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력사

2007.08.05 04:40

김혜령 조회 수:1580 추천:139

-좋은 아침이에요, 아빠.
딸의 목소리가 한 겹 눈을 덮은 잠 자락을 거둬낸다. 자리에 누운 지가 벌써 삼 년, 표정조차 맘대로 바꾸지 못하는 나를 향해 딸은 아침마다 그렇게 상냥하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딸은 아직도 나의 청각만은 예리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맹목적으로 믿거나 믿고 싶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어쩔 수 없는 버릇을 독백으로 풀어내는 것일까.
산소마스크를 채우는 내 거친 숨결 너머로 딸의 목소리는 언제나 조잘조잘, 얼음 풀린 봄날의 강물이다. 수많은 물방울들, 어쩌면 바로 눈물일지 모를 그것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장난질을 한다. 그 바람에 햇빛은 멋대로 튀고 부서지고. 금방이라도 하얀 포말을 뿜으며 둑을 넘어 흠뻑 가슴을 적셔 버리고야 말 것만 같다. 때로는 모든 것을 표백시켜버릴 듯 눈부시게 밝은 목소리. 딸은 무엇을 그렇게도 지워버리고 싶은 것일까. 지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산 것들은 무엇이나 제 그림자를 버릴 수는 없는 것인데.  
저 아이가 저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던가. 나는 좀체 안개가 걷히지 않는 시야 속에서 오늘도 벌겋게 부어오른 딸의 눈두덩을 확인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내가 자리에 누운 다음, 딸이 남편과 헤어져 나를 찾아온 다음, 딸이 좋아하던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결심한 다음, 아니, 그보다도 훨씬 전, 아내가 죽고 나와 단 둘이 되었던 그 어느 때부터, 딸은 제 목소리에 섞여드는 모든 어둠을 필사적으로 솎아내며 목소리의 조도를 높여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긴 아내가 죽기 전 딸의 목소리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기막히게도 나는 아내가 죽고 난 뒤에야 이미 학교 갈 나이가 되어버린 아이,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딸의 존재를 깨달았던 것이다. 아기 기저귀 한 번 갈아보지 못한 내게 그것은 아내의 죽음만큼이나 갑작스런 것이었다.
-아빠, 이제 봄이에요. 아, 햇빛이 참 좋네요.
오늘 딸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는 떨림이 담겨 있다. 팽팽히 부푼 돛폭의 터질 듯 불안한 긴장감.
커튼을 활짝 열어 젖힌 딸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말에 올라타듯 훌쩍 침대에 걸터앉는다. 딸은 눈에 보이는 삶의 어떤 구석에라도 어둠이 섞이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날렵한 동작으로 일관한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자동침대의 등받이를 조정하여 침대에 늘어붙어 있던 내 등을 떼어낸 다음 힘껏 주무르기 시작한다. 딸의 머리칼에서는 라벤더 향이 나지만, 내뿜는 숨결에서는 치약냄새를 넘어 삭을 대로 삭은 울음냄새가 난다. 온몸이 바짝바짝, 눈물까지 타들어 가도록 숨죽여 울고 난 사람들의 숨결에서나 맡아지는 냄새. 오래 전 내가 장거리 출장을 떠나던 날 아침 아내의 입에서도 그런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를 피해 숨을 죽인 채 서둘러 자동차에 짐을 싣고 멀고 먼 길을,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났다.
딸의 손길을 따라 서서히 등줄기에 피가 돌고 햇빛이 퍼져나간다. 쓰러진 고목 등걸, 부서지는 표피 사이에서 연둣빛 싹이 뾰족뾰족 눈을 찌른다. 싹이 펼쳐지고 잎맥을 따라 빛이 자라난다. 눈 속이 빛으로 가득하다.
하얀 빛 저편에서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다. 느린 움직임을 따라 펄럭 펄럭 빛이 뒤집힌다. 빛의 수렁 속으로 빨려들 듯, 조금씩 초점이 잡히면서 문득 눈이 마주친다. 아, 저 눈. 새까만 두 눈. 모난 방패 대가리. 구렁이다. 긴 세월 잊고 살았던 한 뭉치 기억. 선명한 진초록과 검정, 담황의 무늬가 엉킬 듯 풀어질 듯 번쩍인다. 그 위로, 챙챙챙챙! 꽹과리 소리가 쏟아져 내린다.
챙챙챙챙챙챙챙챙!
꽹과리 소리를 따라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여든다. 무심한 등과 등 사이로, 누군가의 겨드랑이 밑으로 언뜻 눈이 마주친 사내는 박박 깎은 머리에 어둡고 무표정한 얼굴이 꼭 죄수 같다. 도복이나 승복 같기도 하고 수의 같기도 한 물 빠진 이상한 검은 옷 속에서 사내의 바위 같은 몸이 때를 기다리는 폭탄처럼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문득 나도 가기 전에 삭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온몸이 바위 마냥 굳어버린 지금 그런 생각을 딸에게 전달할 방법은 없다. 하긴 거울을 보지도, 손으로 머리칼을 만져보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다. 지금 거울을 보면 어떤 사람이 있을까. 이미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매일 아침 오던 간병인이 나를 씻기려다 말고 딸에게 말했다.
아이구, 아무래도 내일은 목사님을 모시고 와야겠네요.
그때 그 여자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대답 없는 딸을 향해 간병인은 호들갑을 떨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이 한 분 계신데, 무신앙자들에게도 기꺼이 찾아가 기도를 베푸시는 분이시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에 그랬듯이, 어떤 죄인이라도 마지막 한 순간,  단 한 마디의 기도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으시는 분이니까요.
나는 발가벗겨진 채로 속절없이 누워 있을 뿐이었다. 돌아누울 수도 없는 나는 제발 저 이불을 빨리 내게 덮어주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내 안의 구렁이를 보았다. 내 육신, 빈 비닐봉지 마냥 힘없이 늘어진 피부 위로 검버섯이 얼룩얼룩한 몸은 이제 막 벗겨지려는 뱀의 허물을 닮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난데없는 십자가의 구원이라니. 가슴이 답답했다. 이 몸이 사라진다면, 허물 벗은 그 속의 것, 벗어지지 않는 그것까지도 사라질 수 있다면, 온전히 버릴 수 있다면, 바로 그게 구원이리라. 구렁아, 구렁아, 일어나라, 이젠 그만 이 허물에서 나가자. 나는 내 안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내 마음 어느 깊은 곳에서 퉁겨져 나온 돌멩이처럼 전에 없이 단단한 목소리로 딸이 말했다.
