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응원

2009.04.18 01:01

고대진 조회 수:741 추천:150

 우리가 나고 자란 모국은 이민 온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가 생활터전으로 삼고 있고 또 우리의 자녀가 자라고 있는 미국은 또한 무엇들일까? 이번 월드컵 축구의 한국과 미국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열심히 한국을 응원하던 동포들이 한번쯤 해보았음직한 질문이다.

 지난겨울 올림픽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본국에 있는 동포들과 함께 분노하는 것을 보았다. 본국 동포들이 미국을 향하여 발산하는 이런 분노를 이곳 동포들은 어디다가 쏟아야 할 지 몰라 답답해했다. 미국이란 나라가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는 무엇이 아니라 굳이 말한다면 ‘미국’이라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 전체를 비난할 수는 더욱 없는 것이 우리 교포들도 그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마 비난을 하려면 그때의 미국 전체의 분위기와 여론을 국수주의로 몰고 간 행정부나 미국 여론에게 해야 하겠지만 이들 또한 '미국'의 작은 부분이지 전체는 아니다.

 월드컵뿐만 아니라 올림픽이나 다른 운동경기를 보면서도 난 항상 한국을 응원하게 된다.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우리 동포들 거의 대부분이 - 적어도 일세들은 - 그러하리라. 그러면서 우리가 사는 나라는 미국인데 왜 한국을 응원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해본다. 나는 여생을 이곳에서 지내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이런 감정이 ‘돌아갈 조국’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와는 달리 우리 세대의 이민은 우리가 선택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20년을 넘게 이곳에 살면서도 모국을 응원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시집온 여자가 ‘친정’을 생각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미국’이란 나라 혹은 ‘시스템’이 좋아서 혹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좋은 곳이라고 시집왔지만 이곳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시집’이다. 내가 낳고 자란 친정인 한국과 같을 리가 없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시집온 여자들의 마음이 시집 사람을 대할 때 이렇지 않을까? 즉 법적으로는 형제이며 부모이지만 - 영어로 brother in law 혹은 parents in law라는 말은 얼마나 본질을 꿰뚫어 보았는가? - 사랑은 법적으로 부모, 형제가 되었다고 저절로 우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시부모나 시댁 식구들이 잘 해주어도 친정부모나 친정식구만큼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시집 식구들이 괜히 밖에서 들어온 식구라고 차별하거나 앝잡아 볼 때는 친정 생각이 절로 날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다고 짐 싸고 쫓겨가듯 돌아갈 수는 더욱 없는 일이고.

 친정이 잘 살거나 친정 식구들이 유명해지면 내 위치도 저절로 높아지는 것 같아 나도 좀 우쭐해지는 것이 당연하고 또 친정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면 내가 한 일이 아니라도 같은 집안 일이라서 부끄러워지는 것이 당연하듯 고국의 일들을 보면서 같이 기뻐하기도 하고 또 슬퍼하기도 하니 친정은 어쩔 수 없이 친정인 모양이다. 특히 친정 동생이 시집 식구와 어쩌다 싸움이라도 할 때는 마음으로라도 친정 동생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지난 겨울 올림픽처럼 시집이 텃세를 너무 심하게 해서 친정에서 온 한국 선수들이 당한다는 생각이 들 때, 또 제이 레노의 빈정거림이 “네 친정 집안은 이렇게 형편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라고 들리면서 분노하는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못된 시집 식구 한 둘이 속을 긁어 놓으면 시집 식구들 모두가 그러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나도 시집에 속해있기 때문에 공평하고 좋은 집에 시집왔다는 소리를 친정에서 듣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친정을 버리고 저만 잘 살려고 도망갔다는 못난 친정 식구들을 대하거나 친정에서 된장 고추장만 퍼간다는 식의 이야기를 대하면 서운하기도 하다. 하지만 시집에서 성공하길 간절히 바라고 응원하는 사람이 친정식구라고 확신하며 오늘도 시집식구 눈치도 보지 않고 친정을 응원한다. 못 말리는 출가 외인들의 친정사랑이여….



<미주 중앙일보 2002년 0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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