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행

2008.07.23 17:03

김인자 조회 수:767 추천:130

   김인자

    이곳으로 이사온 지도 몇 년 되었는데, 마을을 감싸듯 뒤로 빙 둘러쳐 있는 산을 아직 오르지 못했다. 오늘은 일요일, 간단한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옆집의 일레인이 일러준 대로 마을을 통과하는 길을 따라가다 소방도로 옆으로 올라갔다. 아침이슬이 맑은 초록의 풀잎에 방울 댄다. 이름 모를 새들이 잔가지 사이를 오가며 짧은 날갯짓으로 멀리서 갓 넘어온 햇빛을 가르고 있다.

  남가 주에도 가을이 왔다고 나뭇잎들이 잔가지에 느슨하게 매달려 있다. 기후변화가 적은 이곳의 기온 때문에 도시 안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계절이 산에 올라오니 어김없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이 잡풀들 사이로 하늘하늘 지나간다. 발 밑의 모래가 아침 햇볕을 반짝 되쏜다. 벌써 10월 중순이 지나고있으니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영원히 달리고있는 시간은 세월의 흐름을 계절의 변화로 보여준다. 언덕에 솟아있는 바위는 시간의 유한성을 모르는 듯 무심하다. 길옆의 들풀들이 새벽공기에 푸르고 싱싱하다. 한없이 깊은 하늘색의 하늘엔 흰 구름들이 떠다니고 있다.

  메마른 흙 속에서 생존하느라 키 작은 나무들이 엉기성기 서있다. 생각난 듯 스쳐 가는 바람에 마른나무 잎들이 스삭인다. 갓 넘어온 햇살에 노출된 새벽의 맑은 공기가 폐부로 들어온다. 얼마나 오랜만인가! 이렇게 투명한 공기가, 햇빛이, 푸른 하늘이 있는 자연 속에 있다니! 산 사이 계곡으로 난 길을 지우려는지 안개의 무리가 멈칫거리며 내려간다. 하늘은 파랗게 열려있고 오솔길을 오르는 내 가슴속에 새벽의 자연이 스며든다.

    왜 자연은 우리에게 언제나 친근감을 줄까? 자연은 인간의 본향이기에 결국 자연으로 합일되어 가는 과정을 살고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허만 헤세는 신과 자연과 인간은 단일성이라고, 인간이 해탈하는 과정을 '싯달다'에서 보여준다.

    우리가 가는 길은 한정되어있다. 또한 일회성이다. 그래서 실존철학자들은 인간 불안의 원인을 추구했다. 그들은 현상의 존재 너머의 것을 부인한다. 종교적 미래의 존재를 부인하고 현상이 전부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이러한 한계성에서 탈피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명의 신비에 대한 연구를 하고있다. 요즈음 각광받는 생명공학은 DNA로 구성된 염색체의 고리를 변화시키므로 맞춤 된 인간을 만들려하고 있다. 심지어 인간의 음성까지도 조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의지할 곳 없는 일엽편주의 생에서 보이고 느껴지고 만져지는 것만이 믿게되는 실존의 불안, 허우적대고 방황하다 몰려서 드디어 당도한 끝, 인간은 불안하다. 그래서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도 정신세계는 무한히 방황한다. 그 불안을 초월하는 길은 시간의 영원성이다.

  영원한 시간과 함께 가는 것, 그래서 예술가들은 인간의 불안을 초월하는 시간에 대한 인간 승리를 작품으로 남기고 있다.

    지난 10월 13일에 막을 내리는 푸쉬킨 뮤지엄의 소장품 전시회에 12일에야 가봤다. 피카소의 그림 '아를르캉과 그의 벗'이 눈길을 끈다. 그는 당시 훌륭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다시 새로운 입체파그림을, 큐비즘의 세계를 열었다.

  다음 방으로 들어가니 마티스의 밝고 강한 색조가 온 방을 압도한다. 그 다음 방중간 코너에 반 고흐의 '감옥의 뒷마당'이 걸려있다. 순간 숨이 막힐 듯한 불안을 느꼈다. 뒤 배경을 둘러싼 벽돌담의 엄청난 높이와 기하학적으로 맞지 않는 각도의 벽, 앞으로 순간적으로 쏟아질 듯한 모자이크 된 벽돌들, 그 안에서 죄수들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고흐의 생의 아픔이 감옥의 뒷마당을 더욱 불안하고 처절하게 그렸다.
  예술가들은 시간을 초월해서 그의 작품으로 영원히 숨쉬고있었다.

     산언덕에 앉아 아래 마을을 바라보니 붉은 색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멀리서 보는 그림은 아름답다. 거기엔 불안도 불신도 보이지 않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가족이 있다.

  내려갈 시간이다. 아직도 인간의 소외감이나 불안감을 낳는 부조리가 남아있는 세상으로, 아직도 많은 가치관의 혼미를 처방할 명의가 나타나지 않은 우리들의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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