필요 없습니다.
고마웠다. 나 대신 가당찮은 구원을 물리치고 나 혼자만의 길을 믿어준 딸이 고마웠고, 때가 됐음을 타인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고마웠다. 훌쩍,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 후로 간병인은 오지 않았다. 대신 딸이 직장도 가지 않고 내 옆을 지키기 시작했다.
챙챙챙챙챙챙챙챙!
여기 모이신 남녀노소, 신사숙녀 여러 분들, 안녕하십니까?
몸피가 바위 사내의 절반밖에 안되어 보이는 비슷한 옷차림의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서 꽹과리를 두드리고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여러 분들, 자알 오셨습니다. 정말 자알 오셨습니다.
말라깽이 사내는 겨울나무 같은 몸을 구부려 꾸벅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한바탕 꽹과리를 친 뒤,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계속했다.
오널 여기 모이신 여러 분덜은, 펴영생을 두고 잊지 못헐 묘기럴 오널 보실 것입니다. 여기 저어 뒤쪽, 나무 그늘에 지금 부처님 맹크로 가부좌 틀고 앉아 계신 우리 도사님으로 말쌈 드릴 것 같으면, 정기 맑은 우리 나라 삼천리 강산, 사시사철 여기 선 이눔의 사투리 맹큼이나 오색찬란한 강산, 그 산중에서도 가자앙 영험헌 산, 천황봉, 삼불봉, 연천봉, 관음봉, 쌀개봉, 장군봉, 황적봉, 신선봉, 봉마담 골짝마담 신기 철철 넘치는 계룡산에서, 그 계룡산에서 장장 십 년도 아니고, 장장장장 십 오-년얼, 여자 한 번 안 보고, 술 한 뫼금 안 마시고, 그저 정진, 또 정진, 무예와 정기를 닦으신 분이시라. 여러 분덜, 이 도사님이 아무 디서나 묘기럴 보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허나, 저와의 하늘이 내리신 특별한 연으로 말미암아, 저를 보고 이렇게, 번개 본 구름떼처럼 모이시는 여러 분덜께, 특별 싸아비스를 제공허고자 느을 고심허는 저를 생각허셔서, 계룡산의 그 높고 맑고 푸른 정기를 이 탁한 서울에 사시는 여러 분덜에게 쬐금이나마 선사하고자, 보여 드리고자, 오널 이 자리에 특별히 나와 주신 것입니다. 그라믄 자고로, 이 분이 오널 여러 분덜 앞에 보여주실 채력(차력)이란 무엇이냐.
겨울나무는 무, 어, 시, 냐, 되풀이한 네 음절에 맞춰, 마른 가지 같은 팔을 흔들어 꽹과리를 챙, 챙, 챙, 챙, 네 번 두드린 다음, 지렁이를 발견한 거위처럼 길게 목을 빼어 침을 꿀꺽 삼켰다.
-엄마, 엄마, 할아버지가 웃는 거 같애. 입술도 달싹달싹 하시고.
-글쎄에?
딸의 목소리 위로 잠시 엷은 그늘이 지나간다. 실망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작은 구름을 띄웠나 보다.
-아빠, 나 오늘은 정원 손질 좀 해야겠어요. 아빠는 여기 앉아서 구경하세요.
딸은 가냘픈 몸 어디서 오늘 따라 그리 기운이 나는지, 온갖 장치가 줄줄이 매달린 바퀴 침대를 끙 소리 한번 없이 거뜬히 창가까지 밀어놓고 독백을 계속한다.
-아빠, 찰리 좀 봐주세요. 찰리, 엄마 따라 나올 생각 말고 할아버지랑 안에서 놀아요.
물론 손자와 나, 둘 중에서 상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움직이지도 말도 못하는 내가 아니라 영리하고 재빠른 손자 놈이란 걸 알면서도 이럴 때면 나는 지극히 짧은 순간이나마 즐거운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엔 그런 착각까지 계산에 넣은 딸의 밝디 밝은 목소리가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물결치며 울고 있는 걸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가슴을 적신 딸의 목소리가 내 몸 속에 뾰족뾰족한 서리꽃을 새기며 얼어붙기도 한다.
-아빠, 한국 비디오 틀어 놓을까요? 찰리 한국말 좀 배우게요. 괜찮지요?
-창문 좀 열어 놓을게요. 아빠 봄바람 좀 쐬시게요.            
아빠, 괜찮지요, 아빠, 아빠...... 딸의 독백 아닌 독백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가끔 불안한 생각이 든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자꾸만 나를 아빠, 아빠, 불러대며 눈치를 살피는 것일까. 혹시 이 아이 스스로 내가 제 아빠라는 걸 믿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아직도 다른 세상을 헤매고 있는 낯선 사람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그래서 다지듯 자꾸 불러보는 게 아닐까. 그렇게 불러, 나를 그리고 저를 이 자리에 어떻게든 얽어매어 두려고 저렇게 애를 태우는 건 아닐까.  
부드러운 천이 얼굴을 덮을 듯 쓰다듬고 지나간다. 바람에 부풀어오른 커튼은 창밖에 고여 있던 풀 냄새를 한 짐 내 얼굴 위에 부려놓았다. 마른 풀, 죽은 가지 냄새 사이로 연둣빛 싹들이 새 새끼들 마냥 작은 부리를 벌려 비릿한 봄 냄새를 토해낸다. 딸이 켜놓은 TV에서는 누가 나왔는지 자글자글 박수소리에 섞여 쿵짝쿵짝 음악 소리가 들린다. 제 삼 바이얼린은 반의 반음이 내려간 소리로 힘겹게 깽깽거리고 있다. 나는 바이얼린 파트가 끝날 때까지 참았던 숨을 힘겹게 토해낸다.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고 목구멍에서 가래가 그렁그렁 소리를 낸다.    
자고로 채력이란......
