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서재 방문 6. 김동찬 문학서재

2007.01.29 12:38

고대진 조회 수:167 추천:81

지금까지 방문한 문학서재는 모두 여류 작가들의 서재였다. 여류를 밝힌다고 하면 필자에게도 할말이 있다. 내가 밝힌 것이 아니라 그 서재들이 나를 밝혀주었다고 말이다. 이 밝음을 등에 업고 (후광이라…) 다음 들른 곳은 우리 남류의 대표 김동찬시인의 서재이다. 사실 남 작가의 서재 중 여류 작가들의 서재 같이 인기 있고 재미있는 서재 나와보라고 해… 라면 자신 있게 나올 곳이 어디 있으랴...라고 생각했는데 필자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이번 몇 남류 작가의 서재를 돌아보면서 알게 되었다. 김동찬시인은 우리 미주 문협을 위해 오랫동안 심부름꾼 노릇을 해왔다. 특히 초대 ‘미문이’로서 이 문학서재 터를 일구고 집들을 지어 아름다운 컴뮤니티로 만든 주역이다. 이번에 심부름꾼들의 심부름꾼이 되어 우리 미주 문협을 이끌어주신다니 미주문인들의 행운이 아닌가 생각한다. 각설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동찬시인의 서재에 들어서면 어느 평자의 ‘영화배우 안소니 퀸 같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 모습의 사진을 보게 된다. 아니 배용준 같던 김시인의 모습이 어찌 이렇게 변했을까? 영화의 안소니 퀸 같이 수염도 기르고 나이도 좀 들어 보이는 것이 만년 소년의 모습에서 중후한 중년의 모습으로 돌아선 것 아닌가? 얼굴이 그렇게 변할 정도로 고생한 이야기를 그의 ‘작품마당’ 수필에서 찾았으나 볼 수 없었다. 허리 수술했다고 얼굴이 변할 리는 없고... 그 힘들다는 문협회장이야 맡은 지 두 달도 안되니 그 때문도 아닐 것…허나 수필에선 김시인이 문학을 하는 이유는 읽을 수 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만 늘어간다. 아직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내 고통과 숙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나의 방식을 찾아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철학으로, 혹은 사업으로, 또 어떤 이는 신에게 의지해서 풀어 나가려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나는 나와 관계를 갖고 있는 세계와 다른 사람에 대해 글을 쓰면서 나를 들여다보고 정리해보게 되었다. 이 글 쓰는 작업이 뚜렷한 해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손을 놓고 운명을 바라만 보고 있지 않고 그 운명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글을 쓰는 동안은 떠나간 어머니도 내 곁에 와서 내 등을 토닥여주고, 아버지도 웃음을 지으신다. 나는 영혼을 불러내는 심령술사가 되었으며, 깊은 상처도 아물게 하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의사가 되었다. 내 글이 독자의 가슴에 감동을 건네주었을 때 나는 독자의 가슴속에 나를 나무처럼 심어놓았다고 생각한다. 작가와 독자가 나누는 감동은 정신적인 일체감을 제공한다. 비록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독자들은 나에게 남아있으며 또 나는 독자들에게 남아있어서 외로움과 두려움의 시간을 함께 견뎌내기도 한다… ‘아내의 꿈’에서 그의 시를 다시 읽어가는 도중 그의 수필집 ’ LA에서 온 편지: 심심한 당신에게’ 가운데 나온 사연들이 그의 시에 다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김 시인을 평한 글 가운데 특히 다음 평에 동의한다. 그 밑바닥에는 삶의 연원이 되는 고통이나 절망, 혹은 핏줄의식 같은 것이 깔려 있지만, 일단은 소박한 일상의 매력이나 해학의 즐거움으로 읽힌다. 나는 이러한 시적 변용이 그의 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시에서 배운 바가 있다면 코메디언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웃어서 죽어버릴지라도 자신은 끝까지 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코메디가 단순한 코메디에 그치지 않고 삶의 뒤통수를 때리는 날카로뭉ㅁ으로 번득일 대까지 조급하지 않게 지켜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름을 숨기는 지혜로움과 지독하게 끈질긴 기다림의 명수가 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의 감취진 발톱을 현대시가 다시 찾아내 선보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원구식) 그렇다. 그의 창작마당에 실린 시들은 바람에 가벼이 날라가는 민들레 씨앗 같다. 유머와 기지로 웃음의 눈물을 퐁퐁 나오게 하기도 하고 오랜 기억 속의 아스래한 봄볕같이 슬픔의 눈물을 짜주기도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형님들의 웃음을 들을 수 있으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모습으로 자는 아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정말 시인이다. 왜냐하면 ‘시인은 시로 말한다’고 한 그의 시 제목처럼 그의 모든 삶과 사랑을 시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 김시인은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창작마당에는 ‘신문 읽어주는 예수’ 의 모든 시조를 비롯 (시조 시집) 그의 시조들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여러 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어서 필자가 자주 들리는 곳이다. 반 년 동안 한겨레 신문에 연재한 134편의 ‘시 이야기’ 또한 좋은 읽을 거리이다. 여러 시대의 시인들을 망라한 이 글에서 우리가 몰랐던 시인들을 접할 수 있다. 또 많은 미주 시인들도 만날 수 있다. 사족을 달면 김시인의 ‘시 이야기’에는 고씨들이 많다는 것이다. 흠-. 고 려속요, 고 시조, 고 시조, 고 현혜, 고 형열 등등. ‘나에 대한 평문 -손님 문학방’ 은 누구나 들려야 할 중요한 방이다. 그의 시와 수필에 대한 다른 문인들의 평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김시인의 삶을 여러 각도로 조명하는 이 평들을 통하여 그의 문학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컴뮤니티-목로주점의 ‘몽당연필’에 실린 칼럼들이나 ‘작가 갤러리’에 실린 사진들은 보지 못하면 후회할 것이다. 끝으로 그의 시조 하나 소개하면서 방문을 마치려 한다. 바람이 부는 날엔 새ㅡ 하고 노래하고 싶다. 오랫 동안 떠나지 않는 기억도 약속도 난분분 꽃잎 지는 틈타 함께 날려 보내고 싶다. 악물고 닫아 두었던 가슴을 열고 나면 한 마리 새가 되어 가벼워진 몸뚱아리 눈물도 묵은 한숨도 새- 하고 날아간다. <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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