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 알

2007.02.11 12:45

최영숙 조회 수:207 추천:48

날씨가 화창한 날 오후, 세 녀석들이 절 방문 했기에 쿠키 한주먹
움켜 쥐고 소풍을 나섰습니다.
늘 가보고 싶었던 뒷산이었는데-산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요,
나즈막한 언덕이라는 편이 맞을 것 같군요.
쟈켓을 허리에 묶고 또비, 떼리, 끼에로를 앞세우고 나선 길이었어요.
세 녀석들은 제가 가끔 던져 주는 과자에 시선을 고정 시키고 가다가
제가 서면 저희도 서고 그러면서 언덕을 하나 넘었습니다.
나중에는 녀석들이 먼저 지쳤는지 나무 그늘만 보면 기어들어가
쉬려고 하더라구요. 우습게 보고 나선 길이었는데 멀기도 했지만
언덕 꼭대기에서 독수리 떼를 만났어요. 솔개가 커서 독수리로 보였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녀석들이 갑자기 고도를 낮추며 저 있는 곳을 향해 몰려 왔어요.
저는 뒷걸음을 치면서 쟈켓을 풀러서 머리 위로 막 휘저어댔어요.
머리 끝이 쭈뼛하고, 순간이었지만 고대 마야 족들이 나무 사이에서 돌도끼 들고 뛰쳐 나오는 환상이 보일 정도로 놀랐답니다.
그러도록 세마리 경호원들은 땅만 내려다보며 냄새만 맡고 가고 있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끼에로가 낮은 포복으로 기더니 억새가 무성한 밭 속으로 총알같이 뛰어 들어가요. 두마리도 쏜살같이 달리구요.
그 앞에서 새들이 포르르 날아갔어요.
녀석들은 날아가는 새는 아랑곳도 안하고 풀숲을 미친 듯이 뒤져요.
알고보니 산새 알을 찾는 거였어요.
마야 템플은 저 산 뒤에 웅크리고 있고 독수리 떼는 머리 위를 맴돌고 있고, 썩은 나무 등걸만 남아있는 산자락에는 또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오후 햇살은 이제 산 꼭대기에서 옆으로 비껴가고 있는데 바람이 휘익 지나간 뒤에 앞을 보니까, 묘지가 가로막고 있네요.
무덤 위에 지어 놓은 파란 집, 분홍집, 하얀 집들이 얼마나 섬찟하던지요. 게다가 경호원들은 제 과자 다 빼앗아 먹고 산새알을 찾아 숲으로만 달리고. 야생하는 방법을 그렇게 체득 했나봐요. 불쌍한 산새알, 세상 빛도 못 본 채, 녀석들 목구멍 속으로 꿀꺽 넘어가다니....
돌아 가기에도 이미 멀어져서 나선 길이 후회 막심이었어요.
사방이 어둑해져가는데 사르비아 동네로 갈라지는 길에 들어서니까 세 녀석들이 그 길로 모두 냅다 달아나네요. 저녁 때가 되었으니 즈이들 집으로 가야겠지요. 그래도 절 버리고 가다니, 괘씸하잖아요.
전 돌아갈 길이 막막해서 잠시 서 있었어요. 하지만 빨리 나설수록
유리하겠지요. 맘을 다져 먹고 밭둑길로 들어섰어요. 부지런히 발을 옮기는데 후다닥 뒤에서 소리가 났어요. 어머! 세녀석들이 밭둑길로 나란히 일렬로 서서 절 따라 와요. 아마 아까는 제가 사르비아로 가는 줄 알고 신이나서 앞장 서 달려간 모양이예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옥수수 밭에서 길을 잃어버렸어요. 떼리가 헤치고 앞서 가다가 서서 절 기다리고 가다가 다시 서고 하길래 전 무조건 그 애 이름만 부르면서 쫓아갔어요. 그러다보니 저희 센터 건물이 저만큼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주 긴 하루였습니다.
언제고 이곳에 오시는 분이 계시면 이 코스를 관광 상품으로 증정하려고 합니다. 마야 유적지를 휘돌고 온 바람이 썩은 나무 등걸을 흔들어 대고 그 등걸에 걸려 있는 옷조각이 휘적거리면서 시야를 가로막는 폭풍의 언덕과 산새알을 찾아 낮은 포복으로 기어 다니는 세마리의 경호원을 패케지로 드립니다.  
특히 텍사스의 산안토니오에 계신 내외분께,"숙식은 무료제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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