겨울나무가 말했다. 휘젓는 그의 팔은 공중을 긋는 활 같다.  
자고로 채력이란 것은 초능력이라. 초재연(자연)의 힘이라. 뭣이 되얐건 이 '초'자가 붙어 부리면, 훌쩍, 독수리 담 넘듯 넘어 서 삐리듯이, 초재연의 힘이먼, 자고로 우리가 아는 재연, 가시의 세계를 넘어선 힘이라아, 이 말쌈입니다. 그라믄, 이 초재연의 힘을 으떻게 보여 드리느냐. 여기 이 앞에 우리 애기 업고 서 계신 아주머니, 말쌈 좀 물읍시다. 에이, 부끄러워 마소. 아, 내 마누라가 난 자석은 아니래도, 우리 대한민국 단군 할아버지 자손일 것 같으면 다아 귀헌 우리 아그덜 아니오. 아주머니, 아주머니, 눈에 안 보이는 거 믿을 수 있소? 있소오, 없소? 읎지, 읎지라. 몬 믿지라아. 아, 눈 뜬 사람 코도 벼 가는 시상에 으떤 미친 눔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믿겄소? 그럼 이번에는 여기 이 아주머니 옆에 얌전히 서 있는 우리 학상헌티 한번 물어 봅시다. 믿을 만헌 일도 꼭꼭 짚어가며 가야 쓴다고 헐 때 어른들이 뭐락 허드나? 아, 여드름 좀 그만 문질러 싸코, 니 으른들이 뭐락 허드나? 아하, 기 너 덧난다 아이가. 쫌만 기다리모 내 이따 조온 약 줄 텐께, 진짜로 말끔허니 확 나서 뿌리는 존 약 줄 텐께, 대답이나 허소. 아, 이런 답답헌 학상 봤나, 아, 돌다리도 두들겨 보모 가락 허지 않드나. 그라모, 학상, 여기 이거 돌 맞소, 안 맞소? 이렇게 만져 보고 이렇게 두들겨 봐도 돌멩이 맞지예? 아주머니도, 여기 아저씨도, 이거 돌멩이 맞지예? 여기 할머니도 맞지예? 맞지예? 그라믄, 그라믄, 이 거이 고로코롬 학실한 (확실한) 돌멩이라믄 말입니다, 이 거를, 이 다듬이돌 만한 동멩이럴 내가 손으로 치먼 깨지겄소, 안 깨지겄소? 그라믄, 여기 이 황소 잡는 도끼로 치먼 깨지겄소 안깨지겄소? 안깨져, 안깨져어. 안깨져유우. 동멩이가 간지럼도 안타. 암시랑도 않다니께.
겨울나무는 작은 눈을 한껏 크게 뜨고 고개를 과장스레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마안.
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좌중을 돌아보며 챙챙챙챙챙챙챙챙 빠르게 꽹과리를 울렸다.
그렇지만 채력을, 초재연의 힘, 이 채력을 쓰면 옌장 (연장) 하나 읎이, 단숨에, 손짓 하나로 쩍하니, 무르익은 수박 갈라지듯 쩍하니, 두 조각으로 갈라진다는 거 아닙니까. 그뿐입니까. 여기 이게 뭡니까. 아주머니덜, 특히 우리 귀헌 애기덜 가지신 우리 아주머니덜, 놀라지덜 마쇼 잉.
사내가 제 앞에 놓인 상자를 덮고 있던 자주색 보자기를 펄럭, 걷어올리는 순간 앞쪽에서 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대열이 커다랗게 물결쳤다. 빛이 출렁이고 눈이 부셨다.  
-찰리, 할아버지랑 안에 있으라니까.
마당에서 갈퀴질하던 소리가 멈추고 딸의 목소리가 공기를 흔든다. 예기치 않은 방해를 받은 사람처럼 딸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이 날이 서 있다. 아마 딸은 기계적인 갈퀴질의 박자에 맞춰 어느 먼 곳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 누가 있었을까.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 밤마다 딸이 화장실에서 전화통을 붙잡고 울게 만드는 그 사람이었을까. 딸이 죽고 못사는 찰리도 그곳에 있었을까. 설사 찰리가 그곳에 있었다 해도, 아마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속으로 혼자 웃는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혼자 가는 꿈길, 훨훨 날 듯 가는 꿈길의 아이들은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살펴주어야 하는 의무의 대상이 아니고, 꿈의 주인에게 장난감이나 다른 무엇을 요구하는 존재도 아닌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깨끗한 옷을 찾아 입고, 요구사항도 없이 다정하게 웃으며, 꿈길의 주인이 어디를 향해 걸어가든 상관없이 의젓이 손을 흔들어 축복할 뿐인 것이다. 그 꿈길에 나도 있었을까. 흐흐, 염치없기는. 망령난 늙은이 같으니라구. 있었다면 발꿈치에 달라붙는 진흙이나 젖은 낙엽 정도였겠지.    
마당의 찬 공기 때문에 딸은 코를 훌쩍이며 다가와 손자 놈을 다시 살짝 밀어 넣는다. 부릉 부르응, 슈우우. 한쪽 발은 마당에, 거실 쪽의 다른 발은 날아갈 듯 뒤꿈치를 들고, 손에 들린 로켓으로 봄 하늘을 뚫고 우주로의 비상을 준비하던 손자 놈은 제 엄마의 단호한 손길에 부러 까르르 간지럼을 타며 물러선다. 딸은 왜 오늘따라 한사코 찰리를 내 옆에 붙여두려는 것일까. 내게 무슨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손자 놈은 거실 안 제 자리로 돌아갔지만, 창틀에 걸렸던 아이의 그림자는 그 자리에 남아 바람이 불 때마다 날개를 펄럭거린다.  
겨우내 마당에 쌓인 마른 잎들이 딸의 발 밑에서 버석버석 소리를 낸다. 지난겨울 저 나뭇잎 밑에는 누가 잠들었을까. 도마뱀, 달팽이...... 겨울은 저런 나뭇잎들을 덮고 땅 속에 잠들기 좋은 시절이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문득 졸음이 몰려든다.
-아아, 꾸움은 사아라아지고......
