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를 생각하며

2009.04.18 01:07

고대진 조회 수:745 추천:128

 

서구나 한국에 소개된 아랍권의 시인들은 ‘예언자’를 쓴 칼릴 지브란을 빼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빌 모여즈(Bill Moyers)의 ‘말 놀음 (Fooling with words)’이라는 책을 읽다가 시인 콜만 박스(Coleman Barks)가 번역한 루미의 시를 읽고 나서 바로 루미의 팬이 되어 그의 시를 애독하기 시작했다.

  시인 루미는 1207년 9월 30일 아프가니스탄의(당시 페르시아 제국) 발크(Balkh)라는 지방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몽고군의 침략을 피해 터키의 코냐라는 지방에 이민을 가서 학교를 지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랍 문화권의 셰익스피어로 알려져 있는 이 시인의 시 ‘모세와 양치기’의 앞부분을 소개한다.

  양치기 목동 하나가 길가에서 기도하는 것을 모세가 들었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셔요 제가 좀 도와드리고 싶어요. 구두도 고쳐드리고 머리도 빗겨드리고 말이에요. 옷도 빨아드리고 이도 잡아드리고 또 당신이 잠자리에 들 때면 우유도 먹이고 당신의 조그마한 손과 발에 키스도 하고 싶어요. 또 방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돈도 할께요. 하나님, 내 양과 염소들 모두 당신 것입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아이이- 와 아아아-뿐이랍니다.”

  모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물었습니다. “너 누구에게 이야기하는 거냐 ” “우리를 만드시고 또 땅과 하늘을 만드신 분에게요.” “하나님께는 신발이니 양말이니 하는 것을 말하면 안되지. 그리고 조그만 손과 발이라니 마치 이웃 아저씨와 이야기하는 것 같구나. 신성을 모독하고 있어. 자라는 존재만이 우유가 필요하고 발이 있어야 신발이 필요하지 하나님같은 무한하신 분에게 그?투의 말은 모독이란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만 육체가 있고 성장이 있지 하나님인 알라신에게 그런 말은 신성 모독이란 말이다…”

  목동은 부끄러워 고개도 못들고 옷을 찢으며 슬퍼하고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소리가 모세에게 임했습니다. “너는 나의 분신과 날 갈라놨구나. 너는 합치기 위해 온 선지자냐 갈라놓기 위해 온 선지자이냐. 나는 모든 존재마다 독특하고 다르게 보고 알 수 있게 만들었고 또 다르게 표현하게 만들었다. 너에게 그르게 생각되는 것은 그에게는 옳을 수도 있고 어느 사람에게는 독이 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꿀이 된단다. 너희들이 말하는 순수와 비순수, 나태함과 부지런함은 나에겐 전혀 의미가 없다. 나는 그런 것을 모두 떠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방법은 어느 것이 더 좋고 어느 것이 더 나쁘다 라고 할 수 없단다. 힌두교도는 힌두의 방법으로, 이슬람교도는 또한 그들의 독특한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란다. 이 모두가 경배이고 이 모두가 옳은 것이다.

  예배의식에서 영광을 받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란다. 난 사람들이 무슨 말을 소리내어 하는지 듣지 않는단다. 그저 그 안의 겸손함만을 볼 뿐이지. 진실은 말이나 형식이 아니라 상처입고 아물지 않은 상처자국 같은 그들의 초라함이며 겸손이란다. 모세야. 네 생각과 너의 표현하는 형식의 틀을 태워버려라… ”

  이 시는 후반부는 모세가 양치기를 찾아가 부끄러워하며 자기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데 양치기는 벌써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모세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으로 끝난다. 아랍 문화와 서구문화의 충돌이라는 말이 나오는 지금 같은 때 루미의 지혜를 빌리고 싶다. 루미의 말대로 신을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나에게 닿는 모습을 느낄 뿐. 사람에 따라 이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자의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벌써 도가 아니고…”라는 명제는 옳다. 말보다 더한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언젠가 주일학교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하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하늘에 하늘이 어딘데 공중 그러면 지구 반대편 사람들에게는 발 밑이네. 구름 속 천국엔 비가 오고 안개가 끼었나 어디 아무데나 보여 하고 아이들을 놀리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해나가 두 손을 모아서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 하고 대답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찡 해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은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이 계신 것 같다.


<미주 중앙일보 2003년 0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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