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2005.11.25 05:55

김영교 조회 수:466 추천:91

그 날은 유방암 투병기를 쓴 친구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목사님 기도며 남편장로의 인사말, 순서 전체가 감동으로 이어졌다. 내가 받은 더 큰 감동은 친구의 딸 자폐증 장애의 마가렛이 우정 출연하여 “보리밭”을 한국말로 부를 때였다. 투병간증과 더불어 나란히 눈물이 나는 퍼포만스였다. 나는 친구 옆에 앉아 얘기를 계속 들어주며 마가렛의 용기에 감격하고 있었다. 마가렛은 윤형주 장로와 장애인을 위하여 또 노형건 음악전도사와 듀엣 음악회를 얼마 전에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다음 날은 친구의 생일이라 며칠 전 초대해 놓은 우아한 식당을 향해 떠나려는데 핸드백이 보이지 않았다. 차나 집안에 있겠거니 샅샅이 살펴도 허사였다. 약속시간은 다가오고 백은 안보이고 하는 수 없이 운전면허증 없이 조심스레 차를 몰면서 마음을 무척 조였다. 제 시간에 무사히 당도하여 사실을 알리고 초대는 내가 해놓고 식사대를 다른 친구가 대신 지불해주어 생일모임을 잘 치루었으나 속으로 난감해 식사도 제대로 못한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핸드백을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꺼꾸로 추적해보기로 했다. 어제 밤 출판기념회가 있었던 가든 스윗 호텔부터 전화를 걸어 문의 해보기로 하고 머리를 정돈해 갔다. 테이블 밑 발 옆에 내려놓았던 게 그 제사 기억이 났다. 차 열쇠, 핸드폰이나 집전화기 특히 안경을 어디에 놓았는지 잊어버리고 찾곤 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핸드백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위에서 듣던 얘기가 실제로 나의 일로 일어나고 보니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었다. 마침 제니퍼라는 여직원의 친절한 목소리가 전화선 끝에서 반갑게 들려왔다. -까망 핸드백 하나를 보관중-이라는 말에 가슴이 떨려왔다. 확인하려고 나는 얼른 빨강 수첩이 그 안에 있나 보라 했더니 있다며 나보다 더 좋아하는 목소리였다. 내 핸드백임이 확실하였다. 감사한 것도 순간 내용물에 내 온 신경은 화살이 되어 날아가 꽂히고 있었다. 후배가 나를 태우고 그 호텔을 향해 달리는 동안 내 머릿속은 윙윙댔다. 현찰은 아깝지만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쓰면 됐다 싶었고 운전면허증 재 발급절차며 여럿 되는 크래딧 카드 분실 보고며 은행구좌 확인등 골치 아프게 생겼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인연들의 연락번호들을 다 잃어버렸으니 이건 보통 불편이 아니다 싶어 가슴이 답답해왔다. 문득 ‘그 날의 걱정은 그 날로 족하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걱정을 미리 당겨서 지금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껍데기 핸드백만 있을지 또 현찰만 빼내어 갔을지 아니면 고스란히 다 있을지 확인도 하기 전에 걱정을 끌어다가 먼저 상상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스트레스였다. 이 스트레스는 누가 준 것 절대 아니며 100% 자가 창출이었다. 독가스 같은 나쁜 에너지에 소모당하고 스트레스 독충에 갉아 먹히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어리석게 보였다.. “놓고 간 핸드백을 찾으러 왔는데요, 제니퍼님 계세요? 친절한 여직원의 무공해 맑은 눈빛을 보는 순간 감이 왔다. 소지품들이 헝클어진 대로 상처하나 입지 않고 분실 안 된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나를 낭패감의 지옥을 헤매게 한 핸드백, 지금 정직과 신뢰의 천국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작년 문학 세미나 참석 차 시카고에서 온 친구는 점심 식사하는 중에 카펫이 깔린 호텔식당 바닥에 놓은 핸드백을 순식간에 분실 당해 동석한 우리가 무척 당황했고 순간적으로 발생한 사태에 우리 일행은 놀랄 뿐이었다. LA에 정나미가 떨어진 시인친구를 위해 문우들이 비행기 삯을 모아 위로를 해 준 적이 있었지만 대낮의 그 분실경험은 친구로 하여금 LA방문을 고려하도록 생각에 족쇄를 채울 수도 있겠구나 싶어 입맛이 씁쓸했다. 멕시코인 식당담당 종업원들을 포함해 전 직원에게 정직을 상생의 원칙으로 고객 관리하도록 잘 교육시킨 호텔 당국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3%의 소금 끼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 세상은 아직도 정직한 사람들이 많아 살만한 곳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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