저걸 웬 젊은 놈이 저렇게 신나게 부르나. 아코디온처럼 쿵짝쿵짝 세상을 늘이고 줄이며 떠들어대는 TV속 가수의 모습은 흐릿해도, 내 먼 기억의 귀를 울리는 노래는 푸득푸득 날개를 치며 일어선다. 아아, 아아, 한껏 벌어진 입, 아니 그 이전 가슴을 터뜨릴 듯 가득 채웠을 탄성의 강한 힘을 타고, 노래는 눈부신 깃털을 흩뿌리며 흐릿한 망막 속에 녹아든다.
고목 등걸에 달라붙어 차력사의 시선을 찾는 내 귀에도 노래는 고풍의 꼬리를 끌며 흘러든다. 어느 날 머리를 박박 깎고 돌아와 방안의 모든 책과 책장을 불태워버린 삼촌은 달이 바뀌도록 그 노래만 끝도 없이 듣고 또 듣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삼촌이 사라진 뒤로 나는 잠을 자면서도 그 노래를 들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순식간에 괴력을 다해 부숴 버리고도 무엇이 미진한지 살기어린 눈을 번득이며 두리번거리던 삼촌, 마침내 뿌리를 잘린 나무처럼 벌렁 누워 버리던 삼촌의 모습이 노래를 타고 눈앞에 떠다녔다. 이상하게도, 꿈이 사라졌다고 외치는 절규 앞에서 나는 자꾸만 가슴이 벅차 올랐다. 가슴에 조금만 힘을 주면 내 가슴을 누르고 있는 어떤 바위도 쪼개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아는 세상을 모래알 같이 산산이 날려 버리고, 어떤 중력도 뚫어 버릴 것만 같았다. 노래가 날아가는 거리만큼, 노래가 만들어내는 허무감의 크기만큼 세상도, 나도 커지는 것만 같았다. 노래가 녹아 사라진 하늘은 한없이 넓었고, 누군가의 사라진 꿈도, 그리고 그 알지 못하는 꿈에 어처구니없이 관통 당한 나 자신도 노래를 듣는 동안만은 무한, 또는 무에 가까우리 만치 커져 갔다. 세월이 지나 그 여자, 진주를 품에 안았던 순간에도 나는 그렇게 황홀하게, 번지듯 커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챙챙챙챙챙챙!
맞십니다. 구렁이 맞십니다. 허나, 이건 예사 구렁이가 아닙니다. 이 구렁이로 말씸디릴 것 같으면, 꽃 같은 삼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여러 분덜 잘 아시지요?
겨울나무는 찢어진 뱀눈을 반짝 빛내며 쩝, 입맛을 다셨다.  
그 백마강 은빛 물줄기를 스을슬, 온몸으로 샅샅이 맛보고 훑으며 스을슬, 또 스을슬, 고렇코롬 거슬러 올라와서니, 연천봉, 관음봉, 신선봉을 돌아돌아, 마침내 신선 옷자락 활짝 펼친 은선폭포 아래 또아리를 칭칭 틀고, 계룡산 정기 마시며 장장 구백 하고도 구십 년을 산 구렁이, 아니 이무기입니다요. 여러 분 이무기가 무엇입니까요. 이무기가 용이 못된 뱀이 아닙니까요. 이 이무기가 이 생에서 지은 업이 워낙 많아 천년이 가깝도록 용이 되지는 못허고 있지마는, 그려서 지금 이렇게 저와 함께 시장바닥에 나와 앉았지마는, 흐흐, 여러 분, 이 이무기가 날아오르는 것을, 번쩍 번개 치는 짧은 순간이나마 이 굵은 몸통으로 훌쩍, 버드닢 마냥 날아오르는 것얼, 오널 지가 여기 이 채력사 도사님과 함께 여러 분덜 눈앞에 똑똑히 보여 드리겄습니다. 그래도 우리 아주머니덜, 겁먹지 마세요. 겁먹을 일 암시랑토 없습니다. 여기 이 분이 누구십니까. 이 분이 아까 지가 말씀드렸듯이 바윗덩어리를 맨손으로 쪼개는 바로 그 채력사가 아니십니까. 이 구렁이, 이 이무기가 훌쩍 날아오르는 순간, 우리 채력사님이 이 칼로......
겨울나무는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몰라도, 제 키만큼이나 긴 칼을 단숨에 쩍 뽑아 보였다. 뽑혀 나온 칼날이 햇빛 속에서 눈을 베어낼 듯 날카롭게 빛났다.
그러니까 여러 분덜 끝까정, 한 분도 가지 마시고 끝까정, 평생 잊지 못헐 진풍경, 날으는 구렁이, 오널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보십시오. 자, 그럼 채력사님 모시기 전에 잠시 말씀 올리겄습니다. 오널 지가 여기 가지고 나온 이 약으로 말씸 디릴 것 같으면, 물 맑고 산 좋고 정기 가득한 계룡산 심심골짝에서 천년에 한번 피어난다는 신선초로 만든 것으로서......        
나는 그날 밤이 깊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고, 끝내 용이 되지도 날지도 못한 구렁이는 그날부터 내 안, 차력사가 쪼개 놓은 바위 속에 들어와 살았다. 아아, 꾸움은 사아라아지고. 끝없이 맴도는 노래를 따라 구렁이는 번쩍이는 몸을 비틀어 또아리를 지었다. 삼촌이 버리고 간 빈방에 앉은뱅이 책상을 놓고 책을 읽다 잠들어 첫 몽정을 했을 때 구렁이는 오래된 또아리가 불편한 듯 슬쩍 몸을 틀었다.    
처음 진주가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훌렁, 보자기가 벗겨진 구렁이처럼 눈이 부셨다. 그 빛을 타고 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구렁이는 천천히 엉킨 또아리를 풀었다. 진주가 내게 손을 내밀었을 때 그녀의 손에 닿을 구렁이의 차가운 표피에 대한 상상은 나를 도망치고 싶도록 움츠리고 전율케 했다. 그리고 진주가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는 깊고 어둔 수렁 속에 떨어진 구렁이에게 말했다. 이젠 그만 잠을 자라. 꿈도 없이 깊이 깊이 잠들어라. 죽음 같이. 나는 구렁이 위로 바위 문을 닫았다.  
