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법... 매국 법

2009.04.18 01:19

고대진 조회 수:805 추천:195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로 유신정권을 만든 박정희 대통령의 권력은 독재라는 말로는 다 말할 수 없었다. 판사 재 임용권을 이용 사법부를 주무르고 국회의원 1/3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 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삼권분립이란 말 자체를 없애고 말았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을 주는 이 유신법은 당시 국가 안보라는 말로 정당화되었다.

당시 필자는 공군 초급장교로 있었는데 부대마다 말 잘하는 사이비 정치학자들이 와서 유신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갔다. 그 연설 중 기억나는 부분은 박정희가 없으면 수많은 북한의 특공대가 완전 군장을 하고 산을 타서 몇 시간 안에 대전까지 침략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박정희가 아니면 북한에게 침략 당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는 동안 나는 졸면서 평양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를 그 사람이 말하는 시간으로 나눠보았다. 그것은 당시 세계 마라톤 기록 보유자보다 빠른 걸음이었다. 그것도 완전군장을 하고 평양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를 말이다.  

허기사 총으로 나라를 빼앗은 사람들이 뭘 못하겠는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이상한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에 의해 친구들이 잡혀갔다가 몸과 정신이 모두 이상해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엉터리 재판에 의해 죄 없는 사람들이 사형 당하는 것을 보면서 여기에 맞서 싸울 용기가 없음을 한탄했고-군인 신분으로는 허락 안된 일이었다- 차라리 빨리 도망치고 싶었던 내 조국의 모습이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부시 대통령의 연설에서 9.11 후 통과된 애국법(Patriot Act)라고 불리는 법을 더 강화해야 된다는 주장하는 것을 들으면서 유신정권 아래서의 필자의 경험을 아니 떠올릴 수 없었다. 애국법의 조항들이 무엇인가? 연방정부가 사람을 고용해서 영장 없이 또 집 주인의 동의 없이 슬쩍 그 집안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조항이나 또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웹사이트를 방문했는지 기록을 요구할 수 있는 조항도 있다. 가장 중요한 조항중의 하나는 사법부에 문의 없이 소환영장(nonjudicial subpoenas)을 발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정부에게 준다는 조항이다. 더 강화한다는 조항에는 테러에 관한 수사를 한다고 하면 개인의 어떤 기록이라도 어떤 기관에나(한인회는 물론 도서관, 학교, 인터넷 회사, 병원, 회사 등) 요구할 수 있고 사법부의 허락 없이도 용의자를 오랫동안 구속할 수 있게 하고 사형제도를 더 확장하자는 것이다.

결국 안보라는 이름으로 그 동안 미국이 만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바꾼다는 말이 되기도 하다. 안보를 위해 그 정도 참지 못하느냐는 말도 하겠지만 모든 나쁜 제도가 그러하듯이 이 법은 사법부의 감시를 받지 않고 헌법에 명시된 공민권을 박탈해버릴 위험의 소지가 있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일들을 보며 자란 나로서는 당연한 근심이다. 설마 미국에서... 라고 하겠지만 9.11 사태 이후 이슬람교도들이나 중동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받은 대접을 보면 걱정이 안될 수가 없다. 변호사를 만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범죄로 고발되지도 안된 상태로 몇 달씩 구속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을 정당화시킨 법 조항이 소위 말하는 애국법인 것이다.  

한참 유신정권이 모든 사람들의 목을 조르고 있을 때 사람들은 물었다. 안보가 왜 필요한가  라고.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가 북한보다 더 나을 것은 무엇이냐고. 박씨가 암살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 그 정권을 선전하려고 미국에 온 군목 출신의 어느 목사가 강단에서 말했다. 잘 살면 되지 뭔 자유고 무슨 얼어죽을 민주주의냐고... 사람들은 죄 없이 감옥에 가고 친구들이 아직도 고문 받고 있을 때여서 그 목사의 멱살을 쥐고 고함치던 생각이 난다. 인권이 유린되는 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한국에서든 우리가 사는 미국에서든. 오늘은 이슬람교도나 중동에서 온 사람들만의 인권일지 모르지만 내일은 한국계 모레는 중국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라의 안보가 중요한 이유는 나라가 개인의 인권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죄 없는 몇 명을 희생시킨다면 그 다음은 몇 백 그리고 몇 천 그러다가 안보의 이유조차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애국 법은 매국 법이 될 수 있음이다.


<2003년 9월 19일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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