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살 빼기

2009.04.18 00:52

고대진 조회 수:574 추천:128

 TV 광고에서 고통 없이 군살을 빼는 기구의 광고를 보고 마누라는 정말 좋은 것 같다며 우리도 하나 사자고 조른다. 사십 중반이 넘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내 허리 사이즈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바지 하나 사는 값이면 사는데 뭐…’하면서 정말 주문을 할 모양으로 전화번호까지 써놓았다. 최근 내 허리가 xx로(비밀이다) 늘어나자 옷걸이에 걸려있는 바지를 새 것으로 바꾸는 것보다 기왕 있는 바지에 내 허리 사이즈를 맞추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마누라는 생각했을 것이다. “필요하면 당신이 사보지 그래” 하면서 화살의 방향을 슬쩍 돌려보았다. 사실 효과만 있다면 바지 하나 값을 투자할만 하니깐 말이다.

 나도 그 광고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멋있는 근육질의 남자와 잘 다듬어진 여자가 나와 이런 벨트만 매고 가만 앉아있으면 운동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허리와 다리의 군살이 없어진다는 광고였다. 의학적으로 증명된 결과라고 선전하면서 말이다. 광고에 쉽게 넘어가는 마누라가 “저것 봐요, 정말 그럴듯 하잖아요? 저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봤다는데…”라며 “하나 주문할까요”라고 묻는다.

 정말 이런 기구가 효과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임상실험을 통한 확인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기구를 쓰는 그룹과 안 쓰는 그룹으로 나눠놓고 몇 달 동안 기구를 쓰게 해 결과의 차이를 보면 효과를 알 수 있다. 물론 안 쓰는 그룹에게도 비슷한 기구를 주고 마치 진짜기구를 쓰는 것 같이 여기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심리적 효과(placebo effect)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 기구의 임상실험 결과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실험결과는 두 그룹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가지 예외는 띠를 통해 굉장히 강한 떨림을 준 그룹은 근육에 쥐가 날 정도의 작은 효과가 있었다. 편하게 벨트만 매고 있으면 살빼기 효과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러면 효과를 봤다고 증언하는 많은 사람의 말은 어떻게 들어야 할까? 기구를 쓰고 효과를 못 본 사람들의 말은 하나도 들을 수 없는 일방적 광고니까 그저 광고라고만 생각하면 될 일이다. 정력에 좋다면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본국 사람들을 보며 웃은 적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도 편히 살을 뺄 수 있다면 뭐든 시도해 보는 것 같다. 그러니 광고비를 그렇게 많이 들이고도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우리 주위에도 검증 안된 여러 가지 건강요법이 유행처럼 휩쓸고 지나간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럴싸한 논리를 통해 그 효과를 증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임상실험을 통한 과학적 검증이 없는 이런 요법은 앞에서 말한 살 빼는 벨트의 광고와 다름이 없다. 정말 운동도 하지 않고 군살을 빼려고 이런 기구를 사느니 차라리 허리 넓은 바지 하나를 사는 것이 더 현명한 결정일 것이다. 중년 이후 나오는 배는 인격이라고 우기면서 말이다.
 


<미주 중앙일보 2002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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