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2003.04.14 06:10

김혜령 조회 수:351 추천:35

냉장고 안에서 뭉그러져 가는 콩알들의 몸 비빔과
선반을 타고 내리는 진득한 복숭아의 혈흔을
가슴에 담아 두는 것.
산다는 건 그런 건지 몰라.

스러지고,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들의
비릿한 슬픔과
그 슬픔 뒤의 은밀한 기쁨까지도
'서늘한 곳에 보관'해 두는 것.

눈감고 찬장구석의 멥쌀가루와 찹쌀가루, 고춧가루 봉지들을 헤아리다가
때로는 문득 미숫가루 봉지에 뚫린 삼각형 구멍이 눈에 보이고
그 속으로, 그 보드랍고 순한 입자들 속으로
기어들고픈 충동
그 엿 같고 벌레 같은 그리움을
새파란 가스 불에 지져내는 것.
산다는 건 그런 건지 몰라.

산다는 건 그냥
그런 건지 몰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1 물 밑에서 김혜령 2003.08.07 535
30 Re..감았던 눈 다시 뜨면 김혜령 2003.06.20 526
29 피로 김혜령 2003.04.22 468
28 내 마음의 상류 김혜령 2003.04.16 503
27 김혜령 2003.04.16 459
26 입술 김혜령 2003.04.15 498
25 Imaginary Friends 김혜령 2003.04.15 364
24 산보하는 개 김혜령 2003.04.14 353
23 새벽 김혜령 2003.04.14 343
22 비의 음계 김혜령 2003.04.14 346
» 산다는 것은 김혜령 2003.04.14 351
20 봄꽃 질 때 김혜령 2003.04.14 350
19 음계연습 김혜령 2003.03.28 462
18 대화 김혜령 2003.03.28 315
17 오후의 소묘 김혜령 2003.03.28 494
16 우산 김혜령 2003.03.28 365
15 사잇길 김혜령 2003.03.05 339
14 네모나라의 요술피리 김혜령 2003.02.05 891
13 공사장을 지나며 김혜령 2003.01.29 351
12 줄 위에서 김혜령 2003.01.29 345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22,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