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년 전 6월 25일

2006.06.28 04:37

이창순 조회 수:218 추천:8

56년 전 6월 25일, 우리 가족은 평양에 살고 있었습니다. 평양으로 이주해 오면서 아버지는 안 계신 것으로 등록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숨어 사셨습니다. 주일아침 예배를 드리러 가려는데 라디오에서 "김일성 장군님의 특별 방송"이 있다는 예고를 했습니다. 교회에 다녀온 우리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내용인즉, "남반부 괴뢰군들이 38선 북으로 10 내지 20 키로 침범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이 일어났구나!" 하시면서 흥분된 채 좋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전쟁만 일어나면 남한이 즉시 우리들을 해방시킬 것으로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흥분된 상태에 있는 가운데 그 이튿 날 나오는 보도는, "용감한 인민군들이 괴로군들을 38선 남쪽으로 10 내지 20키로 격퇴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하루를 보냈는데 다음 날은 서울에서 오던 방송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남한 방송을 몰래 청취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터 아버지는 걱정을 하시면서 상황파악에 심혈을 기울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거리에 등장한 상황판에는 한반도 지도가 있고 전선표시가 점점 남쪽으로 매일 이동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만 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고 했다는 남한 국군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던 우리는 실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미군 비행기의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폭격을 피하기 위해 낮에는 시내 밖으로 나가서 지내고 저녁에는 집에 와서 자거나 먹을 것을 가지고 나가는 일을 매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은 날에는 폭격 장면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전투기가 나타나면 모두가 도망을 갔습니다. 왜냐하면 전투기는 언제 어디를 폭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B-29 폭격기는 방향을 정해서 지나가며 폭격을 하기 때문에 그 운행선상에만 있지 않으면 안전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밖으로 나와서 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어른들 틈에 끼어 폭탄이 내려오는 것을 실제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폭격기 한 편대는 여덟 대이고 한 대가 한 번 내려뜨리는 폭탄 수는 여덟 개, 그러니까 한 편대가 지나가면서 내려뜨리는 폭탄 수는 64개였습니다. 그런 편대가 몇 개 지나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3/40분은 지속되는 것 같았습니다. 해방의 기대는 무너지고 절망가운데 몇 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유엔군 인천상륙 소식이 들려오고 인민군들의 후퇴를 평야시내에서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가운데 그 해 10월 평양에는 유엔군이 입성했습니다. 다시 해방의 기쁨이 넘쳐났고 아버지는 전에 목회하시던 지방에 나가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며 1개월 이상이나 집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계속 좋은 소식만 인편으로 보내주시고 아버지는 계속 이웃 교회로 부흥회를 인도하시며 생에 최고의 목회를 하신 것 같습니다. 11월 어느 날 다시 평양 시내가 어수선하기 시작하더니 제 삼촌께서 들어 오셔서 심각한 표정으로, "중공군이 내려오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나가서 싸워야 한답니다."하고 어머님께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만한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유엔군들은 다 후퇴를 하고 평양은 다시 불바다가 되고 피난민 떼는 거리를 메웠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귀가하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없이 어디를 간다는 것은 그 때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판까지 아버지는 소식이 없었고 우리는 황급한 가운데 사선을 넘기 위해 집을 나서야만 했습니다. 당시 30대 젊은 우리 엄마는 네 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목숨을 걸고 대동강을 건너서 머나 먼 피난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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