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선생님의 도시락

2006.06.25 00:17

김영강 조회 수:2141 추천:144

    그날은 소풍가는 날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삼 학년 때의 일이니 벌써 오십 년도 더 넘어버린 아득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날 일은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 나는 진주에 있는 천전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어머니가 회초리로 종아리를 후려치시던 모습이 눈앞에 뚜렷이 떠오른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지금은 볼 수 없는 어머니....
    어머니는 굉장히 미인이셨다. 영화 속에 나오는 여배우들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우신 분이었다. 학교에서 학부형을 소집하는 날이면 나는 늘 신이 났다.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교실 안이 다 훤해져 젊고 예쁜 엄마가 참 자랑스러웠다.

    소풍가는 날 선생님 도시락은 늘 내 차지였다. 소풍 갈 때는 어머니도 같이 가셨는데 그날은 바쁜 일이 있어 못 가신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마냥 좋았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부엌에 나가셨을 것이다. 딸 도시락은 뒷전이고 선생님의 도시락에만 잔뜩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선생님의 도시락인 까만 바탕에 빨간 꽃무늬가 있는 삼층 찬합에는 맛있는 반찬들이 가추가추 잘 담겨져 있을 것이다.

    완벽하게 준비를 끝낸 어머니는 찬합을 예쁜 보자기에 잘 싸신 후, 가다가 넘어지지 말고 조심해서 가지고 가 선생님께 드리라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선생님한테 막 가려고 하는데 친구 하나가 선생님 도시락에는 뭐가 들어 있나 한번 열어보자고 했다. 나도 자랑이 하고 싶었다. 찬합 뚜껑을 연 아이들은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색깔부터가 휘황찬란했다. 구색을 잘 맞춘 여러가지의 반찬에다 후식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옛날이라 아이들 눈에는 다 처음 보는 신기한 반찬들이었을 것이다. 그중 한 친구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했다.
    이기 뭐꼬? 한분 묵어 보자. 내 쪼깨만 맛만 보께이.”
    다른 친구들은 감히 손은 못 대고 이구동성으로 맛있느냐고 물었다    
   “하모, 너무 맛있다. 아이구 이거는 소고기 아이가?”
    다들 호기심에 어린 눈초리로 쳐다만 보는데 내가 말릴 새도 없이 그 친구는 계속 용감하게 이것저것 맛을 보았다. 그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묘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면서 내 도시락 반찬이 눈앞에 그려졌다. 나는 안다. 내 도시락에는 김치랑 계란말이 달랑 두 가지만 들어 있는 것을.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사실, 작년에도 나는 엄마한테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이왕 해놓은 반찬인데 조금 조금씩 덜어서 내 도시락에 넣어주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렇게 하지 않은 엄마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허지만 그때뿐이었고 금세 잊어버렸다.

     나는 선생님 도시락을 우리가 먹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도 괜찮건나?. 너거 엄마 알믄 디기 야단칠 긴대.”
     "괜찮다. 누가 묵든 간에 맛있게 묵으믄 되는 기다. 뭐 선생님만 맛있는 거 묵으란 법 있나.”
    “그라모 니 벤또 선생님 갖다 드리라.”
    그러면서 그 용감한 친구는 노란 알미니움으로 된 내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생각한 대로 김치랑 계란말이 달랑 두 가지였다. 친구는 찬합에서 반찬 두어 가지를 좀 덜어 넣으면서 야무지게 쏘아부쳤다.
    “너거 엄마 계모도 아인데 니 벤또는 이기 뭐꼬?”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 하고 도시락만 얼른 안겨드리고 부리나케 뛰어왔다.
     아이들은 신나게 먹고 있었다. 분량도 많아 생색을 한껏 내고 잘 먹긴 했으나 집에 갈 때쯤 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돌멩이를 삼킨 것같이 가슴이 답답했다. 어머니 말씀대로 점심시간 전에 갖다드렸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노느라고 깜박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 먹을 때는 어머니를 거역한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는데 그 기분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어머니 얼굴을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고백을 하고 용서를 빌어야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말을 하려니까 눈물부터 나왔다. 의아해 하는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리고 회초리로 맞은 것도 처음이었다.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엄마가 딸을 이렇게 심하게 매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용서를 빌어야 한다면서 어머니는 나를 끌고 선생님 집으로 향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선생님께 먼저 말씀을 드리고 용서를 빌 것을....., 선생님이 도시락을 먹은 것처럼 했더라면 어머니도 영원히 몰랐을 것이고 이렇게 맞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으려고 하다가 종아리가 아파 앉질 못하고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었다. 엄살을 더 부렸다. 도시락이 바뀐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선생님은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괜찮다. 울지 마라. 누가 먹었던 간에 맛있게 먹었으면 됐다. 너희들이 맛있게 먹었다니 선생님이 먹은 것 이상으로 기쁘다. 반성을 하고 어머니한테 용서를 빌었다니 착하구나.”
    나는 그때, 선생님이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 맘과 선생님 마음이 똑 같았기 때문이다. 야단을 치기는커녕 선생님은 완전히 내 편을 들어주셨고 도리어 나를 위로해 주셨다. 어머니도 마음이 좀 풀어졌는지 나를 안쓰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미소까지 띄웠다. 아주 고소했다.    
    '아니 어머니라는 사람이 어떻게 딸한테 이럴 수가 있어? 매질을 한 것도 그렇고 도시락 반찬도 그렇고?’  
    선생님이 맘속에서 이렇게 부르짖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치면서 종아리의 통증이 싹 가셨다. 어머니도 선생님의 마음을 읽고 딸한테 너무 지나치게 군 것이 창피해 저렇게 어색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통쾌하기까지 했다. 호되게 맞았으나 어머니한테 그 이상으로 갚아준 것 같아 억울하지가 않았다. 엄마가 한없이 미웠다. 어머니가 옆에 없었으면 선생님을 붙들고 ‘우리 엄마가 혹시 계모인지도 모르겠다고’ 엉엉 울면서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종아리에 멍자국이 점점 선명해질 때 나는 어머니 앞에서는 더 못 걷는 시늉을 했다. 어머니의 마음이 그 상처보다 더 아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선생님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이 어머니가 바라는 일이었다는 사실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한 세기의 허리를 접은 오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내 딸이 그때 어머니와 같은 나이가 되어있으니 헤아릴 수 없이 세상이 변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반세기가 아니라 백 세기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머니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차츰차츰 철이 들면서 나는 어머니가 딸을 다스리는 교육이 어떤 것이고 또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 도시락 사건도 딸이 다른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어 그들과 섞이게 하려한 어머니의 깊은 배려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종아리에 피멍이 든 것도 나를 위한 사랑의 매였다.

    어머니의 사랑이 강물이 되어 내 가슴에 흐르고 있다. 그 강물에 배를 띄우고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날마다 항해를 계속하면서 이 사랑의 강줄기를 딸의 가슴에도 이어주리라 하고 나는 다짐한다.
    이리하여 강줄기는 끊이지 않고 영원히 이어지며 사랑의 물결은 대대로 넘실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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