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쓰고 잠이 드셨네

2010.02.22 12:35

안경라 조회 수:727 추천:48

-박영호 시인의 영정 앞에서- 70년 먼 길 얼마나 고단하셨으면 모자를 쓰신 채 잠이 드신 걸까 아픈 싸움이 얼마나 싫었으면 흰 깃발 같은 국화 무수히 내어 걸고 모자도 벗지 않은 채 아예 저토록 깊은 침묵에 빠져 버리신 걸까 많은 날 홀로 울던 외로움의 쌀들을 씻어 슬픔의 밥 지어놓고 마지막 얼굴을 보여 주시는 박선생님. 저마다 만든 눈물반찬 들고 와 아득히 멀어진 거리, 이쪽에서 수저를 든다 저 혼자 이별을 모르는 듯 이마 반짝이며 건강한 영정 사진 바람도 검은 상복을한 채 말이 없고 어리고 여린 손주들의, 슬픔에 씻긴 화환처럼 하얀 고요 시인의 얼굴만큼 익숙한 모습의 저 모자 주인 가시는 곳 따라 가려는 걸까 깊은 상념 같은 머리 맡에서 끝까지 낭만의 자존심 지키려는 걸까 자는 듯 검은 잠 드신 시인의 한 줌 흙으로 돌아 갈 살과 한 권 시집으로 세상에 남을 생의 또 다른 이별 앞에서 가만히 몸 숙여 수저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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