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즐기기

2009.04.18 00:50

고대진 조회 수:773 추천:101

캘리포니아 로토 잭팟 상금이 1억7천만달러로 불어났다고 한다. 세금 빼고도 상금이 현금으로 6천2백만달러가 되니 로토 티켓을 사려고 인산 인해를 이룬다는 소식이다. 멀리 있는 친구가 ‘로토 티켓을 몇 장 사면 어떻겠냐’고 전화로 물어왔다. 숫자를 다루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1에서 47까지 숫자 5개와 1에서 27까지의 메가번호 하나를 맞추는 잭팟에 당첨될 확률은 4천1백41만6천3백53분의 1이다. 이 복권 한 장의 기대값, 즉 현금 가치는 상금 곱하기 당선 확률로 약 1달러50센트. 액면 값보다 기대치가 높은 복권은 아주 보기 드문 경우라 친구에게 ‘한 장 사라’고 자신있게 권했다. 당첨상금이 7백만달러라도 현금 기대금액이 6센트도 채 안되는 일반 복권은 ‘절대 사지 말라’고 조언해왔기 때문에 그 친구는 ‘복권 사라’는 내 권유에 의아해 했다. 사실 상금 액수가 1억2천만달러 이상이 되면 세금을 뺀 현금 기대치가 1달러가 넘으므로 한번 사볼만한 것이다.  

 버지니아 로토 복권은 1에서 49까지 숫자중 여섯개 모두 맞추면 당첨된다. 당첨확률은 약 1천4백만분의 1. 버지니아 복권은 잭팟 말고도 다섯 숫자가 맞을 경우 1천달러, 네개의 숫자가 맞으면 75달러를, 셋이 맞으면 5달러를 현금으로 주기 때문에 상금이 1백만달러라면 기대금액은 20센트다. 캘리포니아보다 훨씬 좋은 기대금액이다. 그래도 잭팟 금액이 1천만달러라야 기대금액이 43센트이고 잭팟이 자그마치 3천3백만달러가 돼야 기대치가 액면금액인 1달러가 된다.

 장사하는 사람(주 정부)의 입장에선 이렇게 수지맞는 장사가 있을 수 없다. 곱절 이상 남는 장사니 말이다. 그러니 복권 구입자들은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봉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정부에서 하는 복권을 ‘바보세(taxation for stupidity)’, 즉 바보에게만 부과하는 세금이라 부른다. 사실 복권을 사는 사람은, 숫자로만 보면, 뭔가 모자라 보인다. 이런 것을 알면서도 우린 복권을 산다. ‘주 정부를 돕기 위하여!’라며 호기를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정부의 도움으로 겨우 사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서 글쎄 믿어야 할까?

 기대값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복권의 마력은 추첨 때까지 당첨될 꿈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이 허망한 숫자를 알면서도 복권을 사고 싶은 분에게 복권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자같이 복권에 한 번도 당첨된 적 없는 사람을 위해 복권 지침서를 알려 드린다.

 1. 적어도 로토 복권 당첨액이 버지니아에선 2천5백만달러, 캘리포니아에선 9천만달러가 돼 기대값이 80센트를 넘으면 한 장 산다. 20센트는 복권을 만드는 경비로 생각하면 1달러 로토의 현금가치가 1달러 정도가 된다.

 2. 토요일 추첨하는 복권이면 수요일 추첨이 끝난 후 목요일 아침에 사서 토요일 밤까지 3일 동안 세금 빼고 8백60만달러의 상금을 가지고 할 일들을 생각해본다. ‘1백만달러 정도는 고국에 계신 어머니께 여행비로 드리고, 1백만달러는 감사헌금을 하고 나서 나를 위해선 뭘하지? 가만 있자.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더라…’하면서 말이다.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싱글벙글,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싱글벙글하며 행복하게 지낼 것. 하지만 두 장 이상을 산다고 이 행복이 두 배 이상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 한 장 이상은 사지 않는다.

 3. ‘꽝’이 됐으면 주 정부에 바보세 1달러 바쳤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바보가 없으면 주 정부 재정이 흔들거림을 알고 세금을 정직하게 냈다고 생각하거나 행복한 공상을 즐긴 값이라고 생각하며 웃으면 된다.



<미주 중앙일보 2002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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