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클래식 음악가의 편지

2009.04.18 01:21

고대진 조회 수:996 추천:199

이곳 샌안토니오 심포니가 지난 7월 파산신청을 했다. 자산이 65만 불인데 부채가 120만 불. 단원들의 의료보험료만 매달 4만 5천불 지불되어야 하는데 은행 잔고가 4천불이니 파산이 안될 수 없다. 왜 그렇게 됐을까? 단원의 연봉이 높은 것은 아니다. 2001년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평균 연봉이 3만 3천불 (39주의 시즌). 그것도 2002년에는 20%의 감봉이 되었단다. 결국 관객동원에 실패한 것 때문이리라. 심포니의 공연의 질은 무척 좋았다는 평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찌 샌안토니오 뿐이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이다. 테네시의 멤피스, 플로리다의 포트 로더데일, 뉴욕의 버팔로,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는 물론 좀 크다는 휴스톤이나 토론토까지도 예외는 아닌 것을 보면 미국에서 클래식 음악은 정말 죽어가는 장르인지 모르겠다. 어찌 미국 뿐 일까? 유럽도 관객이 줄어가는 것은 마찬가지. 최근 영국 신문 ‘텔레그라프’에 의하면 오케스트라가 관객동원에 실패하는 것은 관객 탓만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자체의 잘못이기도 하다고 한다. 심포니가 가진 계급의식, 자기도취,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것 등을 말하면서. 그중 계급의식이나 자기도취라는 말에 공감을 못하다가 최근 어느 신문에 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올린 글을 읽으면서 조금은 짐작하게 되었다. 글을 올린 사람은 텍사스 오스틴과 근처의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한국계 단원인데 근처 샌안토니오에서 온 단원이 왜 샌안토니오 심포니가 파산에 이르렀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오스틴은... 도시는 작지만 주도라서 인구 대부분이 높은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게 사람들이 좀 더 레벨있는 생활을 하고자 하고.... 그래서 물가도 비싼 만큼 좋은 것들이 모여있다고 하네요. 큰 도시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 없으면서 장점은 가지고 있는 얼마 전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랭킹 1위에 뽑힌 이유도 이러하다고 합니다.
반면...샌안토니오는...대도시이긴 하지만...멕시칸이 아주 많고(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많고...인구 대부분이 부자보다는 보통레벨이 많고)...클래식보다는 멕시칸음악이나 배구 등등에 관심이 더 많고...뭐 이런 이유로 샌안토니오 심포니는 넉넉한 후원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과민반응인지 모르지만 필자는 이 설명을 마치 멕시칸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교육 못 받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보통으로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심포니를 후원할 사람도 많지 않고 오스틴보다 살기 나쁜 도시이다.. 라고 읽었다. 아마 앞에서 말한 오케스트라의 계급의식이나 자기도취성향 이란  말을 기억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필자가 샌안토니오로 옮길 생각을 했던 이유가 이곳이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사는 도시라는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라서 그런 말을 했다는 사람이 더 밉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책망하며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이메일을 보냈다. ....어느 인종이든 다 훌륭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더구나 교육을 못 받은 것은 그들의 열악한 환경 때문이지요. 또 히스페닉 인구가 많은 이 도시 사람들이 멕시칸음악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하고요. 인종이나 경제적 여유 혹은 운동이나 또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클래식음악이 후원을 얻지 못했다는 말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클래식 음악)교육도 못 받고 보통 레벨로 살면서 멕시칸음악을 좋아하고 축구와 농구를 무척 좋아하는 샌안토니오의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부터....  

긴 이메일을 받고 이 음악가가 무척 억울했던 것 같다. 자기의 말이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었다며 태어나서 처음 받는 혹독한 글이라 평생 못 잊겠다는 글을 올려놓았다. 좀 심한 책망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 음악가는 적어도 그런 편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우리 동포들의 글이나 대화에선 멕시칸이라서... 흑인이라서...못 배운 사람이라서... 못사는 사람이라서....라는 편견들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한 책망임을 알았으면 해본다.

필자는 대중음악에서부터 국악 재즈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한다. 또 음악, 미술, 연극, 시, 소설 등 배고픈 예술이 직업인 사람들을 무척 존경한다. 가난해도 그저 예술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자부심이 더 강한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예술을 감상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거나 자기 장르만이 훌륭하다고 한다면... 그 예술은 자기도취밖에 될 수 없을 것이고 그 장르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 제발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2003년 10월 3일 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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