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옷

2009.04.18 01:03

고대진 조회 수:595 추천:143

  나의 유학생활은 군대 제대가 학기 중간이라 일년과정의 두 번째 학기에 끼여들어야 했었다. 때문에 전 학기 수업 내용까지 공부해야 되었던 첫 학기는 수염을 깎을 시간도 없었다. 시험을 몇 번 치르고 난 내 얼굴에는 오래 안 깎은 잔디처럼 수염이 길게 자라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익숙해져 별로 나 자신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한인 친구들은 한 마디씩 꼭 평을 했다. ‘소도둑 같다’라거나 ‘지저분하다’가 대부분이고 아주 가끔 멋있다고 거짓말을 해주는 착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학생이 수염을 길렀다고 조교 생활을 못하게 하는 일이나 성적을 안주겠다는 사람이 없어 마음대로 자라라고 한참을 내버려두었던 적이 있다.

  학기 중간 저녁을 때우려고 참석한 어느 파티에서 한국 영사관의 고관 하나가 힐끗 나를 보면서 같이 참석한 학생에게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새로온 학생이라는 말을 들은 수염이 거의 없던 그 사람 “요새 젊은것들은 외국에 나오면 공부는 안하고 못된 것만 흉내낸다니까…”라며 엄숙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하기에 “수염이라도 나오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우습지나 않지…” 라며 쏘아주던 생각이 난다. 수염을 깎을 시간도 없이 공부만 하여 지쳐있던 나에게 겉모습만 보고 공부는 안하고 흉내만 낸다던 그의 독선적인 말에 반발이 생겨서다. 결국 면도하는 것보다 다듬는데 시간이 더 들어 깎아버렸지만 아직도 그 때 사진을 보면 그 사람이 생각이 난다.

  필자같이 용모나 복장에 대해 자유스러운 사람에게는 미국의 생활이 참 편하다. 다른 사람들의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남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 너그러운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복장에 대해 무신경한 것 때문에 늘 아내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내가 왜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는데. 옷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어서야…”라고 우길 수 있는 것도 이곳이다. 강의실에서 넥타이를 매고 강의하라거나 총장이나 학장을 만날 때는 어떤 옷을 입어라 라는 규정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래서 어떤 교수는 반바지 차림에 허술한 옷을 입고 헌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또 어떤 교수는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 강의하기도 한다.

  총장을 만난다고 혹은 주지사를 만난다고 넥타이를 하고 정장을 해서 학교에 오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중요한 것은 옷이 아니라 얼마나 잘 가르치고 연구를 잘 하느냐이니까. 물론 정장을 하고 출근하는 사람도 있고 또 정장을 입고도 잘 가르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겉모양에 신경을 쓰는 사람일수록 연구나 강의가 별로 신통치 않았다.

  언젠가 책가방(배낭)을 메고 반바지 차림으로 사무실에서 나오다 본국에서 온 지 얼마 안된 한 대학원 학생을 만났다. 한참 나의 위 아래를 보더니 “교수님이 학생 같고 제가 교수 같습니다”라며 킥킥대었다. 그 학생의 모습을 보니 검은 양복에 타이를 매고 가죽으로 만든 007 가방을 들고 있었다.(일년 뒤 그 학생이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요즘은 아내가 내가 ‘아무렇게나’ 차리고 다녀 부인 망신을 시킨다고 하면서 아예 입고 갈 옷을 준비해 내놓는 바람에 나도 바뀌었다.- 사실 미국의 대학교라는 곳이 옷차림에 무척 자유스러워서 복장으로는 교수와 학생을 구별하기가 좀 힘든 곳이다. 필자가 본국에 있었을 때는 꼭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하고 강의하라는 지시까지 받은 적이 있어 참 대조적이라 생각했다. 이곳에선 티셔츠를 입고 강의한다고 해서 강의의 질이나 교수의 권위가 떨어졌다거나 또 강의를 듣는 사람들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까 말이다.

  얼마 전 본국 국회의원이 선서식에 노타이차림의 캐주얼로 나왔다가 다른 의원들이 그의 복장이 국회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항의하는 바람에 선서를 못하고 다음날 넥타이를 맨 정장을 하고 나서 비로소 선서를 할 수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소리를 지르며 퇴장까지 하던 의원들이 싫었던 것은 정장이 아니라 자신들과 다른 모습이나 생각이 아니었을까 옷차림이 국회의 권위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는 기사를 보며 최경미의 시를 떠올렸다. 시인은 말한다. 권위란 “/당신과 그가 똑 같은 옷을 입고/ 똑 같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해도//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 이라고.

  겉치레에 신경 쓰기보다는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대응할 방법을 자기와 다른 생각이나 모습에서 찾으려 할 때, 나와 다른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그런 때는 의원들이 어떤 옷을 입고 나오든지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미주 중앙일보 2003년 05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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