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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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강 장편소설『침묵의 메아리』. 이 책은 저자의 단편소설 가운데 한 작품이 소재가 되어 씌어진 책이다. 탈고한 후에는 세 곳의 인터넷 카페에 연재로 올리게 되었는데, 연재를 통해 많은 독자와 소통이 이루어졌다. '소설 속의 소설', 그 침묵의 비밀이 '본 소설'에서 메아리처럼 울린다. 그러나 침묵의 비밀도, 그 메아리도 해결책은 없다.


저자소개

저자 : 김영강

저자 김영강(본명: 이영강 李鈴江. 미국명: Kay Kim)은 경남 마산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72년 도미하여 20여 년 동안 토요학교인 남가주밸리한국학교에서 2세 교육에 종사했다. 또한 각 지역학교 특강, 한국어학술세미나, 교사대학, 교사연수회 등에 “Sat II 한국어” 강사로 참여했으며 제 1회 남가주한국학교 최우수교사상을 수상한 바 있고, 밸리성인대학 라인댄스 강사를 역임했다.
1999년 제 15회 미주크리스천문학 단편소설로 등단, 2001년 제 22회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 단편소설 입상, 2008년 제 12회 에피포도문학상 소설부문 금상, 2013년 제 15회 해외문학 소설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4인 공저 《1991년, 재미있는 한국어 연습문제집 k-6》, 《2006년, 교사들을 위한 고급반 학습교재》, 《2006년, SAT II 한국어 교사지침서》, 재미작가 5인 동인지 《2010년, 참 좋다 》, 소설집 《2011년, 가시꽃 향기 》가 있다.
현재 미주한국문인협회, 미주한국소설가협회, 해외문인협회 회원이며, 남가주이화여대 동창회보 편집장을 맡고 있고, 계간 미주문학 편집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거주.


목차

추천의 글
커다란 모시조각 이불/ 이정아 전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4

작가의 말
‘소설 속의 소설’에 깔린 그 침묵의 비밀 274


책 속으로

뇌에서는 분명히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면서도 해주 가슴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심장에 켜진 빨간 신호등이 그대로 멎어버려 자신의 인생도 멈추어버린 느낌이었다. 눈앞에는 온통 안개비와 같은 눈물기가 뿌옇게 어렸다. 몇 남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이파리들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고 있는 길거리에는 바짝 마른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땅거미가 짙어가는 밤거리를 정처 없이 헤맸다. 환하지도 않은 불빛들이 하나 둘 꺼져가는 거리의 밤, 해주는 갈 곳이 없었다. 불 꺼진 좁은 아파트,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은 어둡고 초라했다. 그 방... 더보기
뇌에서는 분명히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면서도 해주 가슴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심장에 켜진 빨간 신호등이 그대로 멎어버려 자신의 인생도 멈추어버린 느낌이었다. 눈앞에는 온통 안개비와 같은 눈물기가 뿌옇게 어렸다. 몇 남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이파리들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고 있는 길거리에는 바짝 마른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땅거미가 짙어가는 밤거리를 정처 없이 헤맸다. 환하지도 않은 불빛들이 하나 둘 꺼져가는 거리의 밤, 해주는 갈 곳이 없었다. 불 꺼진 좁은 아파트,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은 어둡고 초라했다. 그 방에서 해주는 허리를 꺾고 통곡했다. 고아가 되어 이 세상에 혼자 남은 것을 실감하며 울고 또 울었다.
강의실에 앉았다가도 그만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 살그머니 빠져나와 화장실에 앉아 소리를 죽이며 흐느꼈다. 행여 누구에게라도 들킬까봐 라디오의 볼륨을 아주 작게 낮춘 것처럼 숨을 죽여 울었다. 길을 가다가도 그냥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밤마다 시커먼 돌덩이 하나를 삼킨 것 같은 무거움에 가슴이 짓눌려 해주는 신음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막막해서 창문의 커튼조차도 젖히기가 두려웠고, 숨을 쉴 때마다 바늘로 속을 긁어내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이럴 때 어머니가 곁에 있기만 해도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떠올리며 또 울었다. ‘아버지, 아버지 말이 다 맞았어요. 그는 믿을 만한 녀석이 아니었어요. 아이까지 생겼는데, 그는 아이를 죽이고 나도 죽였어요.’
부모님이 그리웠다. 퇴색되어 갈 줄 알았던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짙어졌고, 가슴이 저미게 보고 싶어 어떤 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신기한 인생이지만 해주는 자신의 20대가 하루아침에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을 치리라고는 참말로 상상조차 못한 일이다. 이민우마저 떠나고 나니 부모의 자리가 우주였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울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공부도 귀찮고 일도 귀찮고, 슬프기만 했다. 그리고 허무하고 비참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서다가 어지러워 걸음을 떼지 못하고 주저앉았고, 발걸음을 떼다가도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 쓰러졌다. 가끔 경험했던 빈혈기가 아주 심해진 것이었다. 누웠으면 천장이 혼란스럽게 어른거리다가 밑으로 살살 내려왔다. 그리고 온몸이 가루가 되어 침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에 깜짝깜짝 놀랐다.
그러던 어느 날, 해주는 아주 무서운 꿈을 꾸었다. 침대와 벽 사이에서 작은 몸집의 여자 하나가 발발 기어나왔다. 하늘하늘한 감으로 만든 연두 색깔 바지에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샛노랑에다 바글바글 볶은 쇼트커트였다. 그리고는 양반다리를 하고 반듯이 앉아 두 팔로 해주의 옆구리를 싹싹 밀었다. 미는 힘이 아주 약해 별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도 해주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얼굴이 해주를 내려다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아이 같은 작은 몸집을 하고 있었으나 얼굴은 분명히 어른이었다. 그녀는 ‘아아 악!’ 하고 아파트가 떠나갈 듯이 비명을 질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주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꿈같지가 않았다. 너무나 생생하게 눈앞에 벌어진 일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그 생김새가 너무나 뚜렷하게 기억났다. 쌍꺼풀이 진 동그란 눈에 코도 동그랬다. 입은 작았으나 도톰했다.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무서웠다. 자려고 누웠으나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무섬증이 몰려왔다. 전신에 서늘한 기운이 퍼지면서 가슴이 조여들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일어섰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모로 누워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면서 온몸을 돌돌 말아 구기고는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느 날은 반듯하게 단발머리를 한 소녀 서넛이 난데없이 천장에서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옷도 똑같이 무릎 밑에까지 내려온 꺼먼 드레스를 입고 머리도 새까맸다. 하나같이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해주는 너무 놀라 소리를 있는 대로 지르며 침대 시트를 붙들고 벌벌 떨었다. 바닥에 떨어진 꺼먼 소녀들이 침대로 기어오르는 것 같아 얼른 돌아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
어릴 때부터 해주는 무섬증을 모르는 아이였다. 텅 빈 집에 혼자 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잠이 안 올 때는 귀신 나오는 영화를 봐도 무서운 줄 몰랐다. 그런데 꿈을 꾼 다음부터는 괜히 가슴이 오싹오싹해지고, 뭔가 형언할 수 없는 으스스한 느낌이 서서히 엄습했다. 혼자 있기가 불안했다.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웠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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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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