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령이와 복순이

2003.03.10 08:10

복순이 조회 수:404 추천:22

혜령이가 복순이인 이유는 -

에 또 태초에... 아니, 아니,
혜령이 복에 겨워 온통 세상이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뿌루퉁해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에,
그 심술단지에게 소설을 써보라고 말해주는 소설가 국어선생님을 만난다.
미국에 와서 가슴에 잔뜩 쌓인 모국어의 응어리를 풀지 못해 끙끙거리던 어느 날
"문학세계" 창간호 작품공모 공고가 신문에 실린다. 기막히게도 처음 쓴 단편소설이 당선된다.
그 후 이민생활의 우여곡절 중에도 모국어와 더불어 애증을 나누며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글과 씨름하는 문단선배들,
그 희귀종들을 만나 이런 저런 졸작들을 발표하고 격려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누린다.
혼자 잘난 척 하며 살다가 늦으막이 결혼하여 겁없이 아이를 낳더니
이 세상에 자신보다 상전이 있음을 깨닫고 (쩔쩔매는 혜령에게 남편은 "김 혜령도 천적이 있구나" 라는 명언을 한다.),
삶의 아픔과 기쁨을 체감하며, 또 더불어 사는 일의 아름다움을 깨달으며,
아주 쬐금 인간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갖는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는 건 짐작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아이에게 혼이 빠진 혜령이 글과 멀어져 갈 때,
미주한국소설가협회가 발족하고, 나성에는 "숲과 나무"가 터를 잡아
문인들을 위한 사이버공간이 마련된다.
붙임성이라고는 포스트잇 만큼도 안되는 혜령은 사이버공간을 통해
여러 문인들과 만난다.
늘 아이의 안부를 물어주는 봇대님, 사탕도 과자도 숨겨놓은 꿈까지도 모두 주겠다는 우아한 선배님,
동생인지 언닌지는 몰라도 함께 엄마 서포트그룹을 만들고 기꺼이 슬기 몫의 과자까지 가져다주는 타냐,
자상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꽃미선배...... 등등을 몇 번의 클릭으로 시도 때도 없이 만나며 인간성을 배양한다.
마침내 2003년 3월 6일 오후 7시, 소설가협회의 모임이 있던 날,
혜령의 첫 소설창작집 "환기통 속의 비둘기"가 나성에 착륙한다.
모인 자리에서 따끈따근한 책을 나누며 담소, 예기치 않은 수익까지 올린 혜령은
자신의 출판기념회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며 발벗고 나서주는
소설쓰는 "언니", "오빠"들의 따뜻한 마음에 잠시 넋을 잃고,
결과와는 상관 없이 이 순간들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들을 모두 평소 사용하던 "선생님"보다는 애정어린 호칭으로 부를 생각을 하고,
우선 이용우 선배님은 "용우 형"으로 "승격" 시킬 것을 혼자 결심한다.

이 외에도 혜령이 "복순이"인 이유가 또 있다.
어린 시절부터 혜령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혜령의 흉을 보다 들킬 때면,
"아아니, 너 말고 건너 마을 복순이란 X" 라고 하셨다.
그래서 혜령은 건너 마을이 어딘지는 몰라도 거기 나와 비슷한 아이가 살고 있구나 생각하고
커서는 "복"자가 들어간 그 촌스런 이름을 마치 만나지 못한 유년의 벗처럼 그리워 하기도 했다.
태평양을 건너와서도 한참을 살고난 지금, 모든 것이 저를 위해 준비된 양 착각하는 자유까지도 만끽한 요즘에야,
어리석은 혜령은 그 복순과의 일체감을 느끼고,
자신의 가슴 한복판에 "복"자를 새겨 넣는다. 물론 그 둘레에 좋아하는 이름들도 안보이게 정성껏 새겨 넣는다.

요즘 혜령은 제 아들 주용을 흉볼 때 "건너 마을 복돌이"라고 부른다.
언젠가 그 아이도 자신의 가슴에 스스로 "복"자를 새겨넣는 삶의 기쁨을 누리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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