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벗슨의 기도

2009.04.18 01:14

고대진 조회 수:592 추천:141

미국 연방 대법원은 지난 6월 26일 6-3으로 동성연애자가 침실에서 무얼 하든 그것은 그들의 사생활이지 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변형된 섹스행위를 금지시키는 주 정부의 법은 위헌임을 못박았다. 아직도 오럴섹스 등을, 어떤 주는 이성 사이에도, 주법으로 금지하는 곳이 버지니아 주와 텍사스 주를 비롯해 13개 주나 되는데 이번 판결로 이런 주법이 모두 위헌이 된 것이다. 이번 판결의 발단은 텍사스 주 휴스톤에서 두 남자가 동성연애를 하다가 이웃의 거짓 신고로 집에 찾아든 경찰에게 체포되어 주법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연방 대법원은 이들이 사적인 생활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주 정부는 그들의 사생활인 성행위를 범죄로 만들어 그들의 품격을 떨어뜨릴 권리가 없고 또 법으로 이성 또는 동성간의 성생활의 형태를 규제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자유인권협회(ACLU)를 비롯한 인권옹호단체나 동성애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들은 양손을 들고 이번 판결을 환영했지만 기독교연합이나 제리 팔웰 혹은 팻 로벗슨과 같은 보수 기독교 목사들은 펄쩍 펄쩍 뛰면서 이것을 반대했다. 사실 딴 사람들이 안방에서 하는 일들은 그들의 안방에 속한 것이고 더구나 법으로 이런 것을 규제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런 일이라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데도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남의 규방생활까지 법으로 간섭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판결이 나고 얼마 안되어 필자가 살던 리치몬드에서 120 마일 떨어진 버지니아 비치에 본부를 둔 보수 기독교 방송(Christian Broadcasting Network)을 운영하는 팻 로벗슨(Pat Robertson)이 기상천외의 기도작전을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팻 로벗슨은 미국 동남부의 보수기독교의 대표적 지도자이다. 기독교가 미국을 지배해야 한다며 대통령 후보까지 나왔었던 그가 지난 7월 15일 전국으로 방영되는 그가 하는  ‘700 클럽’이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시청자들에게 대법원의 대법관중 세 사람을 은퇴하게 해주십쇼  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라고 선동해서 주목을 받았다.  21일 동안 ‘온라인 기도공격’을 통해 이번에 텍사스의 남색금지법(sodomy law)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대법원의 법관 6명중 진보주의 성향이 높은 법관들을 보수주의 법관으로 바꾸어야 한다며 최근의 이락과의 전쟁의 작전 이름과 비슷하게 대법원 해방작전(Operation Supreme Court Freedom)이라고 이름까지 붙였다.

온라인상에 나와있는 이런 기도를 선동하는 글에는 하나님이 어떤 대법원 판사들를 은퇴하게 해야 할지 꼬집어 말하지는 않았다. 단지 한사람은 83세이고 한 사람은 암에 걸렸고 한 사람은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그의 웹사이트에서 힌트만을 준다. 와싱턴포스트는 이 세 판사들이 스티븐스 판사, 긴스버그 판사와  오코너 판사라고 보도했다.

하나님에게 이런 기도를 하자는 목사를 보면 꼭 한편의 저질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아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저속하고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차라리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어 바늘로 찌르며 굿하고 저주하는 모습은 솔직하다구나 할 수 있지 기독교와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기도를 파는 장사꾼이라니... 하기야 자본주의의 기수인 이 미국에서 기도를 팔아먹으며 사는 사람들이 한둘이겠는가?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필자가 처음 버지니아로 이사온 해인가 큰 허리케인이 노스케롤라이나에서 버지니아비치를 거쳐 북쪽으로 올라간다는 예보가 났다. 그 뒤 노스케롤라이나 해변을 강타한 허리케인이 방향을 돌려 버지니아 비치를 살짝 비켜 북상한 적이 있었다. 이에 로버슨과 그 추종자들이 로벗슨 목사와 팔웰 목사가 열심히 기도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신문에서 읽고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봉이 김선달이 미국에 태어난다면 그의 직업이 무엇이 되었을지 짐작이 간다.

가만 있자. 이런 기도를 듣고 하나님은 뭐라고 하실까? 아마 깔깔대며 웃으시겠지? “요즘 웃을 일이 없는데 별 미친 녀석이 다 있구나. 후후. 가만있자. 이 기회에 이슬람과 유대교인 또 타종교를 모두 악마라고 하면서 세상에 대립과 미움만 가득 심어 가는 이런 녀석들을 모두 은퇴하게 하는 작전을 한번 시작해볼까?” 라고 하신다면? 흠- 좋은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2003년 7월 25일 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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