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와 함께

2009.04.18 01:08

고대진 조회 수:792 추천:137

 

고래가 요즘 본국의 동해바다에도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모양이다. 30 톤이 넘는(혹은 종류에 따라 60톤이 넘는) 고래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 위를 미끄러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더구나 고래가 뿜어 올리는 분수를 보면 야호-소리라도 지르고 싶도록 시원하고 상쾌하다.

최근 2, 3년간 본국의 수산 진흥원에서는 일본학자들과 공동으로 본국 연안의 고래자원 조사결과 많은 수의 고래자원이 발견되어 이 자료를 토대로 국제 포경 위원회(IWC)에 연 근해 포경 재개를 신청할 계획을 하고 있다한다. 사냥하지 않고 고래와 어우러져 살 수는 없을까

울산 장생 포항을 중심으로 크게 활기를 띠던 포경업이 사향의 길에 접어든 것은 80년대이다.

동해로 돌아오는 고래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결국 IWC에서는 1982년 동해에서의 포경을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1986년부터 상업포경이 전면 금지되었다.

필자가 미국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했던 1984년의 IWC 과학 위원회에서 만난 한국 대표에게서 들은 말이다. 고래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더욱 확대한 것은 본국 어부들의 욕심이라고.

보상금을 더 타려고 큰 고래를 잡으면 작은 고래 두 마리를 잡았다고 회사에 보고하였기 때문에 그 보고를 토대로 IWC에서 내린 결론은 ‘어른 고래가 거의 없어 동해의 고래를 보호해야 된다’였고 포경금지의 토대가 되었다. 어부들의 삶에서 고래는 사라진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노래한다.

고래를 기다리며 /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게 삶이라고 /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지요

<고래를 기다리며 전문>


오지 않을 확률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마음. 그래도 무엇을 또 누구를 기다리는 동안은 아무리 지쳐도 살아갈 희망이 있다는 것을 시인은 말하고 있으리라.

시인이 고래가 오길 기다린다던 장생포 바다에 해마다 5월말에서 6월초에 고래축제가 열린다.

‘고래와 함께’ 라는 금년 축제의 모토가 무척 마음에 든다. 그 동안의 남획으로 멸종의 위기에 달한 고래를 보호하는 것은 바다를 공유할 수 있다는 우리의 아량의 표현이며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기 때문이다.(현대의 고래사냥은 활이나 창만으로 무장한 아메리칸 인디언들과 레이더를 비롯한 현대무기를 갖춘 군대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싸움에 몰려 대부분의 고래는 멸종 위기에까지 다다랐다.)

한 25년 전에 ‘고래인구조사’라는 연구과제를 맡아서 알래스카에서 지낸 일이 있다.

북쪽 땅끝 바로우곶(Point Barrow)을 지나 20마일을 얼은 바다위로 가면 봄이 되어 녹기 시작하는 얼음 사이로 북극을 향해 강같이 뚫린 바다를 통해 고래들이 줄줄이 이민 온다. 북극해에 있는 풍성한 먹이를 찾아서.

초록빛 바다가 얼은 듯 얼음바위가 모두 에메랄드 빛이고 그 위로 철새들이 줄지어 이민 오는 모습 등은 환상적이었다.

이 얼음바다 위로 가다가 작은 연못(폴라이나라고 불리는 얼음 구멍)만한 바다를 만나 빙 돌아가는데 그곳에서 커다란 -진짜 산더미 같은- 활머리고래(Bowhead Whale)가 슬그머니 떠오르더니 숨을 크게 한번 쉬고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때 마주친 그 고래의 눈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과연 고래도 감성이 있는 것일까 -고래가 상당히 높은 지능지수를 가진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아기고래를 삼 년씩 데리고 다니는 어미고래의 모성에서 시작하여 집단 자살까지 하는 고래의 생태를 아직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가 본 그때 그 고래의 눈은 공포와 슬픔을 함께 말하는 사람과 같은 그런 눈이었다.

고래 노래를 들으려 얼음을 뚫고 물 속에 집어놓은 마이크를 가지고 30분을 넘게 마이크를 공 삼아 달그락 달칵 하며 장난치던 아기 고래의 소리를 들으면서 혹시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영혼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은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미주 중앙일보 2003년 0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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