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쏟아지는...

2009.04.18 01:16

고대진 조회 수:1041 추천:167

누나는 저녁 후 곧잘 어린 동생들을 대리고 우리 집 앞 바닷가에 있는 방파제에 나가 노래도 배워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방파제에는 항상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여기 저기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방파제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초롱거리는 별들을 세어보기도 하고 별자리를 보면서 별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는데 ‘별들이 하나 둘 달아나듯이 뽀얗게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 이나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 형제...’ 등등 구성진 노래를 부르다보면 밤이 깊어졌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했고 특히 별똥별들이 비같이 쏟아지는 유성우라도 만나는 밤에는 별들이 바다에 떨어지는 소리가 파도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듯 했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라고 시작되는 <키보이스>의 노래가 나오면 ‘내가 거기서 살았는데...’ 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제주도 바닷가의 조그만 우리 집. 지금 생각하니 밤바다가 전깃불 공해를 만나기 전에 파도소리 들으면서 별을 볼 수 있던 바닷가에서 살았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얼마 전 동부의 대 정전 사태로 더위를 피해 밖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뉴욕이나 동부 대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구나...” 온갖 불편함 가운데 위로를 찾는다면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던 밤을 지냈던 것이 아닐까?  필자같이 어려서 별을 보던 기억이 너무 좋아 아직까지 밤하늘을 보며 별을 찾는 'star gazer'들이면 더욱 찬란한 밤이었을 것이고 말이다.

필자는 모기에 물릴까봐 밖에 나가길 싫어하는 아내의 눈총을 무시하고 망원경을 들고 밖에 나가는 간이 큰 남편도 하다. 혜성이 나타났을 때나 유성우가 올 때면 어린아이같이 흥분하며 떠들어대는 나에게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걷다가 시궁창에 빠지지 말고 우선 땅이나 잘 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워낙 잘 넘어지고 다치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너무 안전한 걸음을 걸으려고 땅만 보며 걷다가 우리 머리 위에 별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만든 문명의 불빛이 너무 찬란해서 별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은 또 아닐까?

세상의 모든 모래알의 몇 배나 되는 별들 가운데 하나인 작은 별 태양, 그것을 도는 위성의 하나인 지구, 그 껍질 위의 붙은 작은 대륙에 살고 있다는 나, 이런 것을 생각하면 세상의 걱정과 근심이 그렇게 큰 것만은 아닌 것을 느끼게 된다. 별과 별의 거리, 그리고 그 별에서 나오는 빛이 달려와 내 동공에 멈추는 시간을 생각해보자. 태양계와 비슷한 위성들이 있는 별 ‘업실론 안드로메다’까지 거리가 지구에서 약 40광년이니까 지금 보는 그 별의 빛은 40년 전에 있던 빛이고 지금 그 별이 없어졌다 해도 지구에선 그 사실을 40년 후에야 겨우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이웃인 붉은 별 화성은 지구와 가장 가깝고 가장 비슷한 위성이다. 지구와 나이가 같고 4계절이 있고 공기와 자전이 있는 것까지 지구와 같다. 지름이 지구의 반, 무게가 지구의 10분의 일인 작은 위성. 하지만 생명이 존재하지 않아서 과거의 이미자와 사랑에 빠질 염려는 없다. 과거라고 해도 길어야 21분 거리이다. 빛의 속도로 말이다.

이 화성이 돌아오는 8월 27일 지구와 가장 가깝게 접근한다. 이 정도로 가깝게 접근한 것은 6만 년 전이니까 유인원 네안데르탈이 지구에 살았던 시절 이후 가장 가까운 거리이다. 가장 가깝다고 해야 약 3천 5백만 마일. 시속 백 마일의 차로 가면 4년을 밤 낮 없이 달려야 하는 거리이다. 하지만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이보다 다섯 배나 멀리 떨어져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가까운가 알 수 있다. 빛의 속도로 3분 6초의 거리에 와있는 이 별을 보려면 저녁 9시 이후 남동쪽 하늘을 보며 주황색으로 가장 빛나고 있는 별을 찾으면 되니 북두칠성조차 몰라도 이 별은 찾을 수 있다.
테러와 전쟁은 멈추지 않고 좋은 사람들은 죽어가고 종교조차 구원의 빛을 못내는 요즘이라도 밤하늘은 여전히 아름답다. 지금 보이는 실같은 그믐달도 초하루 삭망인 8월 27일에는 숨어 버릴 터 달빛에 가리우지 않은 화성은 더욱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 날은 숨을 크게 쉬어 밤하늘을 들이마시자. 혹시 별이 들숨에 따라오면? 가슴에 별 하나 지니고 살아도 좋을 것 같다.  

<2003년 8월 25일 미주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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