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폭의 행복 / 김영교

2011.08.05 02:35

김영교 조회 수:454 추천:110

생일 선물로 사진작가 성진일집사가 준 커다란 액자의 사진 한 폭이 내 마음을 하루 종일 들뜨게 했다. 자동차 뒤 좌석에 싣고 집으로 운반해 오면서 가슴이 마구 설레었다. 조심스레 옮겨 훼밀리룸 벽난로 위 넓은 벽에 걸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눈길을 가져가는 지점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온 나의 빈 벽이었다. 멕시코 선교지에 갔을 때 찍은 농촌 풍경, 지고의 평화스러움과 아름다움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파아란 하늘 보자기에 하얀 뭉게구름 몇 덩어리씩 풀어져 있다. 그 아래 일렬로 선 미류 나무의 초록 이파리들은 눈부시게 반짝이고 음악처럼 윤기가 흐르고 있다. 나무둥치 밑으로 넓게 펼쳐진 들판, 거기엔 누런 들풀들이 낮게 엎드려 한 방향으로 바람에 기대고 있다. 나름대로 제 각기 적당히 떨어진 지점에서 서로 사랑의 시선을 나눌 수 있는 상생의 간격으로 서있는 게 무척 우호적으로 보인다. 사진은 그 들판의 나무그늘로 나를 데리고 들어간다. 모르는 사이에 나는 목가적인 풍경이 된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든 극치의 조화와 균형은 풍경 구석구석에 숨어있다. 몸을 낮추니 세상에 아름답지 않는 게 없다는 사진작가의 겸손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자연이 재발견되고 발췌되고 축소되어가는 사진예술, 그리고 축소되어진 자연은 또다시 무한대로 펼친다.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보는 이를 감동으로 흔들어 생명을 전이시키는 것이었다. 비우면서 가득 채우는 작업, 그래서 사진사와 사진작가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시선을 뗄 수 없이 깊이 빨려 들어가 여기의 나는 없어지고 그 풍경 속에 앉아 있는 내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원상에의 회복, 그 의미를 증폭시키는 그 힘은 사진작가의 몫이었다. 소용돌이치는 그 감격과 기쁨은 생명을 물오르게 하는 감사함이 근저를 이룬다. 풍경의 한 부분이 된 나, 정작 가득 차오름을 체험한 기억은 참으로 유익한 것으로 남아있다. 문득 걱정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여 방황하던 젊은 날의 들판이 떠올랐다. 내 안의 상처들을 말끔히 아물도록 어루만져 주는 저 산들 바람! 고뇌의 들판은 사라지고 사막을 건너 온 물기 머금은 바람 앞에 나는 자꾸 작아지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온전한 의탁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입맛이 서서히 돌아오고 아픔이 줄어들면서 손바닥에 와서 고이는 힘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내 골수 깊이 디엔에이가 살아나 세포와 교신하면서 함생으로 달려가는 체험, 참으로 경이롭게 느껴졌던 일이 어제만 같다. 오늘도 외출에서 돌아오는 나의 시선을 맨 먼저 가져가는 저 사진, 소매 끝의 팽팽한 긴장을 풀어주려고 주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막힘이 뚫리듯 툭 트인다. 문득 어릴 적 고향이 가슴에 와 안긴다. 가족과 따끈한 둥근 밥상이 겹치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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