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부부 / 김영교
2011.08.11 15:40
큰 아들 폴(Paul)이 어려서 무척 고왔다. 4살 때 시어머님 친구 이 권사 댁 막내 딸 혼례식에 링 보이(Ring Boy)로 뽑혔다. 잘 빗겨 넘긴 신식 머리스타일의 작은 신사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결혼식의 주인공 부부, 그 후 옷깃을 스치며 먼발치에서 인사를 나눈 뜸한 만남이 여기저기서 우연히 있었다. 어느 주일 오전 우리 교회 성전 뜨락에서 그 내외와 얼굴을 맞대고 반가운 조우를 하게 되어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는 기쁨을 맛보았다.
'우리가 잘 사는 게 다 폴(Paul)이 링 보이 잘해서 예요’ 그 부부는 나에게도 만나는 교우들에게도 서슴지 않고 그렇게 소개하면서 속마음을 순수하게 표현해주어 나도 듣기에 흐뭇했다. 그 만남이 있은 지 몇 주후 홍보부에 있는 나를 찾아와 전해준, 그것은 정성스레 쓴 감사글, 그리고 폴 링 보이와 함께 38년 전에 찍은 결혼사진과 함께 100불이 들어있는 흰 봉투를 건네받았다. 사진을 전해 받은 42살의 링 보이는 어느 듯 목사가 되어 파사디나에서 영어권 목회를 하고 있다. 목사아들은 옛날을 기억하는 듯 반가워하며 답장을 쓰겠다며 소중히 간수하였다.
눈여겨보니 그 부부는 정말 최선을 다해 봉사하며 찬양대에서 헌신하며 이웃과도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잘 살고 있었다. 바늘과 실처럼 유난스럽게 붙어 다니는 이 커플을 대면 할 때마다 담쟁이 부부라 부르게 되었고 붙임성 있는 상냥한 성품 때문에 어딜 가도 인기가 있고 재미있는 화술에 가깝게 접촉하다보니 옛날보다 더 친해지게 되었다.
담쟁이의 속성은 기댈 곳만 있으면 뻗는다. 어깨 나란히 믿음 담벼락에 전신을 밀착시켜 낮게 기어오르는 모양세가 보기에도 참 좋다. 푸르게 혹은 붉게 자기 색깔을 고수하며 기어오르는 이 부부는 영락없는 사람 담쟁이 모습이었다.
이권사 어머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친구인 9순의 나의 시모님은 지금 양로병원에 계시다. 이렇듯 많은 변화가 있었고 빠른 세월은 1세들을 7학년에 밀어 넣고 흰 머리카락을 늘켜가고 있다. 돌아보면 구석구석, 굽이굽이 낯선 언어의 높은 담벼락을 사다리도 없이 잘 기어오르기를 한 우리모두 1세의 삶이었다. 바쁘고 힘들고 고단한 적이 퍽 많았지만 좌절하지 않는 꿈과 젊음이있어 잘 버틸 수 있었다.
비바람 높은 이민 광야에 옮겨진 초목, 초기의 눈물, 험난했던 학업의 절벽을 오르고 인종의 토양이 달라 눈치로 파악하고 가늠하기 힘들었던 생뚱한 경험들, 급류로 덮친 문화충격의 낯선 물살을 용케도 잘 건넜다. 거슬러 흐르면서 적응의 지혜도 체득했다. 전인격적인 인성을 바로 잡는 대개가 맞벌이 부부, 순수로 갈고 닦아온 길, 참으로 장한 도강의 삶이었다. 지금은 땀 흘리는 일터에서, 사랑의 씨 뿌리는 처소에서 신앙공동체에서 믿음 공동체의 사귐을 잘 감당해오고 있는 우리 모두는 정집사 내외처럼 담쟁이 부부의 밀착된 모습이라고 여겨졌다.
결혼식의 그 신부가 환갑을 맞았다. 그 뜻깊은 생일 자리에 링보이 폴도 초대되었지만 교회일로 출타중이라 불참이었다. 나는 축시를 읊으며 남은 생애 가득 채워 줄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적소에서 헌신하며 가진 것 나누고 베푸는 기쁨을 일깨우며 작은 일에도 순종, 덮어주고 감싸 안는 미덕, 작은 목소리로 건네는 공손한 인사는 늘 고맙고 정겹다고. 한결같은 사람들, 맹물 같은 반가움을 뿌려주는 그 신부의 회갑에 부부애를 부각시키는데 세월은 정성을 모아 귀감삼아 피력하기에 이르렀다. 감회에 젖으며 많은 일을 한 세월을 바라보았다.
열정적인 한 여인의 생애에 환갑이란 아름다운 화환이 씌워지는 축복의 자리에 문득 사뮤엘 울만(Samuel Ullman)의 ‘청춘’이란 시가 생각났다. 청춘은 ‘인생의 어떤 시점이나 나이가 아니라 마음 상태’라고. 80세 생일에 첫 시집 ‘80년 세월의 꼭대기에서’(From the Summit of years, Four Score)를 펴낸 시인이 바로 사뮤엘 울만이다.
그 옛날의 신부, 단아한 매무새에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 젊음의 좌에 머물러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청순한 손짓이 나의 시선을 끈다. 가슴에는 문학의 향기가 흐르고 친근한 미소의 표정은 대화를 꽃 피게 한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늘 곁에는 버팀목의 남편 나무가 서있다. 함께 그리고 동행이다. 오누이 같기도 하고 신혼부부 같기도 하고 같은 반 대학 친구 같기도 해서 담쟁이 부부라는 호칭이 신통하게도 지금 가장 잘 어울렸다.
이제 인생여정을 달리던 기차는 환갑 정거장에 당도, 생명 충일의 초록 철길을, 그 다음 붉은 단풍의 계절에 순리대로 진입하는, 남은 생애의 하루하루가 영혼의 환갑 축제이기를 아울러 기원 하면서 손자 손녀의 사랑 많이 거느리는 행복한 할머니의 길을 빈틈없이 누리기를!
누군가의 결혼식에 축복의 통로, 그 첫손자의 링 보이, 그 나이가 되었으니!
그 감격, 그 기쁨...세월은 이렇게 익어가고 있다.
바람 불수록 바싹 붙어
뜨거운 가슴 껴안고
사랑과 믿음의 벽을 타고 기댄 삶
아름다워라
이제
은혜 안에서
서로에게 믿음직한 등덜미
서로에게 의탁하는
손 뻗으며 사는 삶
정 뻗으며 사는 삶
더욱 아름다워라.
<시-담쟁이> 김영교
고향의 노래 (김재호 詩, 최현수 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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