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사랑

2003.10.22 01:25

조회 수:712 추천:85

저주는
무섭지 않았다
땅을 기는 것보다 무서운 건
이별
몸 가득 싼 너의 기억
한 꺼풀씩 벗겨야 하는 것

돌이 쏟아졌다
펑 펑
수평으로 수직으로
터지고
갈라지며
넘어졌다
소리도 없었다
검붉은 핏물 웅덩이 위로
스스로 옳다는 사람들 핏대선 고함소리 날고
겁먹은 사람들 고개 끄덕이는
어제같이 침묵들

아우성 사라진 광장
하오의 햇살 따가운데
검은 돌무더기 속
낮은 신음
이브...‚

소리 위로
비 나리고 눈 나리고
휭 휭 시간이 날아가고
돌마다 붉은 기억 희미해지는데
생각은 왜 이렇게 길게 얼어붙어
하얗게 또 밤을 새우는가

햇살은 펑 펑 내리는데
그리움 칭칭 감은 배암
돌무덤 위에 고개를 높이 든다
아, 멀리 아지랑이 속을 걸어오는
연보랏빛 라일락 한 묶음

꽃묶음 땅에 떨어 지고
무덤 앞에 얼어붙은 여자
아지랑이 속으로 달아나는 소리...

저주!


시작노트: 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 저주... 서정주님의 '화사'에서 묘사된 뱀... 뱀을 쫓아가며 돌맹이를 던지던 어릴 적 기억... 창세기를 쓴 시인의 뱀의 사랑 이야기... 조금 다르게 보고 싶었다. 이브와 뱀의 스토리를 다르게... 미주문학에 실린 버전은 마지막에 긴장이 풀려버려서 조금 고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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