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행복조건...한국일보

2011.12.23 14:05

김인자 조회 수:302 추천:57

플라톤의 행복조건
김인자

   창밖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싸늘한 날씨는 마음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이제 12월,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샤핑몰에 손님들이 몰려서 샤핑하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들 분주하게 한해를 지내왔을 것이다. 지난 365일을 어떻게 보냈는가 생각해보게 되는 연말이다.

   지난주일 동창들과 송년회 모임을 가졌다. 우리 모두 70 전후의 노인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할머니들이다. 공자의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고사성어도 있듯이, 우리는 70이 넘도록 누구의 엄마나 누구의 아내로 불려오며 명성도 없고 내놓을 일도 없는 존재로, 한물간 아니 두물간 할머니들이 아닌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가치는?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생활일까? 라는 독백에 한 친구가 대뜸 '돈과 명예지 뭐'라고 단언한다. 다른 친구는 '사랑이 첫째야'라고 했다. 교수인 내 옆의 친구는 '학문과 사랑'이라고 말한다. 학문을 사랑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행하는 그녀의 인생관에 흥미가 느껴진다. 지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 그리고 사랑과 이해, 이것이 우리의 삶을 값지고 풍족하게 하고 삶의 의욕을 지탱해주는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광속으로 변화 발전해 가는 인터넷을 따라가기도 힘든 요즈음 어느 날 본 만평은 나를 깨우며 생의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신문에 난 '밥 잉글하트' 작의 시사만평인데, 그림엔 '스티브 잡스 1955-2011'라 써있고 스티브 잡스가 유령처럼 서서 그의 진 바지 포켓에 스마트 폰을 집어넣고 있다. 코끝이 입술 아래까지 내려온 스마일과, 듬성듬성난 수염과 블랙 티 셔츠, 그 옆에 '세상을 우리 주머니에 넣어준 인물' 이라고 써있다.

   그 시사만평은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후 게재된 것이다.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한 사람, 자신의 취향대로 철저하게 자신에 충실한 사람, 철저하게 자신의 사상대로 인생을 살다간 사람, 그의 삶을 읽어보면 철저하단 어휘가 바로 그의 영혼의 속삭임 같다.

   이제 세상을 우리의 포켓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우주시대에 일차원적인 부가 무슨 의미일까? 돈과 명예만으로 세상을 살수 없는 다차원의 공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한편 디지털 시대의 광속의 숨가쁜 속도감과 과학문명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빠르고 쉬운 환경의 지배를 받는 우리들에겐 '지금, 여기'라는 현실이 삶의 토양으로 정착되어서, 깊고 넓고 오래된 역사적 인류의 가치를 경시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또한 시나브로 변질되어 가는 우리의 관심과 다양한 지식으로 빚어지는 복잡한 삶은 순수한 맑음에서 멀어지고 불안과 초조, 한곳에 올인 하지 못하는 가치관의 혼돈을 자초하게 되지않을까도 염려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금맥은 어떤 것일까?

   BC 400경의 서양철학의 비조인 플라톤이 주장하는 5가지 행복은 '생활하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자신의 자만에 비해 부족한 명예, 중간정도의 체력,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라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은 좀 부족하고 다 채워지지 못한 겸허한 생을 말한다. 차고 넘치게 완벽한 상태에 있으면 바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근심과 불안과 스트레스가 교차하는 긴장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므로 적당히 모자란 듯한 평범한 가운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의 삶 속에 행복이 있다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무한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자제와 균형의 필요성을 암시한 것이다.

   유태인의 '탈무드'에서 사람이 죽어서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첫째는 '돈'이며 또한 친구, 친척,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행은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한다. 부는 분뇨와 같아서 모아두면 냄새나고 고약하나, 흐를 때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서 생활에 이롭다는 교훈을 준 인생철학이 음미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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