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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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그 숲속의 둥지

2007.01.22 12:06

윤금숙 조회 수:805 추천:60

“언니 혼자 오는 거야? 형부는?”
  “물론 나 혼자 가는 거지.”
  “언니, 그동안 힘들게 지냈잖아. 이제는 훌훌 털어버려, 세상 살면 얼마나 산다고 지지고 볶고 살아, 제발 앞으로는 언니도 나처럼 심풀하게 살라고, 알았지!”
  나보다 열 살이 아래인 여동생 영주는 톡톡 튀는 소리로 거침없이 자기 얘기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삼 년 만에 나는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를 뵈러 간다.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셔 집 안에 들어 앉으신 지 일 년이 넘었다. 할 수만 있다면 몇 년 전에 어머니와 갔었던 수안보 온천에 다시 가보고 싶다. 그 앞에 초라했던 식당은 여전히 그대로 있을까. 그곳에서 먹었던 떫은 도토리 묵, 강판에 간 칡뿌리의 쌉쓰름했던 맛. 칡뿌리 진액 한 모금을 입 안에 물고 우물거리다 어머니의 연보라색 치마에다 분무처럼 불어 버렸던 일.  
  어머니...
  그리움이 봄 아지랑이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몽글몽글 피어났다. 숨막히게 답답했던 겨울을 털어버리고 나는 내일 어머니에게로 달려 갈 것이다.  
  나는 딸, 재희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재희를 못 볼 것 같아 오늘 저녁은 재희랑 단 둘이 저녁 시간을 갖기로 했었다. 말리브 해변에 있는 멋진 레스토랑에 저녁 예약을 해놓았고 영화를 한 편 보기로 스케줄을 잡았다. 오랜 만에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후 다섯 시, 재희한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삼십 분을 더 기다리고 나니 안달이 났다. 나는 재희의 셀폰에 전화를 했지만 음성 메시지만 나왔다.
  저녁 일곱 시가 다 되가는 데도 온다간다 전화 한통이 없었다. 화가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수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놓고 몇 번을 반복하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재희에게 전화를 했다.
  “얘, 재희야, 어디 있는 거야? 지금까지 왜 전화를 안 했어? 엄마가 내일 떠난다는 거 알고 있기는 한 거야?”
  나는 궁금했던 시간들을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러는데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핼로우! 재희야, 듣는 거야?”
  “엄-마! 나...”
  재희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갑자기 고막을 때리듯 폭탄처럼 터졌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머리 끝이 위로 솟구치며 온 몸이 감전된 듯 조여들었다.
  “재희야! 무슨 일이야? 빨리 말해봐, 엉!”
  “엄마! 엄마, 내가 암에 걸렸대.”
  “뭐! 뭐라고? 암이라고! 암, 네가 무슨 암에 걸렸대? 암이 뭐야!”
  들고 있던 커피 잔이 바닥에 떨어졌다. 뜨거운 커피가 쏟아지면서 유리 조각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튀었다. 발등에서 피가 흘렀다. 나는 타일 바닥에 핏자국을 내며 정신없이 우왕좌왕했다.
  “웬 일이야! 무슨 일이야?”
  남편이 퇴근해서 집 안으로 들어오다 나를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재, 재희가 암에 걸렸대요! 어떻게? 이제 우린 어떡해요?”
  나는 그 동안 남편과 꼭 할 말만 하고 살았다는 것을 순간 잊어버렸다. 어쩔 수없이 자식의 일을 말 할 상대는 남편밖에 없었다. 나는 재희와 사위인 에릭을 기다리기 위해 대문 밖으로 나갔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재희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주위를 무작정 빙빙 돌았다. 앞집 남자가 터질듯한 배를 내밀고 개에 이끌려 걸어가며 “하이! 미세스 박!”했다. 나는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고 손도 흔들지 않았다. 나는 그를 전혀 낯선 사람처럼 멀뚱하게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모퉁이로 숨어버렸다.  
  재희는 퉁퉁부은 눈으로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나도 재희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아파왔다.
  “재희야! 네 잘못 아니야! 다 엄마 잘못이야. 내가 그동안 너를 너무 힘들게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미안해! 미안해, 재희야! 엄마가 잘못 했어. 정말 미안해.”
  재희는 도리질을 하며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엄마! 아니야, 나 괜찮을 거야. 괜찮아, 엄마는 내일 예정대로 할머니한테 가. 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잖아. 나는 괜찮아, 엄마! 내일 떠나. 그래야 내 마음이 더 편해.”
  재희와 나는 말을 하고 또 부둥켜 안고 울었다.
  “재희야! 그만 울자! 너는 참아 낼 수 있어. 그럼, 할 수 있고 말고.”
  “나는 엄마가 더 걱정 돼! 내 걱정은 하지마! 나, 잘 이겨낼 거야.”
  절대로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는 재희를 다독거렸다. 나는 재희의 어깨를 껴안다시피 감싸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에릭은 사색이 된 얼굴로 앉아 있었고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우리를 제대로 보지를 못했다.
  “아빠! 미안해!”
  재희는 아빠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너는 젊고 할 일이 많아, 마음 단단히 먹고 꼭 낫는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해. 알았지!”
  아빠의 말에 재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물을 닦았다. 에릭이 병물을 가져와 컵에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한 컵씩 마시게 했다.
  나는 에릭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에릭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어머니!”하고 눈물을 손등으로 쓱 문질렀다. 에릭은 결혼한 후 처음으로 나를 ‘어머니’라고 한국말로 불렀다. 그러는 에릭에게 새로운 정이 갔고 큰 의지가 되었다.
  “어머니! 내일 예정대로 한국에 가세요. 나의 어머니가 내일 쉬카고에서 오신다고 했어요.”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께. 걱정하지 마.”
  한국에 전화를 해서 동생한테 모든 것을 취소하고 어머니한테는 적당히 핑계를 대라고 일렀다.
  재희는 우리 집에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에릭을 시켜 잠옷 등을 가져오게 했다. 밤 열 두시까지 재희 방에서는 도란도란 소리가 났다. 오래 전부터 각 방을 쓰는 남편의 방에도 새벽녘까지 불이 켜져있었다. 나 또한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천장이 내려앉을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암이라니! 왜 암에 걸렸을까? 재희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 내가 재희를 너무 힘들게 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암이 생긴 것은 아닐까.
  재희가 결혼을 한 후 남편과 나 사이에 연결된 다리가 끊어져버렸다는 사실을 나는 절감했다. 할 말이 더 이상 없었다. 그는 모든 경제적인 문제를 혼자서 처리 했고 나 또한 그에게서 돈을 요구할 필요도 없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산에 대해 그는 내게 대놓고 불만을 터뜨렸다. 남편은 내가 친정에서 받은 돈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재희 결혼에 한푼도 내놓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와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엄마!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 내 걱정하지 말고 엄마만 생각해.’아빠와 헤어질 준비를 해야 되겠다고 했을 때 재희가 나를 이렇게 위로했다.  
  
