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창씨개명

2009.04.18 00:54

고대진 조회 수:434 추천:109

이락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그렇게... 이젠 전쟁이 빨리 끝이 나서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사상자 수가 많지 않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 사상자가 늘어나고  복수에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시간만큼 미움도 자라나고 전쟁의 상처도 깊어질 테니까. 미움에 싸여 한 세상 살기엔 우리 삶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전쟁을 시작한 후 실시한 어느 여론조사에선 조사대상 65%가 전쟁을 지지한다는 소식이다. 필자가 참여한 어느 인테넷의 여론조사에도 지지가 67% 반대가 25% 기타가 8%로 나왔으니 전쟁의 지지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말에도 근거는 있는 모양이다. 유엔 승인이 없이는 60%가 전쟁을 반대한다는 전쟁 전 어느 여론조사와 대조적인 결과를 보면서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생각해본다. 전쟁 전에는 조사대상이 되기를 거부하던 많은 사람들이 여론조사 대상이 되기를 승낙한 결과일 것일 수도 있다. 조사 대상 중 40%가 사담 후세인이 9.11 사건과 관련이 되어있다고 잘못 믿고 있다니 만일 이락과의 전쟁이 9.11 사건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숫자가 좀 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국 청년들이 싸우는 전쟁이 잘못되고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고 깊이 알고 싶지도 않은 미국인이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쟁을 반대하는 일이 마치 자국 군인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고 비애국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한가지 숫자로 미국 전체를 요약하려는 일은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이 이런 숫자의 놀음에서 자유롭기 또한 쉽지는 않다. 이런 숫자를 믿고 정부의 정책에 반대를 하는 것은 무조건 비애국적이라고 몰아붙이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숫자를 무조건 믿는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오류는 자신들과 다른 소수의견의 사람을 얼굴색이나 형태 혹은 발음으로 가려내려 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용납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미움으로 가득한 사람들 말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벌써 이런 미움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아랍계통의 미국인이 하는 가게가 벌써 밴덜리스트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이 사람은 레바논 출신의 미국인인데 전쟁소식이 나면서 이런 것을 예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이 가게가 반달들의 습격을 받은 이유가 주인이 아랍계통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가게가 파리의 경치와 에펠탑을 로고로 삼았기 때문이란다. 반전의 목소리가 높은 프랑스에 대한 반발이다. 허기사 어느 미친(?) 애국자의 식당에선 프랑스가 싫어 프렌치프라이의 이름을 리버티프라이라고 바꾸었단다. 정말 전쟁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식당까지 미치게 할지 모른다. 식당에서 “프렌치프라이를 주세요” 하거나 “프렌치토스트 하나” 라고 잘못 주문했다간 주문대 앞에서 “리버티프라이, 리버티토스트”를 열 번 외어야 주문을 받는다고 벌을 새울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가만있자 오케스트라에서 프렌치혼을 연주하는 사람이 이런 미친 녀석들에게 테러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프렌치가 붙은 프렌치드레싱이나 프렌치브레드도 이름을 바꿔야 할까? 창씨개명은 일제시대 우리 나라에서만 있는 줄 알았더니... 후후 그러다가 프랜치 우먼이 리버티 우먼이라 불리는 건 아니겠지?  
나와 같은 대학에서 일하던 친구 사이러스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락계 미국인이었는데 좋은 대학을 나오고 박사학위를 받은뒤 연구교수로 부임해온 사람이었다. 이 친구는 항상 학생들이나 다른 동료들이 자기를 조롱하고 자기를 따돌린다며 불안해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이란 사태와 90년대의 이락 전쟁을 겪으면서 학교에서, 이웃들에게서 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며 인종 차별을 받고 나서 생긴 버릇이었다. 결국 보수적인 버지니아에서 몇 년을 견디지 못하고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얼굴 생긴 것 때문에 이런 차별을 받는 자녀들이 없을까? 아니 지금도 이런 차별로 가슴에 상처를 받지 않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전쟁이 빨리 끝나면 좋겠다. 이락에도 평화가 오고 사람들 사이에 미움이 없어지고 내 친구 사이러스가 불안해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할 날이 왔으면... 식당에서 강제로 창씨개명 당한 프렌치프라이가 본 이름을 되찾을 날이 빨리 빨리 왔으면....  



<미주 중앙일보 2003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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