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2007.09.05 03:53

김혜령 조회 수:226 추천:17

한 여자가 예닐곱 살 된 여자 아이 하나를 데리고 시장한복판에 서 있었다. 여자는 기막히게도 내 딸 사 가시오, 하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기가 막혀 물었다. 대체 얼마에 딸을 팔겠다는 거요?
80원이면 됩니다.
여자의 준비된 대답에 가격을 물었던 사람은 진저리를 쳤다.
에이, 여보슈. 아무리 살기가 어려워도 그렇지, 겨우 80원에 딸을 팔아요?
그래도 허공에 꽂힌 여자의 흐린 눈동자에는 동요하는 빛이 없었다.
80원이면 됩니다.
흰머리 듬성듬성한 머리를 주억거리며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 나절 사람들이 모녀 앞을 지나다녔다. 딸아이의 가격은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은 80원이었고, 어떤 욕지거리나 모욕에도 여자는 얼굴 한번 붉히는 일이 없었다. 여자는 지치지도 않고 내 딸 사 가시오, 외쳤고,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는 딸의 표정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 모습을 오가며 지켜보던 한 신사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여자에게 다가갔다.
당신 80원 가지고 뭘 하려는 지는 몰라도 내가 80원을 줄 테니 딸을 데리고 가시오.
그러자 여자는 말했다.
아닙니다. 이 아이를 오늘 꼭 팔아야 합니다.
아니, 이 아주머니가 말귀를 못 알아듣네. 80원 준다니까. 당신이 원하는 80원.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아이를 꼭 팔아야만 합니다.
아니, 이 아주머니 정말 못쓰겠네. 아무리 궁해도 그렇지, 제 자식을 팔아먹는 에미가 어디 있소? 옛소. 어서 받아요, 80원.
그러나 여자는 신사가 건네주는 돈은 받지 않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아이를 사주셔야 돈을 받습니다. 이 아이를......
에이, 정말 몹쓸 사람이네. 짐승만도 못한......
얼굴이 벌개진 신사가 욕을 하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두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태 말없이 앉아 있던 딸아이가 송곳 같은 목소리로 나섰다.
우리 엄마 욕하지 말아요. 우리 엄만 나쁜 사람 아니에요. 우리 엄만 아파서...... 우리 엄만...... 우리 엄만......
목이 멘 아이의 목소리는 울먹임 속에 잠겨 버렸다.  
그러자 지나가던 노신사가 혀를 차며 다가섰다.  
이 아이 어른 말은 잘 듣소?
그러믄요, 그러믄요.
온종일 허깨비처럼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던 여자의 눈가에 붉은 빛이 번져갔다.  
그럼 내가 데려다가 허드렛일 막 시켜도 되는 거요?
그러믄요, 그러믄요. 이 아이가 어려도 손끝이 야무집니다.
마침내 여자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노신사가 건네 준 100원을 받았다.
여자는 어디서 기운이 났는지 펄펄 뛰는 걸음으로 뛰어가더니 금방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다.
한 손에는 거스름돈 20원을, 다른 한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떡 한 봉지를 들고 있었다.
여자는 20원을 노신사에게 주고 떡 봉지를 아이에게 건넸다.
배고프겠다. 어서 먹고 가거라. 할아버지 말 잘 듣고...... 에미 걱정은 말어.
여자는 꾀죄죄한 손등으로 제 눈물과 아이의 눈물을 번갈아 훔치며 이별을 서두르듯 다른 한 손을 홰홰 저었다.    
80원어치 떡과 울음을 함께 삼키며 아이는 노신사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났고, 사흘동안 그 자리를 지키던 여자는 닷새 후 새벽에 시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굳어진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글은 한두 해 전 귀동냥한 북한소식을 토대로 적어본 메모이다. 먼저 창작마당에 올렸으나 작품이라기보다는 메모에 더 가깝다는 생각에 자료실로 옮겼다. 아마 이렇게 엉성한 상태로라도 글로 써두고 싶었던 것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아픔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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