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꼭대기 옥탑 방

2010.11.13 16:04

강성재 조회 수:821 추천:199

야채장사 사내의 목청 좋은 소리가 단잠을 깨우고
병정놀이 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골목 누벼도
하늘이 너무 가까워 하늘 먼저 본다
발 밑에는 미로처럼 얽힌 사람의 골목이 있고
머리에는 그 보다 더 복잡한 하늘의 골목이 있다

번지수도 없는 주소를 우체부가 찾아 가고 있었다
골목의 어디쯤 임종을 앞둔 노인이
오지도 않는 편지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말라버린 우물에 물을 긷기 위해 여자들이 몰려 갔고
사내들이 길바닥에 앉아 내기 장기를 두고 있었다
술에 취해 전봇대에 오줌을 갈기는 사람도 있다
연탄 실은 손수레가 힘겹게 언덕을 오르고 있었고
아이들이 검은 재를 날리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연탄재 날리는 골목이 왜 검은지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잘못 나온 반달이 부끄러운 낯빛을
언덕 너머로 숨기고

숨 쉬는 것들은 모두 가면을 쓴다
영롱한 눈빛이 언덕을 오르는 동안 몽롱 해 졌다
날마다 깎아 내려도 작아지지 않는 언덕
어둠이 내리면 저 혼자 흔들리던 불빛 속으로
피곤한 몸들이 채워질 것이다

빨래 줄에 매달린 빈 옷들이 사냥을 한다
걸리는 건 날마다 별을 땄다는 뜬 소문뿐
바빠져야 한다
바람도  길을 잃는 산 꼭대기 골목길
빈 빨래에 낚이는 별이고 싶지 않다

서두르다
비틀,
햇살에 걸려 넘어진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0 아내의 기도 제목 강성재 2013.10.16 8035
259 님이시여 이제 영원히 평안 하소서 [1] 강성재 2011.06.22 977
258 막차 [4] 강성재 2010.02.07 941
257 비망록 2010 [2] 강성재 2010.11.14 926
256 바다여 강성재 2009.10.11 922
255 빈집 5 강성재 2011.03.09 920
254 바람소리에 강성재 2011.02.18 899
253 그대앞에서 강성재 2009.10.14 899
252 내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 강성재 2009.12.29 826
» 산 꼭대기 옥탑 방 강성재 2010.11.13 821
250 심산계곡에 집 한 채 짓고 강성재 2010.08.19 803
249 칼슨(Carson)의 겨울 강성재 2010.11.13 788
248 막걸리가 마시고 싶다 [2] 강성재 2012.10.11 781
247 아내 생일날 [3] 강성재 2010.06.14 773
246 봄, 또 이렇게 강성재 2011.02.18 763
245 여우비 내리던 날 [1] 강성재 2010.09.17 760
244 빈집 4 강성재 2010.10.10 733
243 인생 강성재 2010.08.21 726
242 13월의 산책 [2] 강성재 2009.12.21 724
241 가을날 강성재 2010.09.18 718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8.05

오늘:
0
어제:
0
전체:
48,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