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로서의 삶...한국일보

2011.12.30 23:51

김인자 조회 수:339 추천:27

어머니로서의 삶
김인자    

   이번 어머니날은 다른 해보다 내게는 의미 있는 날이다. 뱅콕에서 태권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은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두었었다.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자 남편은 내 손에 조그만 선물을 쥐어주었다. 가만히 손바닥을 펴보니 반짝 빛을 발하는 로렉스 금시계였다. 시계의 뒷 판에는 아들이 태어난 날자가 갖 새겨져있어, 그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금시계를 이번 어머니날에 두 손녀의 엄마인 큰며느리에게 선물하려한다. 비록 내가 41년 동안 팔목에 차고 있었지만, 며느리는 사랑하는 남편의 생일날이 새겨진 구식 스타일의 금시계를 감동으로 받을 것이 분명한, 속이 깊은 성격이다.

   내게는 귀중한 시계를 며느리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바로 주지 못한 것은, 그녀가 처녀시절의 자유로운 생활과 딸로서, 아내로서 사랑을 받기만 하던 화려한 생활에서, 이젠 인내와 희생과 책임감으로 마음을 다잡고 무한사랑과 절도 있는 생활로 막중한 육아와 교육을 감당해야하는 생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 지켜보려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며느리는 두 아이의 엄마로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의 일도 훌륭하게 잘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1967년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태어난 지 2달된 딸을 데리고 임지인 방콕으로 가서 딸을 키우며 생활할 때, 대화할 친구도 없고 신문도 없는 더구나 밤마다 책을 읽어야 잠을 자는 내게는 책도 없이 매주 화려한 파티가 계속되는 분주한 생활이 몹시 힘들었었다. 남편은 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책을 서울에서 주문해 주었다. 바로 몽테뉴의<수상록> 3권이다. 그 책은 딸이 잠들 때면 펴보는 내 친구이고, 교육의 지침서며, 철학적 사색의 길을 열어주는 현명한 맨토였다.

   16세기 중반, 몽테뉴의 아버지는 이웃나라와의 전쟁에 나가서 새로운 문명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르네상스의 본거지인 이태리의 문화에서 고양된 삶의 감흥에 개안을 하게된 그는 집에 돌아와서부터 실천에 옮겼다. 몽테뉴가 태어나자 음악을 들으며 잠을 자게 하고 깰 때도 음악을 들으며 깨게 했다. 게다가 그 당시 눈물 없이는 배울 수 없다는 어려운 라틴어를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려고 라틴어 가정교사를 두었으며 집안의 하인들도 몽테뉴 앞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몽테뉴는 커서 변호사가 되고, 보르도오 지방의 시장이 되었다가 나중에 은퇴한 후 몽테뉴 성에서 '도서생활'을 시작해서 그의 유명한 <수상록>이 집필되었다. 그는 '시칠리아의 왕 르네가 붓으로 그의 초상화를 그렸듯이 나는 펜으로 자신을 그리련다'며 그 자신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학사에서 휙션이 아닌 자신에 관한 글인 '수필'이라는 장르가 그에게서 처음으로 시작되어 수필의 비조가 되었다.

   또 다른 하나의 보물은 1960년대 말 어머님이 막내딸에게 보내주신 편지이다. 그 당시 바쁜 스케줄의 생활에다 3자녀의 엄마로서 매일이 파김치처럼 곤죽이 되는 피곤의 연속이었다. 어머님의 편지에는 "남편의 성공이 곧 너의 성공이므로 참고 견디며 뒷바라지를 잘해주라는 당부와 아이들을 잘 키워서 아이들의 성공이 네 인생의 보람"이라는 어머님의 간절한 편지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내게 많은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그 귀중한 편지는 없어지고 내 마음에만 간직되어 있다.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끌고 갈 첨단문명의 세계는, 아날로그에 안주하려는 우리에게 총알택시같이 빠르게 변화해 가므로 불안하기만 하다. 이 복잡하고 아찔한 급류 속에 휩쓸려 살면서도 우리 여성들에게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가족들이 건강하고 서로 화목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의미 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남자들과 차별 없이 직업과 사회생활 활동에 쫓기면서도 가족의 행복을 책임지는 오늘날의 여성의 위치이지만 사랑과 이해와 인내로 최선을 다하며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고 그 개성에 따라 좌표를 일러주는 엄마의 위치라면 그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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