-찰리, 책장에 기어오르지 말라고 했지.
-심심해서, 책 읽으려고......
딸의 한숨소리. 그래도 딸은 재빨리 목소리를 돋우어 말한다.
-어느 책? 엄마한테 말해요. 이거? 아님 이거?
-자, 여기. 옛날, 할머니 책이다. 그래, 우리 찰리 그 동안 한글 얼마나 늘었나 보자. 천천히, 큰 소리로 할아버지한테 읽어드려.  
-옛날, 하 예날, 아주우 조흔 예날에*......
창 밖에선 다시 쓰윽쓱 갈퀴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딸은 겨우내 패디오에 쌓인 낙엽을 치우고 있는 모양이다.
죽은 줄 알았던 구렁이를 깨운 것은 아내였다. 여고시절 부모 따라 이민 갔다는 여자는 모처럼 서울에 나와 맞선을 보는 날, 책을 한 보따리 사들고 얼굴이 벌개져서 헐레벌떡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그리고 변명처럼 말했다. 미국서는 한국 책 사기가 힘들어서요. 그날 덕수궁 국화전을 돌아보는 내내 나는 여자의 책 보따리를 들고 다니느라 원숭이처럼 팔이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기뻤다. 여자와 함께 걷는 길에 책이라도 들어줄 수 있다는 게, 진주가 있는 미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어쩌면 그보다 더 죄스런, 아직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목적을 숨기고, 여자와의 맞선자리에 나온 나의 양심을 조금은 가볍게 해주리라고 감히 믿었던 것이다. 가을 빛 속에 은은히 떠다니는 국화향기를 맡으며 구렁이는 수렁 속에 비쳐드는 한 줄기 빛을 향해 방패 모양의 대가리를 꼿꼿이 쳐들었다. 부신 눈 속에서 가물가물 무언가 안타깝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찰스 아이브스라는 작곡가를 아세요?
언젠가 아내가 물었다. 할 말이 있어 안달이 났으면서도 아내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그 사람, 평생 보험을 팔며 살았다지요?
낮에는 보험 팔고, 밤에는 작곡하고......
아내는 내가 대학시절 작곡을 전공했고, 이민 후 어쩔 수 없이 보험을 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속을 꿈틀꿈틀 휘젓고 있는 공상의 실체를 헛짚은 게 분명했다. 하긴 그런 식의 위로는 그녀 자신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화장실에 갈 때도 노트와 연필을 들고 다니는 여자였으니까.
그리고 또 몇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아내는 밤늦어 돌아온 내게 찰스 아이브스의 음반을 내밀었다. 알콧, 쏘로우, 아메리카...... 그런 곡명들을 읽다가 나는 아내의 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밤에 나는 그 음악을 틀어 놓고 플로리다의 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개의 서로 다른 음조가 뒤섞여 엉키고 갈라지며 만들어내는 묘한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내 안에서 몸을 비트는 구렁이를 보았다. 전화통 저편에서 진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모두, 모두, 내 잘못이야, 내 죄야...... 그만, 이젠 그만...... 죽고 싶어. 남편이 깰세라, 숨죽인 목소리로 진주가 청승맞은 대사를 읊조리며 훌쩍거렸다. 또아리를 풀어내려는 구렁이의 번쩍이는 몸통을 따라, 검정이 진초록 줄무늬를 휘감기가 무섭게, 슬쩍 몸을 빼낸 진초록이 다시 담황색 줄무늬를 휘감는가 하면, 어느 새 담황이...... 이 여자는, 왜 죽고 싶도록 괴롭다는 이 여자는, 남편도, 나도, 저 자신도 버리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걸까. 죽으면 안되지. 날 두 번씩이나 버리게 할 순 없지. 나는 흩어지지 않은 단정한 목소리를 낮게 깔아 말했다. 느리게 일어선 담황이 진초록과 검정을 사정없이 옭아맸다.  
-예날, 하 예날, 아주우 조흔 예날에, 음매애 소 하나가*......
-엄마, 소가 뭐야?
-카우?
-으음 매애, 으음 매애...... 할아버지, 한국 소는, 히히, 염소 같이 생겼어? 매애 매애 그러게?
마침내 출장을 핑계 대고 플로리다의 진주를 찾아가는 길고 긴 길에도 나는 그 음악을 들었다. 푸른 벌판과 암벽 사이로 구부러진 산길, 스쳐 지나는 나무 그늘에서 나는 내 기억의 건반을 누르는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카 스테레오를 타고 나오는 음악과 기억 속의 소리는 서로를 얽어매고 풀기를 계속했다. 늘어선 나무들 사이에서 아내가 꿈꾸듯 걸어 나왔다. 할 말이 있는 듯, 그러나 말을 삼킨 채, 나를 바라보다가 사라지곤 했다. 고개를 젓고 앞을 보면, 텅 빈 하늘을 흔들며 진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죽고 싶어, 죽고 싶어. 아내는 줄줄이 늘어선 나무가 되었고, 진주는 울음소리와 함께 하늘 속으로 퍼지고 번져 나갔다. 차도를 꽉 채우도록 비대해진 구렁이가 서서히 몸을 조여 왔다. 구렁이는 나무와 하늘과 길을 휘감았다. 나무와 하늘과 땅이 뒤섞이면서 속이 메슥거렸다. 나뭇가지마다 아내의 눈이 매달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한 손을 운전대에서 떼어,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딱딱한 여권과 두 장의 비행기표가 만져졌다. 반대편 주머니에는 여행자 수표가 들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눈을 부릅뜨고 구름이 걸린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 말라빠진 사내 하나가 거기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호, 야아호...... 영주권을 받고, 시민권을 받아 여권을 만들고, 많지도 않은 여행자수표를 마련하기까지의 칠 년 남짓한 시간동안 나는 해마다 정월 초하루면 산행을 거르지 않았다. 내 딴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올해는 꼭 돈을 벌어보겠다는 다짐이었다. 물론 아내와 딸아이를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늦은 밤 좁은 단칸 아파트에 밀어 넣어둔 그들의 죄 없는 눈과 마주치면 울화가 터졌다. 보험을 사라는 말허리를 자르며 달깍 끊어지던 전화 소리가 들리고, 성가시고 멸시가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얼굴들이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복수하듯 내 몸에 달라붙는 아내와 딸의 시선을 거칠게 자르며 그들 앞에 바위 문을 닫았다. 그리고 실같은 틈새로 빛을 찾듯 진주를 찾았다.  
