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불치의 병

2011.12.31 01:06

김인자 조회 수:408 추천:34

행복한 불치의 병
김인자

   대학시절 본초학을 공부하며 방과 후 학교 뒤의 약초원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대학에서 '가정원예'를 가르치는 언니 그늘로 나도 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2학년 여름방학동안 청량리에 있는 원예교수의 화원에서 꽃에 관한 실기와 강의를 듣게 되었다.

   서로 다른 꽃의 화분을 섞여서 더 낳은 종의 꽃을 만드는 실험을 종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그 분의 여러 가지 말 중 "꽃을 한번 사랑하게되면 불치의 병에 걸린 듯 일생동안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어찌 꽃에만 불치의 병에 걸리겠는가, 문학은 그 자신 가시적 생명체는 없지만 인간 자신의 감정과 사상과 인생철학이 그곳에 들어있어 문학을 잊었다가도 어느 신호등에 걸려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이 모두 잠들어 있는 밤, 16세기 프랑스의 몽테뉴는 촛불을 들고 고색 창연한 몽테뉴성의 뒤뜰에 있는 3층 도서실로 올라간다. 그만을 위한 원통형의 방에서 밤새워 사색하고 글을 쓰다 새벽이 되면 불꺼진 촛대를 들고 내려오곤 했다. 변호사였던 그는 보르도오 시장직을 은퇴한 후 도서생활로 들어가서 생이 다할 때까지 글쓰기를 계속해서 그의 역작 <몽테뉴 수상록>을 남겼다.
  
"시칠리아의 왕 르네가 그림붓으로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듯이 나는 펜으로 자신을 그리련다"는 그의 말대로 몽테뉴 수상록은 그 자신에 관한 사색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관조의 기록이며,     이 책은 문학 역사상 <수필>의 원조가 된 책이다. 그 때 까진 아무도 자신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다. 조금은 수치스럽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시나 소설이 아닌 잡기장에 메모하는 정도의 취급을 받았으나 그의 '수상록'으로 수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글이 부각된 것이다.

   변호사인 카프카는 그의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격 탓에 다른 직장에서 활약하지 못하고 결국 타인과의 밀착이 적은 보험회사로 옮겼다. 그는 퇴근하면 곧장 그의 방으로 들어간 후 외부와 가족과도 차단하고 그만의 깊은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유태인 부친과의 절벽 같은 갈등과 괴로운 현실을 도피해서 그의 방안에서 실존문학의 선구적 작품들인 <변신>과 <성>등을 피를 말리는 집착으로 썼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파리의 지붕 밑 방에서 <말테의 수기>를 쓰고 있을 때 "이것만 끝마칠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노천카페에 모여있던 친구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릴케는 문학에 그의 모든 것을, 그의 인생까지도 바쳤다. 모두들 왜 그랬을까? 문학에 무엇이 있기에 심혈을 기우려 글을 쓰며 인생을 소모했을까? 또한 그들뿐이겠는가...상징주의 시인들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프다. 보들레르나 말라르메, 랭보나 베를렌느 등 그들은 <시>를 위해서 그들의 인생을 버리지 않았는가... 그들은 괴로운 현실에 반해, 환상의 세계 속에서 생의 가치와 의의를 느꼈을 것이며 본질적이고 영원한 미를 위해 그들만의 고독한 작업에 몰입했을 것이다.

   창문밖엔 밤기운을 머금은 흰 달빛이 맑게 내려와 있다. 검푸른 하늘 끝에서 별똥이 길게 선을 그으며 떨어진다. 어린 시절 무척 신기하게 느꼈었던 그 별똥을 따라 내 기억은 반세기를 올라간다. 따뜻한 햇빛이 들어온 안방에서 어머님의 재봉틀 다리에 방석을 깔고 앉아 동화책을 보기 시작했다. 알프스의 소녀, 소공자, 소공녀, 집없는 아이, 빨강머리 앤, 거지왕자 또 안데르센의 동화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야나 헉클베리 핀의 모험 등 한없이 재미있는 동화를 읽으며, 재봉틀 다리에 앉아 그 좁은 공간이 내 공상의 세계를 펼치는 곳이었다. 과자로 지은 예쁜 성안에 색색의 사탕 문을 통해 햇빛이 밝게 비치는 과자 방에서 책을 천장까지 쌓아놓고 매일 동화책만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전쟁이 날 때까지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밤 11시 반 "대강 보고 잠을 자야지", 남편이 보던 책을 들고 침실로 들어가면서 이르는 말이다. 이 아름답고 포근한 밤에 마음을 풀어놓고 주고받는 나와 내 느낌의 오붓한 만남이여! 끊임없는 상상이 밤하늘에 뿌려지고 별처럼 반짝이다가 푸른 새벽빛에 밀려 내 품으로 돌아오곤 한다. 지도에도 없는 생의 미학에 다가가기 위해 튀어나오는 문장들을 쓰고 싶은 때가 바로 이런 때이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 이젠 서둘러 들어가 자야겠다. 빨리 일어나는데 무릎 위의 책이 '쿵' 떨어진다. 가만히 전기 스위치를 돌리니 '찰칵', 고양이처럼 살살 깜깜한 복도로 들어가는데 누군가 슬리퍼를 끌며 엇갈려 서재로 나간다. 내 등뒤로 중얼대는 소리가 따라온다. "지금이 몇 시인데 잠도 안자고 꾸물대나 쯧쯧". 30여 년 들어오는 볼멘소리다. 나도 문학의 불치병에 걸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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