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지 (따뜻한 아침밥..)

2003.09.22 03:42

조회 수:465 추천:27

"새벽 여섯시에 알람 마쳐줘요."
어제 남편에게 부탁했다.
"왜?" 여섯시 사십 오분에 일어나 준비하면 시간이 충분하다는 걸 아는 남편이 묻는다.
"새벽에 밥해야 해요. 그리고 내가 더 일찍 일어나야 여유가 생겨서.."
오늘 나는 여섯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 났다.
아직도 고장난 알람처럼 한 밤중에 징징 거리는 인기 땜에..
우는 아이를 다둑거려 재우고 살며시 빠져 나와
설설 쌀을 씻는다.
빡빡 씻으면 영양가가 빠져 나갈까봐..
엄마의 빈자리를 의식한 아이가 다시 깨어 울어 그 옆에 가서 살며시 누워 있는데, 언제나 눈 뜨자 마자, "엄마 ! TV조금만 봐도 돼요." 라고 묻는 둘째가 똑같은 질문을 한다.
"안돼지."나도 매일 똑같이 답한다.
"대신 토요일하고 일요일은 좀 볼 수있어."
"오는 토요일 아니예요?"
"월요일 이야.."
TV를 못 봐 좀 실망한 아이는 고개를 쪼금 비딱하게 기울이고
나가 책을 뒤적인다.
"쿡 쿡" 나는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엽다는 말처럼
그 쬐금 삐진 모습도 귀엽다.
자리에서 일어나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다.
클래식이 아이들 성장에 좋다기에..
모짜르트가 좋다는데
우선 섞어 클래식으로..
"엄마! 전 2번이 좋아요."
아이가 2번을 들으며 아주 훌륭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준기야! 밥 먹을래..김이랑"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에게 막 지은 밥 한 그릇을 떠주고
아이들 도시락을 싸주기 시작한다.
"엄마! 오늘은 뭐싸요? 엄마가 싸 주고 싶은 거 다 싸주어도 되는데, 바나나는 싫어요."
"그래 바나나는 안 넣을께."
세 아이 먹는게 다 틀려 도시락도 다 틀리게 싸야 한다.
그래도 그 걸 먹을 아이를 생각하며 열심히 싸면
마음이 흐믓해진다.

아이가 열심히 아침을 먹는다.
어제 랍스터 훼스트벌에 가서 그런건 전혀 먹지 않는 아이라 칩만 조금 먹은 아이가 잘 때 중얼거렸다.
"아이고 배고파. 랍스터가 디너인지 누가 알았어. 밥 한그릇 먹었으면 좋겠네."
밥 한그릇을 뚝딱 먹은 아이에게 학교 갈 준비를 하라하고
슬기를 깨운다.
슬기는 계란에다 밥을 솔솔 볶아 간장을 한 방울 떨어트려
깨소금을 뿌려준다.
맛있다며 졸리다던 눈이 커진다.
밤새 나를 잠 못자게 뒤치덕 거리던 인기는 쿨쿨 자다 일어나
버터에다 간장 한 방울 넣어 비빈 밥을 오물오물 받아 먹는데
그 앙징맞은 입이 귀여워 물어주고 싶다.
그렇게 따뜻한 밥을 먹이니 내 배가 부른 것 같다.
아 그래서 추운 겨울엔 엄마가 유독 밥그릇을 들고 쫒아 다니면서, "한 숟가락만..한 숟가락만.." 애원하면서 먹이 셨구나.
그래도 난 매몰차게, "싫어! 안 먹어!" 그러면서 머리 비뚤어 졌다고 다시 따라고 신경질만 부렸는데...
그 때 지금처럼 좀 알았다면, "엄마 맛있다 맛있어 하며 먹었을 텐데..미안 엄마!"
아이들을 각 자 학교에 떨구는데, 왠지 오늘은 뜨뜻한 밥 한그릇씩 먹여서인지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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