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겨울

2008.01.09 13:15

강성재 조회 수:532 추천:170

다시 겨울이 왔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 누가 겨울을 두려워 하랴
한때 우리의 가슴을 멍들게 하던 겨울,가난의 무게 때문에 더욱 춥고
두려웠던 겨울, 내의 하나 장만 하는 것에서 부터 연탄가스 새는 방으로
부터의 탈출을 평생의 꿈처럼 보듬고 사시던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지금 우리에게 그런 겨울은 없다.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런 겨울을 우리 생활에서 삭제한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살얼음 서걱거리는 이른 새벽의 세숫대야나 문풍지
찢어지도록 틈새를 비집고 들어 오는 찬바람의 대단함을 알지 못한다
나는 겨울 연탄 준비에 허리 휘어지게 일하지 않아도 되고
나의 아내는 김장 걱정을 전혀 하지 않으며 나의 어머니가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처마밑에 호박,무우말랭이,시레기를 주렁주렁 달아 놓지않는다 베란다의 화초들은 낙엽 만드는 방법을 잊어 버렸고 식품점에서는 한겨울에도
싱싱한 과일과 채소들을 만날 수 있다.
참으로 축복이며 자랑스런 일이다

나의 어린시절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그때라고 해서 지금보다 더
추웠다거나 기온이 더 낮았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이다.다만 입성이
시원치 않았고 몸에 기름기가 없어서 더 추웠을 것이다.너나 없이 가난 했고
살기가 힘들었던 그 시절 산동네 판자촌에서는 어김없이 몇명씩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어 나가거나 병원신세를 졌다. 나의 아버지는 추위가 닥치기
전에 방구둘을 손질 하는것이 연중의 가장 중요한 일이였었고 어머니는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의 겨울옷 장만에 손이 쉬는 날이 없었다. 아들로 막내였던 나는 언제나 위의 두 형들이 입던 옷을 물려 받아 입어야 했었는데
그것이 늘 불만이여서 새옷 사달라고 조르다가 어머니의 회초리를 맞은 기억도 있다. 지금 내가 그때의 아버지 어머니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생각
해 보니 때를 쓰는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종아리를
맞는 나 보다 더 아팠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가슴 아픈 추억 보다는 신나고 즐거웠던 추억들이 더 가슴을 설레게
하고 흐믓한 미소를 짓게 한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다 떨어진 벙어리
장갑을 끼고서 눈사람을 만들고 온 동네 아이들이랑 편을 갈라서 눈싸움을
하고 얼어 붙은 논에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다가 해질녘에야 오들오들 떨면서 집에 뛰어 들어 오면 담요로 살짝 보온을 하고 있는 아랫목의 따스한
온기라니….




우리의 일상에서 삭제된 겨울은 분명 축복받을 일이고 풍요한 삶의 한 지수 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진정 두려운 것은 가난을 모르고, 세상의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는 우리의 아이들이 그 풍요와 안일에 안주하여 아직도 우리의
주변에 너무나 많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세상은 공평 한듯 하면서도 또 일면 대단히 불공평하다.
풍요라는 것이 만인에게 모두 해당되는 축복일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풍요로운 나의 일상 저 너머에는 한끼의 식사를 걱정하고 불기없는 냉방에서 추위에 떨며 한겨울을 보내는 이웃들도 있다는 것을 우리의 아이들이 알아야 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너나 없이 가난 했지만 오늘의 우리 이웃들은 너나없이 풍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산꼭데기 고지대에서는 연탄 한장을
걱정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하루하루를 불안 하게 사는 사람들
또한 많다.이들에게도 우리의 풍요, 우리의 삭제된 겨울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 그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한 삶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이
피와 땀으로 만들어 놓은 것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뿐만아니라 내 이웃의 불행과 슬픔에도 눈을 돌리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해야한다. 내가 가진것이니까
모두 내것이라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라도 갖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한다. 서로가 나누어 가질 수 있고 도와 주는 겨울, 그럴때에 우리는 비로소 삭제된 겨울의 축복을, 애틋하게 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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