야호, 야아호...... 하이야...... 진주, 진주우...... 아아악! 등산 기념으로 장난스레 질러봤던 소리는 잠시 바위를 쪼개던 차력사의 기압을 흉내내다가, 곧잘 칼에 찔린 짐승의 비명이나 울분에 찬 고함으로 변해버리곤 했다.
나는 사내의 비명 소리에 쫓기듯 서둘러 차를 몰았다.
가방 하나 가득, 빈 서류들을 채워 넣고 온종일 길거리를 떠돌던 사내는 저녁 시간이 되어도 쉬이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햄버거 하나를 사들고 심야 극장에 앉아 새벽을 맞기가 일쑤였다. 멀찌감치 한 두 명의 관객이 그림자처럼 앉았다 사라지거나, 스크린이 밝아지는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의 성교 장면을 직접 목격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깜깜한 극장에 앉아 있는 게 편안했다. 교활하게 찢어진 두 눈, 제 안의 욕망이 아무도 풀 수 없게 얽히고 설킨 구렁이에겐, 천년이 다 되도록 용이 되지 못하는 구렁이에겐, 퀴퀴한 냄새나는 어두컴컴한 장소가 제격이었다.
-아주우 조흔 예날에 음매애 소 하나가, 길을...... 길을 내려오고 이써스브니다.*
-할아버지, 이거 맞아? 이써어스브니다?
-할아버지, 또 자? 할아버지이, 나 심심해, 놀자아.
창 밖 딸의 갈퀴질 소리 사이로 무언가 시멘트 바닥에 탁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어느 새 유리창에 코가 납작해지도록 달라붙어 있던 손자녀석이 소리친다.
-앗, 달팽이다. 엄마, 달팽이 기어간다.
카펫에 납작 엎드려 창 밖의 달팽이를 살피던 녀석은 탁자 위에 종이를 펼쳐 놓고, 들들 소리내어 깎은 연필을 잡은 채 커다랗게 말한다.
-겨우내 포근한 잠에서 깨어난 달팽이는 더듬이를 쫑긋쫑긋, 길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어디, 가면, 친, 구, 르을 차자, 치기 장난을 할 수 있을까?
-근데 할아버지 뭘 그렇게 중얼중얼해?
극장에서 나온 마른 가지 같은 사내는 깜깜한 거리를 되는대로 달리다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 리커 스토어에 들어갔다. 신문을 뒤적이고 있던 주인은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지친 사내의 몰골 때문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 사이다 한 병 주십시오.
이런 새벽까지, 일이 많으셨나 보지요?
주인은 넥타이를 늦추고 꿀꺽꿀꺽 사이다를 마시는 사내가 안쓰러운 듯, 안쓰러움에 두려움이 가신 듯, 떨어뜨린 신문을 집으며 의자를 권했다.
예, 어차피 이민 생활이란 게 그런 거 아닙니까. 돈 없는 사람은 한국에 있으나 미국에 있으나 사는 게 그렇지요, 뭐.
살아보려고 아침 일찍 나와서 여태 발 품을 팔았는데......
사내는 단 하나뿐인 관객을 향해 꽹과리 반주도 없이 느린 타령조로 말을 시작했다.
우리 사무실에서 올해 들어 매달 경연대회를 하거든요. 제가 지난달까지 네 번이나 연거푸 일등을 했었는데...... 한번만 더 일등 하면 오관왕이 되는 건데...... 아, 근데...... 근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일본 놈한테 일등을 뺏기게 생겨버렸지 뭡니까.
주인은 졸음으로 무거워진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할 뿐 말이 없다.
그런데, 새벽에 참 좋은 음악 듣고 계십니다. 황제 협주곡은 역시 아쉬케나지라니까요.
사내는 '황제협주곡'과 '아쉬케나지'에 은근한 엑센트를 넣어서 주인을 향해 꽹과리를 두 번 가볍게 두드렸다.
아니, 어떻게?
사내는 주인의 놀라는 표정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제가 한때 작곡을 좀 했거든요. 지금은 남의 나라 와서 보험이나 팔고 다니지만.  
사내는 슬쩍 말끝을 흐려 구렁이 위에 보자기를 덮었다.
뭘 하시는 분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고, 능력도 있으신가 본데, 어떻게 이번에는......
아, 예에. 오늘 생명보험 딱 하나만 더 팔면 확실히 제가 이기는 건데, 사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약속 장소에 못 나왔지 뭡니까. 꼭 온다고 해서 늦게까지 기다렸는데. 제가 그것 때문에 여태 집에 못 들어가고 있지 뭡니까? 여엉 아쉬워서요.
생명보험이요?
아, 예. 그 생명보험이란 게 죽어야 나온다고 해서 기분 나쁘게 생각들 하시기도 하지만, 그게 사실은 죽은 사람이 남은 사람한테 주는 최고의 선물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먼지로 사라질 육신, 가는 길에 자식들 앞에 길 깔아 준다 생각하고......
챙, 챙, 챙, 챙, 사내는 머릿속에서 박자를 맞추기 시작하는 꽹과리 소리를 무시하듯 슬쩍 늘어뜨린 억양으로 점잔을 빼며 말했다.  
참, 집에 자녀분들 계시지요?
-마미, 텔레폰!
딸의 핸드폰이 울리기가 무섭게, 손자 놈은 신이 나서 마당을 향해 외쳐대고, 손자 놈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딸은 손자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챈다. 모기 소리 같은 전화벨 소리를 마당 끝에서 알아들을 정도였다면 모든 감각을 온통 다 곤두세우고 기다렸다는 말인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나가지 않은 것은 제 기다림에 대한 망설임, 꿈 앞에서 뒷걸음질치는 불안한 습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드르륵, 모든 상상을 거부하듯 유리문이 닫힌다. 열린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봄볕이 유리창에 얼굴을 문대며 번져간다. 온몸이 나른하게 풀어진다.  
