지 않느냐 고, 이러 그러 아파서 자꾸
만지작거리지않느냐 고,

*오 규원 한 잎의 여자에서 차용

  

#21 꽃 마음 /강 학희

동지 섣달 활짝 눈떠버린 참꽃* 보다가 곁불처럼 벙그레 피어난 분홍 꽃
이파리 미치도록 이뻐서 그래 한번은 미쳐 볼 만도 하지 끄덕, 끄어 덕, 
미치고 싶어도 미치지못하는 철든 마음 슬쩍 미안해지다, 들키고 싶지는 
않아 왜 때도 모르고 피는 거야? 한 마디 슬며시 얹어 놓고 몇 날 몇 일
모진 바람에 꽃 떨까 꽃 질까 어째, 어쩌나 고깔 모자라도 씌워 줄거나,

*먹을 수 없는 철쭉 꽃에 반하여, 먹을 수 있는 꽃이라는 뜻으로 
진달래꽃을 말함


#22꽃은 무얼 먹고 사나/강 학희 
                
시름 정국인지 
시린 정국인지 
촛불부대 태극 부대
“하야! 하야!" 
"탄핵! 탄핵!" 
진종일 
다툼 뉴스만 보다
티브이 있는 거실  
화분들 돌아보니 

수시로 
꽃피고 지던 화초들 
꽃봉오리 시든 채 
앓고 있다, 아이고 
얘들 아! 미안 타! 
뉴스 끊고 
판도라 음악프로 켠다 
악다구니 구호 
누구인들 기분 좋을까? 
순한 음률 
듬뿍 뿌려준다  



#23 산타의 속삭임 만나셨나요? /강 학희




나이 다섯 살 때 
산타 할아버지를 만났고
나이 여덟 살 때 
희망의 속삭임을 들었고

고요한 밤 오기를 
거룩한 천사의 음성 내 귀 두드리기를 
기다리고 기다렸지요

희망은 보일 듯, 들릴 듯 벅찼건만
철들어 어른이라 기에 둘러보아도
무엇이 선물인지 
무엇이 희망인지 알 수가 없네요

선물과 희망은 
어디로 간 걸까, 받기는 받았었나?

저 만치서 달려오는 
천사 같은 아이의 아이들 이만치서 
한아름 선물 안고 뛰어가는 반백 할아버지 
산타의, 희망의 속삭임 
이렇게 만나지는 건가요? 
반 생 지나 알쏭한 건 이 것뿐 없네요

# 24 쿨 한 버클리식 이별/강 학희


타말피스 산책로에 이별 식 공고가 붙었다 
믿기지 않는 물음으로 다가간 공원 식탁, 
꽃씨 몇 접시 호리병 두 개 사이 설 마가 사로잡은 
피터와 존이 오른 손들어 사진으로 반긴다

멍한 우정은 꽃씨 입혀 훨훨 날리고, 
맨 주먹 맑은 이슬 슬어 내리며 
꼬리 내린 견공들 킁킁 냄새로 알 듯 우리도 안다,  
어느 봄날 씀벅씀벅 들꽃 만발한 산책길에서 
분명 피터와 존의 낮은 두런거림 피어날 것을, 
지금 우리가 그리는 이별 그림은 
오늘 내일 모래 맴도는 시간 위에 그려진 
한 조각 발자국 화석일 뿐,  

안녕은 우리동네 버클리식으로, 온 몸으로 
네가 좋아하는 하이 파이브!!!!!로, 
다섯 손가락 허공에다 쿨하고 가벼이 그러니 이별아, 
너무 아파도 말고 그저 그 너머 상그릴라에서 
또 하이 파이브하자 
빠이는 또 다른 하이, 굿 데이 시작일 뿐이야,

#25 할머니의 유품/강 학희   


거뭇거뭇 묵은 홍시 빛 먹 감나무 여닫이장은, 
사시 사철 땡감들 투-투 질 
다 받아주는 아부지처럼 걸림 쇠가 없다 애초부터 
잠금 쇠고리가 없는 붙박이장이다 

늦가을, 무서리 지고 환하게 발가벗은 감나무  
피난살이 한 평 언덕배기에 
식구들만 한 짐지고도 후광이 나던 아부지다 
오만 떫은 감 삭혀 달랑 두엇 매단 까치 밥, 홍시는 
니들은 내 힘, 아비의 생존감이다 
납작 붙은 우리는 아부지 배꼽이다

감 꼭지 그래픽 거뭇거뭇 겨울나기 콧물 자국은 
영락없는 먹 감나무 문양 아닌가?
지지리 못난 배꼽들 배내 고리짝 아부지는 할머니 유품, 
먹 감나무 삼 단장 대물림 선약 받았다 
샌프란시스코까지 이민 와 4대째 대물림이다

*먹 감나무 속살은 검붉은 무늬들이 아름다워 좋은 가구의 목재로 쓰인다 


#26염소 바위를 찾아/강 학희
                -별 볼일 있는 버클리문학 산행 이야기               - 


그 도시, 도시로 
시멘트군들 밀려들고 빌딩군단의 번영은 수풀군도, 그 옆집 
염소 네 풀 방구리도 삼키고, 도둑 괭이 철 방구리에는 
아우성만 와르르, 
먹구름은 곳곳에 별일 있다 낮게 소문내도 아무도 모른 척 
별 볼일 없는 몇 시인들만 사라진 염소 찾아 신들을 맵니다

아- 오늘은 염소 네를 찾을 것 같아! 
시작 감각은 시詩적 상상력, 사과군들 망보고 있는 소도시 
보 데가 베이*로 진군, 진창 지나 드디어 산등성 너머 
수평선엔 염기가 자욱합니다 이제야 숨이 쉬어 집니다 
저 소로 따라가면 분명 염소 똥 땡땡이도 만나게 되리, 
꿈은 꿈일 뿐일까? 갯바람 옹송그린 곳, 
분명 염소 바위인데 염소는 없네요 흠, 까막눈 염소시인들 
무어~헨~ 울음같은 물음으로 해가 저뭅니다

본래, 세상사에 맹한 시인들은 자기가 아는 한가지에는 올인하지요 
지금 보이지 않아도 눈에 어린 것 찾아 죽도록 멤 맴돌지요 
오늘 밤하늘 염소자리**에는 두 뿔 맞댄 옛 시인 몇몇
젖꼭지 찾아 깜빡 일 겁니다 별 볼일 없는 시인들 시공너머 맴도는 
만년업이 바로, 시인들의 별볼일 아닌지요?

*염소바위가 있는 사과산지 북 가주 바닷가 도시 
**물고기꼬리 성좌, 물위는 염소 물아래는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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