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전쟁

2009.04.18 00:46

고대진 조회 수:437 추천:122

얼마 전에 같이 일하던 인도계의 미국 친구가 심각하게 9·11 사태 이후 자기가 경험한 일을 이야기했다. 친하게 지냈던 미국 동료가 자기에게 저런 사건을 보면 너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지느냐고 자기와 똑같은 분노를 느끼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민 온 너희 같은 사람도 우리 같은 애국심이나 연민을 느낄 수 있겠는가 라는 뜻으로 들려 그 뒤로는 오랜 친구로 사귀어온 그 사람이 그렇게 낯설게 보일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늘 수영장에서 같이 만나던 사람과 수영을 끝내고 자쿠지에서 몸을 데우며 이야기를 하다 그가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어떠냐고 물었다. “전쟁이 다 그렇지, 사람이 죽고 고아가 생겨나고 슬픈 일이 아니겠니?”라는 말을 들은 이 친구 버럭 화를 내더니 “넌 죄 없이 죽어간 6천명의 생명은 생각하지도 않는가?”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럼 넌 그 화풀이를 위해 다시 몇 만 명의 죄없는 생명으로 앙갚음을 해야 한단 말이냐?”라면서 언쟁을 했었다. 물론 그 뒤로 수영장에서나 체육관에서 그 친구를 만나도 서로 얼굴을 돌리게 되었다. 감정에 복받친 그 사람의 눈에 비친 나는 항상 불온한 외국인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9·11 이후 우리를 엄습하고 있는 광적인 애국주의와 죽음의 이미지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가 되는 것 같다. 테러에 대한 공포보다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공포는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사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게 하는 것 같다. 소위 감정을 부추기는 연설이 잘 먹히는 이유가 이것이다. 진위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 연설에 담긴 감정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지난달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와 전쟁을 해야 한다는 연설을 한 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도 이와 같이 느꼈다. 전쟁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증거가 나에게는 전혀 설득이 안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전쟁에 찬성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를 모으고 있는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벌써 자국민에게도 이 무기를 써서 수천 명을 죽게 하거나 눈이 멀게 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악마를 몰아내는 것은 당연합니다…”라고 감정에 복받치는 연설만 해도 그렇다. 사담은 독재자이고 모든 독재자가 그렇듯이 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독가스를 써서 수천 명을 죽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확률이 크다는 스테픈 펠리티어(Stephen C. Pelletiere )의 보고가 생각났다.

 당시 CIA에서 일했고 1991년 전쟁에서 이라크가 어떻게 미국과 싸웠는지에 대한 육군의 조사단을 이끌었던 펠리티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라크가 자국민에게 독가스를 사용했다는 것은 8년에 걸친 이라크-이란 전쟁 말기인 1988년 3월 할라브자(Halabja) 라는 마을의 커드족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날 커드족이 독가스 폭탄을 맞았다는 것이지만 이라크가 그랬는지는 확실히 모른다는 것이다. 이 전투 직후 미국 국방부 소속 정보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커드족을 죽인 것은 오히려 이라크의 화학무기가 아닌 이란의 화학무기였을 것이다. 죽은 커드족의 몸을 조사한 결과 이란이 주로 쓰던 사이어나이드(cyanide)를 쓴 무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라크는 독가스(mustard gas)만을 가지고 있었고 사용해 왔다. 이라크와의 전쟁이 다른 사실로 정당화될 수 있어도 자국민을 화학무기로 학살한 것 때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펠리티어는 미국이 이라크를 눈독 들이는 이유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락의 풍부한 수자원 때문이라고 한다. 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중동을 주무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전쟁을 해야 한다면 슬픈 일이다. 엄청난 인명을 잃는 것이 가장 큰 슬픔일 것이고 -이라크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똑같은 생명이기 때문에- 전쟁과 복구의 엄청난 비용과 미국이 세계로부터 받는 그 비난 등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에 호소하는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현명함을 기대하는 것은 이미 때늦은 허망한 바램일까?

미주 중앙일보 2003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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