잠시 느슨해진 담황에서 진초록과 검정이 엎지른 페인트처럼 천천히 흘러나온다. 푸른 벌판을 곧게 가른 길을 담황과 진초록과 검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불구불 물들인다.
꽃 같은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나는 겨울나무 사내의 뱀눈을 생각하며 쩝, 입맛을 다셨다.
......그 백마강 은빛 물줄기를 스을슬, 온몸으로 샅샅이 맛보고 훑으며 스을슬, 또 스을슬, 고렇코롬 거슬러 올라와설라무니, 연천봉, 관음봉, 신선봉을 돌아돌아......
벌판이 끝날 듯하던 그곳엔 산이 있고 산을 돌아서면 또다시 벌판이다.
신선 옷자락 활짝 펼친 은선폭포 아래......
길이 빨리 끝나기를,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꿈꾸며 스을슬, 또 스을슬...... 구렁이가 몸을 틀 때마다 뒤섞인 색깔들이 또 다른 색깔을 낳는다. 꿈같은 보라와 핏빛 빨강, 번쩍이는 주홍과 물결치는 파랑...... 그 모두를 지우는 하양까지. 대체 내 안에는 몇 마리의 구렁이가 살고 있는 걸까. 가지마다 걸린 시선에 질끈 눈감고, 하늘 가득한 울음소리에 귀 막고 구렁이가 가는 듯 안 가는 듯, 수많은 구렁이를 낳으며 지우며 기어가고 있다.    
허리에 차고 있던 호출기가 삑삑 소리를 지르며 부르르 몸을 떤다. 아, 호출기! 이걸 내가 왜 여태 차고 있었나. 흐흐, 하긴 내가 지금 출장 중이지. 휴가를 낸 직장엔 사직서를 우편으로 보내리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아내에게는......
호출기는 미처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생각도 길도, 호흡마저도 절단 내고 말겠다는 듯이 다시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아, 이놈의 호출기.

차를 버리고 비행기를 잡아타고 달려갔지만, 이미 저녁이었다. 아내는 딸을 데리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나는 아내의 죽음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딸의 학교로 달려가야 했다. 유치원과 탁아소 시설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맡아주는 시간은 한참 지나 있었다.  
알록달록 색종이들이 붙어 있는 유리창들은 모두 빛을 잃어 껌껌했고, 원장실에서만 푸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왔다. 부원장 앞에 맥없이 앉아 있던 딸은 나를 보자 믿을 수 없다는 듯 엉거주춤 일어섰다. 내가 학교에 나타난 것도 처음이었지만, 집에서건 밖에서건 아이가 나를 보는 일도 드문 일이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딸의 학교 가는 길을 어떻게 알았으며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늦으셨군요. 누구...... 아버지 되시나요? 얼굴이 창백한 부원장은 잠시 미심쩍은 표정으로 내게 운전면허증을 요구했다. 허겁지겁 지갑을 찾는데 늘 넣어두는 저고리 안주머니에서도 바지 뒤 주머니에서도 지갑은 손에 잡혀주지 않았다. 차에 두었나, 병원에 떨어뜨렸나. 뒤죽박죽이 된 기억을 더듬는데, 여자가 지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됐습니다. 여기 아이를 데려간다고 서명이나 좀 해주시죠. 여자는 내 서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재빨리 시간을 적어 놓고 말했다. 초과금 계산서는 집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분명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져 미친놈 같은 모습이었을 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여자가 묻지도 않았지만, 설명할 생각이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과정을 딸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말없는 딸의 시선 앞에서 무성영화 배우가 된 것 같았다. 어항 속에 들어 있는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흔들 듯 나는 저고리를 펼치고 더듬거리다가 닫고, 뜻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명을 하고는 누군가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내 앞에 입을 벙긋거리는 여자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긴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던 순간 내 양쪽 귀를 관통한 날카로운 쇳소리가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지워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득, 얼룩지고 구겨진 아내의 노트가 눈앞에 보였다. 몇 년이 가도 훔쳐볼 때마다 비어 있던 노트. 하얗다가 누렇게 바래진 노트. 목이 조여왔다. 가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는 듯도 했다. 다시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구렁이가, 길을 가득 채우며 도도히 흘러가던 구렁이가, 그 굵은 몸통으로 내 목을 조이고, 목구멍을 틀어막는 듯 했다. 나 자신의 동작은 물론 존재조차도 믿을 수가 없어 확인하듯 자꾸만 고개를 주억거리고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리 없는 어항 속 물결에 잠겨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말 것만 같았다.    
나는 목을 감는 구렁이를 패대기치듯 거칠게 넥타이를 풀고 아이를 향해 돌아섰다. 아이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딸은 아내의 눈을 하고 있었다. 어느 밤인가 내가 혼자 부엌에 앉아 진주와 긴 통화를 끝내고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친 아내의 눈도 그렇게 한없이 깊고 슬펐다.
딸은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다시 나를 소리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 때문일 것이다. 모든 감각이 거의 다 죽어버린 지금까지도 유독 내 청각만은 또렷이 살아있는 것은.
-오, 스티븐이*...... 할아버지, 여기 누가 뭐라고 써놨네. 누구지?
-스티븐 디달러스. 디달러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밀랍 날개로 날아오르다 날개가 햇빛에 녹아 추락한......
한 자 한 자 더듬더듬, 짚어가며 읽는 손자의 목소리는 추락이라는 글자 앞에서 주춤거린다.
-출악? 추악? 추악한...... 이카루스의 아버지 이름과 동일하다.
닫혀진 유리창문 밖에서는 딸의 그림자가 출렁거린다. 잘 들리지 않는 전화목소리가 멍멍하게 귀를 울린다.  
-하, 지, 만, 같, 이, 날, 아, 간, 디, 달, 러, 스, 는?
손자 놈이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외친다.
-할아버지, 나, 쉬이, 얼른 쉬 하고 올게.
어느 새 비디오 테이프는 한 바퀴를 돌아 제 자리로 돌아왔나 보다. TV속의 젊은 가수는 다시 목청을 뽑아 신나게 외친다.
-아아, 꾸움은 사아라아지고......
