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왜 다섯 잎인가?

2012.02.16 00:22

고대진 조회 수:1298 추천:152

 18718E4B4DF5E8812CAE21 <등심붓꽃 (여섯개의 꽃잎)>

 대학교 때 공부하는 것이 시들해졌을 무렵 ‘율곡의 사상’이란 현암사에서 나온 책에서 무척 흥미로운 천도책(天道策)이란 글을 읽었다. 이는 율곡이 23 (명종 13) 때 겨울에 있었던 별시(別試)에서 장원 급제한 과거 시험의 답안지로써, 천문, 기상의 순행과 이변 등에 대한 책론이었는데 답안도 답안이거니와 시험 문제들이 너무 흥미로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책 여백에 나의 답을 쓴 적이 있었다. 그 시험문제의 예를 들면


…천도(天道)는 알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어렵다. 해와 달이 하늘에 달리어 하룻낮 하룻밤을 운행하는데 더디고 빠름이 있는 것은 누가 그렇게 시키는 것인가? 혹 해와 달이 한꺼번에 나와서 일식과 월식이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구름은 어디에서 일어나며 흩어져 오색이 되는 것은 어떤 감응인가.  연기 같으면서도 연기가 아니고 매우 아름다워 부산한 것은 어째서인가? 안개는 무슨 기운이 발한 것이며 적색이 되기도 하고 청색이 되기도 하는 것은 무슨 징조가 있어서인가 혹 황무(黃霧)가 끼어 사방이 보이지 않고 혹 대무(大霧)가 끼어 낮에도 어두운 것은 또한 어째서인가? 천둥과 우레와 벼락은 누가 주관하는 것이며 그 섬광(閃光)이 번득이고 소리가 두려운 것은 어째서인가? 혹 사람을 벼락치고 혹 물건을 벼락 치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서리를 이용하여 풀을 죽이고 이슬로써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데 왜 서리가 되고 이슬이 되는지 그 까닭을 들을 수 있을까? 남월(南越: 지금의 광동 광서지방)은 땅이 따뜻한데도 6월에 서리가 내려 변괴가 혹심하였으니 그 당시의 일을 상세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비는 구름으로부터 내리는 것인데 혹은 짙은 구름이 끼고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등등인데 이런 질문에 앉은 자리에서 한나절 안에 답을 쓰는 사람들의 천재성도 알아줘야 하겠지만, 문제를 만든 사람들 또한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답할 수 있던 질문들도 있었지만 답할 수 없던 질문이 더 많았다답할 수 없던 질문 중 하나는 “초목의 꽃은 다섯 잎이 대부분인데 설화(雪花: 눈꽃)만이 유독 여섯 잎인 것은 어째서인가?” 였다. 이 질문에 대한 율곡의 대답은 “초목의 꽃은 양의 기운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 다섯 잎이 나오는 것이니 다섯은 양의 수()이고, 눈은 음의 기운을 받기 때문에 홀로 여섯 잎이 나오는 것이니 여섯은 음의 수입니다. 이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입니다.”였다. 수학을 공부하는 나에게 대답과 질문 모두 흥미롭게 느껴졌다. 정말 양의 기운을 받는다면 한 잎이나 세 잎 혹은 일곱 잎의 꽃은 왜 많지 않을까? 두 잎이나 네 잎 혹은 여섯 잎을 가진 꽃들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율곡을 잊고 있던 내가 이 글을 다시 떠올린 것은 시애틀에서 공부를 마치고 버지니아에 직장을 얻어 이사한 다음이다버지니아 주 꽃이 도그우드 (dogwood) 꽃인데 (한국 이름은 미국 산딸나무) 그 꽃잎이 네 개인 꽃이기 때문이다. 보통 꽃잎은 다섯인데 4개의 꽃잎을 가지고 있고 또 하얀 꽃잎 끝에 뻘건 동그라미 모양의 구멍이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못 자국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부활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봄에 나오는 이 꽃은 부활절 무렵 버지니아 산속에 하얗게 혹은 분홍빛으로 아름답게 피어난다. 가만 보니 큰 나무 그늘에서 잘 자라고 피어나서 율곡의 음의 기운을 타고 피어난다는 6각의 눈꽃(雪花)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육각형의 눈 결정은 물 분자가 육각형으로 배열될 때 가장 안정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자연에는 사실 많은 육각형의 모습이 있는데 벌집의 모양이나 눈꽃의 모양 모두 이렇게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벌들이 집 짓는 모양을 역학적인 양이나 음의 기운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억지가 되기 쉬울 것이다. 꽃은 어떨까? 우선 꽃잎이 5개가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러할까? 그렇다면 왜 그럴까? 하고 우선 보이는 모든 꽃잎의 개수를 세어보기 시작했더니 꽃잎의 수가 생각보다 무척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타까 니시야마란 사람의 논문을 보면 씨를 퍼뜨려 번식하는 종자식물(種子植物)들의 꽃잎의 수는 17%  0, 일 퍼센트가 하나, 3% 2, 6% 3, 17.4% 4, 38.4%가 다섯, 11%가 여섯, 3.2%가 일곱 이상이라고 한다. 꽃잎의 수를 모르는 것도 3%. 다섯 꽃잎을 가진 식물이 가장 많기는 한데 2, 4 여섯 개 등 짝수 잎의 꽃들도 30%가 넘어 율곡의 해석으로라면 음지에서 음의 기운을 받고 자라야 하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네 개의 꽃잎이 있는 꽃들을 보면 식나무꽃이나 금달맞이꽃 그리고 도그우드와 잘 알려진 라일락꽃이 있다. 등심붓꽃은 꽃잎이 여섯인데 이렇게 짝수 꽃잎을 가진 꽃들이 그늘에서만 자라는 꽃이 아니라는 것이다. 꽃잎의 수가 왜 다섯이 많은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적어도 양의 기운이거나 (홀수) 음의 기운으로는 (짝수설명이 안 되는 것 같다. ‘이는 어찌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라고 말해버리면 요즘 과거 시험에는 불합격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2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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