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인/중앙일보/7-14-2008

2008.01.28 02:53

김영교 조회 수:461 추천:95

독거인이 된 친구의 남편 그의 홈피에 올라오는 빛나는 외로움 <하늘에 쓰는 편지>를 펴내고 겨울 하늘처럼 파랗게 떨고있다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빈 집에 들어가기 너무 싫어 밤마다 방마다 있는대로 불을 밝히고 잠들고 깨어나고 외출하고... '눈오는 날에 생각나는' '지나가는 푸념'을 섞어 '아름다운 추억'을 곱씹을 때 '감사한 일'들이 너무 많아 '홀로서기를 하면서' '눈물겨운 사연'이 어디 한 두 가지랴 '지난 날의 바보같은 짓'도 마음에 걸리고... 한 때 한 나라의 경제통 동창들과 어울러 술도 마시고 고스톱도 치면서 끈질기게 달라붙어 목을 죄는 그 놈을 외면하기도 더러는 직면하기도 아직 때려잡지 못하고 있다 천국의 소망 창조주의 위로와 평강을 간구하지만 외투 주머니 가득 휑한 빈 집 가득 덕지 덕지 아내 흔적이 젖은 외로움을 무겁게 해 털어도 떨어져 나가지 않는 그 질긴 놈 그 놈은 친구남편만 급습한 것일까? 너와 나, 우리 모두 독거인 앞뒤 서열 순서 없이 대답 않는 화초는 짝사랑 관계 돕는 배필의 부재를 눈치 챈 세상에서 제일 큰 불편이라 활짝 핀 입으로 고자질한다 친구 남편은 아내 대학 친구들의 배려를 타고 장지의 크리스마스 츄리에 꽃등을 밝히고 애틋한 사랑편지를 쓴다 독거인의 고독이 츄리에 매달려 하얗게 반짝인다. * * * 문득 떠오르는 책속의 기억하나 아내는‘거미막염’이라는 불치병에 걸린다. 허리 디스크 수술 때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투여한 혈관 조영제 ‘리피오돌’의 부작용 때문에 발병한 것이다. 이때부터 남편은 모든 공적인 활동을 접고 아내 곁에 머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내를 보면서 그는 "우리 둘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고 믿고 싶었는데 당신만 혼자 그런 고통을 겪고 있었구려”라며 안타까워한다. 2006년 아내의 병세가 심각해지자 두 사람은 동반 자살을 감행한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이들은 죽는 날까지 서로에게 공명하는 세기의 젊은 연인이었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도파민과 프로락틴, 아드레날린, 그리고 옥시토신. 몇 가지 호르몬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랑학이 당연시되는 요즘. 두 사람이 남기고 간 질기고도 절절한 사랑은 그래서 더욱 값지고 초연해보인다. 친구 부부의 미국여행 도중 들이닥친 7시간의 뇌수술과 3 주동안의 코마상태, 가족들의 그 절절한 기도의 효험도 없이 미아가 된듯한 친구남편의 휘청거림이 너무 안쓰러웠다. 사랑을 죽음으로 승화시킨 책의 내용이 아무리 아름답고 숭고하다해도 자살은, 더군다나 동반자살은 살 생명법칙에 어긋나기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죄악시하지않나싶다. 친구남편이 벌리는 외롬과의 사투는 오히려 인간적이란 생각이 든다. 친구는 남편에게서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살아 남아야 한다고 소리지르는 것 같다. 자기 몫의 시간이 다 진(盡)하지 않았기에 남은 생을 누려야 한다고 말이다. 꽃동네를 도우며 많은 선행을 한 생전의 친구처럼 나누고 베푸는 기쁨을 친구의 남편은 이어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모양으로든 고독의 폭풍우가 들이닥치는게 인생여정이고보면 사별의 아픔을 부둥켜안고 흔들리지만 잘 견디는 친구남편에게 침묵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1월 28일 2008 (미자를 추모하며)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
어제:
10
전체:
647,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