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More Hiroshima

2005.08.14 14:20

이창순 조회 수:47 추천:3

  광복 60 주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열 살 때입니다.  해방소식을 듣고 아버님께서 마당에서 춤을 추시던 것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36 년 동안 일본의 엄청난 압박을 받았기에 당시 해방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점잖으신 아버님이 아이들처럼 춤을 추는 일은 그리 이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해방은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6.25 전쟁은 참혹했습니다.  나라는 죽음과 파괴로 초토화 되었고, 이어서 천만의 이산가족이 발생했습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이라는 것은 민족적 아픔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생이별을 한 채 60 년이 지나갔습니다.
이산가족의 상봉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도 가슴 찢어지는 슬픔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80 이 다 되신 노인이 북쪽에 있는 아내와 52 세가 된 아들을 단 3 일간 만나고 돌아와야 하는 것은 상봉의 기쁨이 아니라 또 하나의 피나는 아픔이었습니다.  두 살 어린 아들을 두고 나오신 분이 50 년 만에 50 이 넘은 아들을 처음 만났는데, 겨우 3 일을 함께 보내고 헤어져야 하는 것은 하나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장과 의사 정동규박사(Dr. Donald Chung)는 3 일만 나갔다 돌아오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을 하고 집을 떠나 온 후, 32 년 만에 어머니 무덤으로 찾아간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입니다. "3 일의 약속"이라는 수기를 써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정박사는, 어머님 무덤에 가서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제가 이제야 왔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식입니다.  어머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어머님도 제가 얼마나 보고 싶으셨겠습니까?  그런데도 진작 오지를 못했습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우리의 동료 백승배 목사님도 고향 땅에 가서 동생들을 만났지만, 어머님은 이미 고인이 되셨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어머님 무덤에 찾아가 한없이 통곡하고 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끝없이 많습니다.

   유대나라도 우리와 비슷하게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반목하며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남쪽의 유대인들은 북쪽의 동족들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부르며 상종도 하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통일에 대한 비전을 보고 백성들에게 통일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하셨다 하라."

   남북 분단은 외세에 의해 강제로 정해졌지만, 이 분단을 역대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정치세력 구축을 위해 이용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남북이 다 같이 안보라는 구실로 독재를 했고, 남쪽은 다행히 경제적 부흥을 가져왔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도 발전을 계속하고 있지만, 북쪽은 비참한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북쪽의 동포들은 공포와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복 60 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08/1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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