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2007.07.25 23:19

고현혜(타냐) 조회 수:754 추천:57

아이들이 졸업한 프리스쿨 미국엄마들이 함께 가족 캠핑을 떠나자는 제의가 들어 왔을때 망설여 졌다. 지난 4월에 컵스카웃 캠핑을 따라 갔다가 추워서 밤새 고생한 기억과 캠핑의  불편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아이들이 자연속에서 하루종일 신나게 뛰어 놀며 밤이면 군소리없이 슬링픽 백에 들어가 쿨쿨 코를 골며 자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가자는 결정을 내렸다.

장소는 세코야 팍이고 수요일에 떠나는데  남편들은 금요일에 일을 일찍 마치고 카풀을 해서 올라오면 된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없으면 누가 텐트를 치냐?고 걱정했더니 미국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케익 먹기 보다 쉽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여러가족의 캠핑준비는 척척 진행이 되었다. 수요일엔 선두대 엄마들이 11명의 꼬마들을 데리고 모든 짐을 실고 떠났고, 목요일에 내가 썸머스쿨 끝낸 아이들을 픽업해서 떠나기로 했다.

셀루로폰이 연결이 되지 않아 나는 전 날 떠난 여섯 살짜리 막내가 잘 도착했는지 연락을 받지 못했지만 걱정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동안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가 서로의 아이들을 사랑과 책임으로 돌보고 있으리라 알기 때문이다.

세코야팍은 몇 번 갔었지만 이번에 가는 캠핑장소는 처음 가는 곳이기 때문에 초행길 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다. 후리웨이를 한 번 잘못들고 츄레픽에 밀리다 보니 예상 도착시간보다 늦어졌다.

연락할 방법도 없어 모두들 걱정하겠구나 하며 걱정을 하며 도착하니 모두들 평화롭게 앉아 담소하며 밥과 아이들이 잡은 생선을 손질해 요리해놓고 그날의 주메뉴인 갈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머무는 캠핑장소는 요정들이 살고있는 숲속 같았다.

이끼 가득낀 나무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레이디버그가 있었고 계곡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손으로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웅장한 나무사이에 세워져 있는 텐트는 작은 오막집 같이 정겨워 보였고, 어느새 맨발로 바위사이를 깡충깡충 뛰어 다니는 아이들은 산사람들이 다 된것 같았다.

아이들 얼굴은 흙으로 뒤덮혀 두 눈만 빼꼼한데도 엄마들 누구도 닦아주려 하지 않았다.

어느날은 사슴 한마리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내려와 잠시 머물다 유유히 사라지기도 했다.

어둠이 내리면서 모두 캠프파이어에 둘러 앉아 캠프송을 부르기도 하고 칭얼 거리는 아이들을 달래기도 하고 말 안듣는 아이는 타임 아웃도 시키면서 바나나속에 초코렛을 넣어 은박지로 싸서 구어먹은 맛은 일품이였다.

작은 텐트속에 에어메츄레스를 펴고 너무 좁아 아이들이 움직일때 마다 잠을 설치면서도 어둠과 고요속에 마시는 밤공기가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다.

날이 밝아지기도 전에 아이들은 일어나 배고프다고 칭얼 거렸다.
산 속에서 퍼지는 고소한 베이컨 냄새, 굽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달려와 집어가 버리는 팬 케익, 비몽사몽한 가운데 마시는 커피, 아 이 맛, 이 느낌이라며 엄마들은 아침 커피잔을 부딪치며 해마다 꼭 캠핑을 오자고 약속했다.

아침을 먹은 아이들은 낚시를 한다고 조르르 사라지고,
뒤늦게 올라온 남편들도 셀폰도 안되고 급하다고 다시 내려 갈 수 없음을 알고 뜨거운 태양아래 어쩔수 없이 웃통을 벗고 강가로 뛰어 들었다. 자연속에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모든 사람들은 모습은 여유로워보였다.

막상 해보니까 별로 어렵지 않은 여름캠핑이였다. 조금 애쓰면 다음엔 혼자서도 텐트를 칠수 있을 것 같았고 경비도 다른 여행보다 저렴하다. 상대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름이 한창이다. 이번 여름 방학땐 망설이느라고 떠나지 못한 캠핑을 떠나 볼 것을 권한다. 하루쯤 자연 속에서 휴식하며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을 가져보길 바란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07년 7월 25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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