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하는 인간

2003.02.24 09:09

김혜령 조회 수:499 추천:24

김 춘수 시집 "쉰 한편의 비가" - "책 뒤에"

놀이를 문화의 핵이라고 한 이는 문화사학자 호이징어다. 그는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란 제3의 인간상을 설정했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무엇을 생각하는 능력과 함께 자각적으로 놀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화는 놀이의 상태를 동경한다고 하고 있다. 말하자면 문화는 공리성을 떠날 때 가장 문화다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렇다. 놀이는 무상의 행위다. 흔히 우리는 신선놀음이란 말을 하는데 바로 그 상태가 문화의 이상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공리성을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리성 속에 갇혀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공리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즉 해방되고 싶은 충동을 문득 문득 느끼게 된다. 여기에 시가 있다. 시는 심리적으로는 해방이 돼야 한다. 이 말은 시는 신선놀음이요 무상의 행위라는 뜻을 함축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하나의 동경은 될 수 있을지언정 현실로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한계성 때문이다. 발레리는 <순수시는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없다. 다만 순수시로 가는 궤적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시도 문화도 이상적인 상태로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고 다만 어떤 지향과 궤적(이상상태로 가는)이 있을 뿐이다. 이 또한 갈등이요, 비극이다.
말놀이로서의 시는 난센스 포에트리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완전한 난센스 포에트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난센스란 의미가 완전히 증발된 상태다. 그러나 나의 시에는 의미의 여운, 알레고리성이 바닥에 눈에 띄게 깔려 있다. 난센스와 알레고리가 갈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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