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보하는 개

2003.04.14 06:23

김혜령 조회 수:353 추천:51

산보하는 개를 한 마리 보았다.
하얀 바탕에 순한 점들이 잉크처럼 번진 개가
무언가를 생각하며 가고 있었다.
기억과 상상은 한 줄기라서
둥근 목걸이의 줄은 주인에게 잡혔으나
걸음 사이로 풀려 사라지는 구름을
킁킁 좇으며 개는
목걸이보다 커단 고리 속을 걷고 있었다.

나는 또 갇힌 개를 한 마리 보았다.
아슬아슬한 담벼락 위를 걷다가
아차 좁은 담벼락 사이에 떨어진 개는
온몸의 털을 세우고 더듬거렸다.
먼지 쓴 유리알 눈으로
끊어진 세상의 줄기를 찾아
메마른 목청을 퍼 올리고 있었다.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지나고
그림자가 풀려 번지는 하얀 길에서
내가 내 손에 펜과 함께 잡혀서
물끄러미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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