아내가 죽고 난 뒤 나는 나 자신에게 소리쳤다. 정신 차리라고, 공상에서 깨어나라고,  나만 바라보고 있는 딸아이를 똑바로 보라고 산에 올라 바위 속 같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나 자신을 향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울부짖었다. 나는 삭발을 하고, 거울 앞에 섰다. 왜 차력사는 전국방방곡곡 시장바닥을 돌며 바위를 쪼개야 했을까, 오래 전 삼촌이 진정으로 부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삭발한지 한 달이 못 가, 나는 아내의 죽음을 위로하는 주위의 시선이 부끄러워 모자를 사고 말았다. 모자 밑으로 보이는 민둥머리 때문인지, 더 이상 주저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인지, 보험은 전보다 몇 배나 더 잘 팔렸다. 그래서 나는 가끔 거울 속에서 암투병환자 같은 몰골을 바라보며 오래 전 겨울나무를 생각하고 혼자 웃었다. 아무리 마르고 삭발을 해도 암투병환자로 동정 받기는 그른 만병통치약장수보다는 죽음을 넘어 미래를 파는 생명보험장수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서성이는 딸의 그림자는 마당 전체를 덮을 듯이 자꾸만 커진다. 훌쩍 꿈길로 들어서지 못하는 딸의 발 밑에서 아침내 쓸어모은 나뭇잎만 사정없이 부서져 흩어진다.
-내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겠다는 게 아니라...... 그렇지만...... 오늘은......
닫힌 창 밖에서 웅얼거리는 딸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언젠가 들었던 진주의 울음 섞인 목소리 같기도 하다.
진주의 소식을 다시 접한 것은 찰리가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이었다. 물들인 게 분명한 까만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진주가 시집 하나를 들고 신문기사 속에서 수줍게 웃고 있었다. 칠순 고개에 펼쳐낸 첫 시집. 진주의 시집은 선천적 질병을 앓다가 먼저 간 막내딸에게 바치는 마음이라고 써 있었다. 내 딸과 나이가 같다던 아이. 못난 할망구 같으니라구. 오래 전 전화선을 울리던 진주의 울음이 다시 귀를 채웠다.    
-할아버지, 화장실에 왜 초가 녹아 있지?
화장실에 들어서다 말고 손자 놈이 외친다.  
어젯밤에도 딸은 아이가 자는 침실을 나와 욕실에서 전화를 받으며 울었다. 밤새 딸의 숨죽인 흐느낌이 매캐한 라벤더 향에 묻어 닫힌 방문 틈으로 흐느적흐느적 새어 들어왔다. 욕실의 전등을 켜면 낡은 환풍기가 함께 켜져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딸이 밤에 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촛불을 켜는 것이 제사상 차리는 것만 같아서 영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깔끔한 딸이 어젯밤엔 무슨 일로 초를 치우는 것도 잊어버린 것일까. 그렇게 태우고, 태우고, 또 태워 날려도 또다시 울어야 하는 일이라면......
나는 천천히 흩어졌던 호흡을 모은다. 늘어진 호흡기 선을 타고 산소마스크를 채운 부연 숨결이 가슴을 팽팽하게 채운다.  
머리를 박박 깎은 차력사는 길고 검은 옷자락을 날리며 바위 앞에 나와 버티고 섰다. 박수 소리가 들렸고, 한편에서는 저거 다 거짓부리라, 사기꾼 운운하며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리지만, 바위에 꽂힌 차력사의 매서운 눈빛은 흔들리지 않는다. 모인 사람들의 숨소리도 사라지고, 이 세상에는 차력사와 바위, 그리고 바위 속의 구렁이를 연결한 보이지 않는 끈만 남아 있다.
팔을, 손가락을 조금만, 조금만 더......
약주머니와 튜빙들이 주렁주렁 걸린 스탠드가 기우뚱거린다. 저 끈, 저 구렁이에 닿으려면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조금 더, 조금 더 뻗어야 한다.  
자고로 채력이란...... 가시의 세계를 넘어선 초재연의 힘이라......
딸은 아직도 줄에 묶인 새처럼 날아오르지 못하는 날개를 끌며 마당을 서성이고만 있다.  
아, 내가 딸과 함께 날아오른 디달러스였다면......
챙챙챙챙챙챙챙챙!
꽹과리 소리가 깃털처럼 쏟아져 내리고, 꼿꼿이 쳐든 방패모양 얼굴 속에서 차력사의 눈이 망나니 손에 들린 칼날처럼 번득인다. 그가 이 바위같이 굳은 몸을, 굳어 가는 시간을 가르리라. 구렁이를 꺼내고, 구렁이의 날개를......  
으랏차! 번개와 함께 세상은 둘로 쪼개졌다. 수박덩어리 마냥 쪼개진 고요한 세상, 세상 너머의 세상이 차력사의 발 앞에 힘없이 텅 빈 속을 드러내고 누웠다.
뚜우, 소리를 내며 호흡기의 전원이 꺼지고, 나는 내 한쪽 팔에 매달린 허연 튜브를 바라본다. 저게 여태 누구의 발목을 휘감은 족쇄였을까.  
-예날, 하 예날에 허물어진 초가 구불구불 접시를, 아니 길을......
손자 놈의 목소리는 여전히 낭랑하게 귀를 채운다. 속이 훤히 보이는 맑은 시냇물이 조잘조잘 목 위로 차 오른다.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에이, 할아버지 또 자는 구나.
턱을 지난 시냇물은 입술을 간질이며 귓속을 채운다.  
-옛날, 하 예날, 아주우 조흔 예날에, 잠이 깬 구렁이 하 마리가......
-으응? 할아버지 정말 자? 이상하다, 눈은 뜨고 있는데.
물은 천천히 몸을 풀어 뺨과 머리를 어루만진다. 몇 가닥이나 남았는지 머리칼이 해초처럼 몸을 흔들어 정수리를 어루만진다. 삭발하고 싶었는데...... 후우...... 나는 마지막 구렁이를 흘려보낸다.  
-구렁이 하안 마리가 쫑긋쫑긋? 음매애 음매애? 아니, 응......
-할아버지 뭐 보는 거야? 에이, 시시하게 대답도 안 하고.
구렁이 한 마리가 스륵스륵 길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소리 없이 퍼지고 번지며 녹아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첫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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