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북클럽

2007.03.14 16:46

고현혜(타냐) 조회 수:876 추천:68

이메일을 여니, 지난 주 북클럽 사회를 본 안드레에게서 초록빛 글씨로 편지가 와 있었다. "지난주 북클럽 모임에 전 참 좋은 시간을 가졌어요. 중국 문화를 알려준 타냐에게 너무 고마워요.다음번 읽을 책은.." 북클럽이 끝나면 이렇게 그날 호스트한 사람이 다음번 책을 이메일로 보낸다.

동네 엄마들끼리 하는 우리 북클럽은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간다.아이들을 키우며 친해진 미국엄마들이 우리도 자신을 위해 뭔가 좀 하자며 시작됐다.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에서 잠시 벗어나 책 한권을 들고 둘러앉은 우리의 볼이 발그랗게 상기됐다. 목요일 저녁 7시, 가정을 빠져나와 이렇게 앉아있는 것만으로 뭔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모임에서 우리는 돌아가면서 호스트를 하기로 하고 그 사람이 간식을 마련하자고 했다.한번은 바닷가에서 '파자마 파티'를 했다. 소설 내용에 맞추기위해 모두 파자마를 입자고 했더니 모두 좋다며 입고 왔다. 바닷가에서 파자마를 입고 모닥불 앞에서 메시멜로 굽는 아줌마들. 모닥불 앞에 둘러 앉은 우리는 북클럽을 통해 몇년 동안 손에 잡지 않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또 아이들이 북클럽에 가는 엄마에게 이번에 읽는 책이 뭐냐며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 남편들은 그 날만은 일찍 들어와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해결 하면서 공부(?)하겠다는 아내를 말없이 보내줘 고맙다는 얘기들도 했다.

지난번 모임에서 우리는 '소녀와 비밀부채(Snow Flowers and Secret Fan)를 읽기로 하고 중국음식을 하나씩 가지고 와서 저녁식사도 함께 하자고 했다.
작가인 리사 시(Lisa See)는 이 소설을 통해 19세기의 중국여성들의 은둔된 삶의 방문을 열어 보여 주었다. 그저 어린 여자아이의 발을 싸매는 것이라고 생각한 전족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이번에 나도 알게 됐다.6세를 전후한 여자아이의 발을 엄지 발가락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하나씩 부러뜨려 발의 크기를 7cm-10cm로 만든다고 한다. 그 모양이 어떤가 인터넷으로 찾아 사진을 보고 기겁을 했다. 연꽃처럼 아름답다고 한 이 괴상한 발을 만들기 위해 10%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또 많은 경우 불구가 된다니. 전족을 하는 이유는 여자들이 도망못가고 성의 노예로 쓰기위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아뭏든 딸이 보다 나은 가문에 시집가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는 딸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그 어린 발가락을 꺾는 것이다. 평생 딸과 함께 하지 못함을 아는 엄마들은 딸에게 라오통(laotongs)을 맺어준다. 이 말은"늙을 때까지 함께"라는 뜻으로 전족을 한 두 소녀를 친구로 맺게해 서로 죽을때 까지 우정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아마 자유롭지 못하고 억압된 여성의 삶,혼자만 애타하지 말고 친구와 의사소통으로 고통을 덜라는 성숙한 여인들의 지혜였다고 생각된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들이 바로 그들만의 문자, 누슈(nu shu)를 부채에 써서 서신 교환을 했는데 남자들은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날 나는 중국인 친구가 빌려준 중국의상을 입고 전족그림도 프린트해 갔다. 그래서 안드레가 중국문화를 알려줘 고맙다고 한 것이다.

그날 우리는 그녀가 빨간 부채까지 사다 예쁘게 장식해 놓은 동양식 테이블에서 가져온 중국음식을 나누며 우리의 모임이 바로 21세기의 라오통 같은 것이 아닐까 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크지만 튼튼한 우리의 발이 우리의 행운이라는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07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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