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오 평-화

2009.04.18 01:02

고대진 조회 수:590 추천:152

 너를 따라 오르다가 / 하늘을 만났다// 너를 쳐다보다가 / 하늘이 내 키만큼 / 내려오는 것을 알았다 // 분수, / 너 때문이야 / 오늘 이렇게 신이 나는 건. <문인귀, 분수 전문>

 문인귀 시인의 시 <분수>가 자꾸 떠오르던 지난 몇 주간이었다. 분수의 솟구치는 물위에 축구공 하나가 꼭 얹혀 있을 것 같았고 그 공을 따라서 하늘로 올라가 하늘을 만나기도 하고 그 공을 따라서 하늘이 내 키만큼 내려와서 나를 즐겁게 하기도 했다.

 테니스를 빼면 구경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나에게도 테니스공이 축구공으로 보였고 영국 출신의 동료와 테니스를 하며 나눈 화제도 축구였다. 월드컵 중계방송 뒤에는 한국에 있는 동생들과 L.A.에 있는 누나와 전화를 하며 즐거워했고 꼭 옛날 연고전을 응원할 때 같이 들떠있는 나를 보면서 빨간 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70년대 서울로 해외 유학을 가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난 학교도 또 서울생활도 통 재미가 없었다. 그 해 3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던 정기 연고 농구 올스타전에 응원단으로 참가하고 나서야 학교도 내 학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서울생활도 나쁘지 않게 생각되었다. 그 뒤부터 연고전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구경갈 만큼 연고전에 중독이 되고 말았던 것은 물론이다. 아마 전 세계의 한민족이 내가 옛날에 경험했던 연고전과 같은 아니 보다 더한 떨림을 경험한 것이 아닐까?

 이번 월드컵을 통해 개선될 세계 여러 나라와의 유대관계를 생각해본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기 좋은 현상은 이웃 나라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일본과 이번 행사를 통해서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더 가깝게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인가 일본사람을 싫어하는 택시 기사가 일본 여학생을 태우고 가다 남산터널에 강제로 내리게 한 사건을 읽었다. 이 여학생은 한국을 사랑하여 방문하던 사람이었기에 더욱 안타깝게 생각한 적이 있다. 중국에서 열린 축구시합에서 중국의 훌리건들이 한국 응원단에게 못된 행동을 한 일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는 어느 나라나 몇몇의 못된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우리와 똑 같이 밥 먹고 가족을 사랑하며 자기 나라를 또 자기 팀을 응원하면서 승리를 기원하고 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나라에 있는 듯 서로를 잘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축구공 하나로 이해하고 뭉쳐지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물며 나라와 나라가 이해하고 가까워진다면이야….

 이런 생각도 해본다. 파키스탄과 인도와의 축구시합은 어떨까? 축구가 아니면 크리켓도 좋다. 서로 장소를 돌려가면서 한해에 두 번씩 말이다. 그래도 핵전쟁의 위협이 계속 될까? 또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과 마을 대항 축구대회. 총을 놓고 운동을 한판하고 나서 해어지면 그때도 서로를 악마라고 생각하게 될까? 알카이다 대표 팀과 미군 대표팀의 축구시합은 또 어떨까? 대표 팀 감독으로는 빈 라덴과 부시를 임명해도 좋다. 잠깐동안 휴전을 하고 동굴 속에서 중계를 지켜볼 알카이다 군인들과 미국 국민들. 그들의 삶을 보게 될 거고 그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뒤에도 서로를 죽이고 싶어할까?

 사람들은 자꾸 만나야 하는 것 같다. 자꾸 만나서 교류함으로서 우리와 다른 모습을 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서로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한국과 일본 또 다른 나라들이 월드컵으로 해서 가까워질 수 있듯이 만나서 축구라도 하면 남한과 북한, 구교도와 신교도, 힌두와 모슬렘, 기독인과 모슬렘이 공 차는 모습을 보면서 상대방도 자기들과 같은 보통 사람임을 느끼게 되리라.

 진짜 악마가 속삭이는 소리는 “벽을 쌓아라”이다. 악의 축이니 악마의 나라니 하면서 미움을 키우기 보다 차라리 붉은 티셔츠를 같이 입고 “오오오 평-화” 라고 함께 소리지른다면 하늘에 솟구친 축구공을 타고 우리 키로 내려오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되지 않을까?



<미주 중앙일보 2002년 0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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