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일지-발렌티어(4-13-04)

2004.04.13 06:50

조회 수:434 추천:30

제낄까? 말까?
아침부터 전쟁을 치르는 나는 아이들 학교를 데려다 주고 와서
좀 늘어지고 싶다는 꾀가 생긴다.
아직 여행의 피곤이 풀리지 않아 몸과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가기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슬기가 묻는다.
"엄마! 오늘 언제 올거야."
한달에 한 번 슬기 교실에 가서 일하는 거-
그것처럼 슬기를 기쁘게 해 주는것은 없나보다.
지난 달엔 걸스카웃 쿠키를 픽업하느냐고 못 갔더니 두고두고
잔소리(?)를 하는것이 아닌가.
그래 봉사도 약속인데 가야지.
"엄마가 한 열시즈음 갈께.."
"그렇게 늦게?"
"너희들 다 데려다 주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그리고 정신좀 들고 가야지.."
"엄마. 선생님 커피도 사 와."
"그래.."
아이들을 다 데려다 주고 커피를 한 잔 다 마셔도 난 아직도
꿈속을 걷듯 허우적 거리다 부엌 테이블엔 있는 누런 봉투를 갸우뜽 하며 열어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 안엔 슬기 반 아이들이 보내온 "탱큐 카드"가 가득 담겨 있었다.
"미세스 홍, 한국에 대해서 가르쳐 주어서 고마워요."
"시를 쓰는 법을 가르쳐 주어서 감사해요."
"우리 교실 달력을 만들어 주어서 감사해요."
"한국음식을 다 가져 오셔서 맛보여 주셔서 감사해요.
꼭 파아티 하는 것 같았어요."
난 갑자기 에너지가 생기면서 분주히 움직이게 되었다.
아이들 간식으로 쿠키를 담고(이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인기 짱)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김도 담는다.
내가 조금안 수고하면 아이들이 저리 기뻐 하는데...
서둘러 오피스에 들려 바란티어 명찰을 달고 바삐 슬기 교실에 들어 서려는데 문이 안에서 빠꼼히 열린다.
엄마가 언제 오나 목을 빼고 기다리던 슬기가 밖에서 걸어 오는 엄마의 소리를 듣고 문을 여는 것이 아닌가.
아 그 뿌뜻함..
선생님도 기쁘게 나를 맞으신다.
"이건 아이들 간식이고, 이건 김인데 선생님 가져가서 드세요."
나이어린 선생님도 조그마한 선물을 받고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자, 무얼 도아 줄까요?"
"저기 교실 달력을 만들어 주시면 안될까요?"
그냥 하얀 종이에 까만 숯자를 쓴 4월의 달력을 바라보며 선생님이 무안한듯 얼굴이 빠알게 진다.
내가 매달 와서 다음 달 달력을 컨셉에 맞게 미리 만들어 놓는데
지닌 달 오지 못해서 선생님이 간단하게 만들어 붙여 놓은 것 이였다.

나는 씨익 웃으며 'Working Room"에 가서 예쁜 5월의 꽃 달력을 만드는데 두 시간이나 하례했다.
그리고 교실에 돌아오니 슬기가 선생님께 뭘 물어 보는 중이였다.
"이제 다음 달에 와서 나머지 달력 만들어 줄께요." 하고 나오려는
데 슬기가, "Ms. JB, 아침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울 엄마한테 말씀해 주실래요."라고 부탁한다.
미스 JB는 싱긋 웃으며, "그래." 하며 귓속 말로 속삭인다.
"한 학생이 책을 안 가져와서 옆에 있는 학생한테 같이 보라니까 싫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슬기가 얼른 그 애 옆에 가서, "나랑 같이 봐." 하는거 아니겠어요.
아 그 모먼트..참 기특했어요. 그래서 제가 칭찬 했어요."
선생님이 엄마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 알고 있는 슬기는
좋아 어쩔 줄 몰라 표정관리가 잘 안되고 있다.
엄마로서도 이럴 땐 표정관리가 잘 안된다.
예쁜 슬기..
"엄마 간다." 눈으로 인사하고 나는 따뜻한 봄 해살에 어쩔 줄 모르며 피어나는 진달래 처럼 환희 웃으며 아이의 학교를 걸어 나온다.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4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