  “아니! 내 딸은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자궁암이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
  나는 의사가 오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담당의사에게 항의를 했다.
  “검사를 더 정밀하게 하기 위해 조직을 UCLA 병원으로 보냈으니 연락이 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집안에는 암에 걸린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단 말예요. 내가 알기로는 암은 집안 내력이라고 들었는데...... 말이 안 되잖아요! 내 딸은 겨우 스믈여덟이라고요.”
  나는 의사에게 억지를 쓰다시피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며 대들었다. 그는 나를 딱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엄마,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짧은 영어로 한 말을 또 하고 따지듯 말하고 있는 엄마가 못마땅하다는 듯 재희는 화를 벌컥 냈다. 에릭이 재희의 어깨를 다독 거렸다.
  “자궁경부암은 유전이 아닙니다. 인유두종 바이러스 감염 때문이죠. 조만간 예방백신이 개발되어 예방을 하게 될 겁니다. 수술을 해서 자궁만을 들어내고 가능하면 나팔관은 살려두려고 합니다. 암의 진전에 따라 방사선이나 항암 치료를 할 거구요.”
  의사는 학생에게 설명하듯 자세하게 말했다. 의사의 말을 들었지만 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뭔지 왜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단지 재희가 끔찍한 암에 걸렸다는 사실만이 청천벽력처럼 내 가슴을 때렸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재희에게 다른 의사한테 재 검진을 받아보자고 다시 권유해봤다. 그러나 재희는 조직검사 결과는 어느 곳에서 해도 마찬가지라며 내 의견을 묵살해버렸다. 재희와 나는 옥신각신 한바탕 의견 충돌울 했다. 주관이 강한 재희는 수술에 권위가 있는 타레스라는 의사가 마음에 든다며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에릭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나는 에릭이 미국 사람이라는 것에 반기를 들고 재희와 싸웠다. 에릭이 미국 사람이라는 것이 무조건 싫었다. 재희는 서로 사랑하면 됐지 뭘 따지느냐며 지지 않고 대들었다. 재희는 자라면서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나는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아빠하고 문제도 엄마가 너무 자존심만 내세우는 거 알어! 물론 아빠가 돈에 대해 지나치게 인색하다는 거 인정해.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 내가 볼 때 두 사람이 다 똑 같다구.”
  재희와 나는 안 해야 될 말까지 끄집어내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나중에는 재희가 내게 위선자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 며칠 동안 자리에 누워 데모를 했지만 결과는 애초부터 내가 지는 싸움이었다. 그때도 남편은 전혀 내 편이 돼 주지 않았다.
  그런 일들이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두 번째 조직검사 결과도 암이라고 나와 수술을 하게 되면 어쩌나,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자궁을 제거하면 어쩌나.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무섭고 두려웠다. 서로가 기다림의 힘든 시간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나는 재희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었다. 다행히 재희는 어려서부터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공부도 잘 했고 성격도 좋았다. 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단정했다. 신기하게도 친정 아버지를 닮은 재희가 자랑스러웠다.
  의과대학에 원서를 내놓고 기다리는 동안 재희는 직장에 다녔다. 그 때 그곳에서 에릭을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재희는 내 계획대로 의과대학에 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조직검사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재희 앞에서 나는 시커멓게 타는 속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해야 했다. 웃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천연덕스럽게 짓기도 했다.
  일주일 만에 의사한테서 연락이 왔다. 검사결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쁘니 급히 수술을 하자는 것이었다. 수술 날짜가 이틀 후로 잡혔다.    
  수술하는 날 새벽 네 시 반에 집을 나섰다. 남편은 우리가 떠나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곧 뒤따라 가겠다고 재희한테 말했다. 나는 재희와 에릭을 뒷좌석에 태우고 새벽을 가르며 병원으로 향했다. 죽은 도시처럼 인적도 차도 없는 컴컴한 길에 신호등만 느릿느릿 색깔을 바꾸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 운전대를 꽉 붙잡고 눈을 부릅떠 앞만 바라보았다.
  다섯 시, 밤을 세운 사무원은 입원 수속을 마냥 끌었다. 남편은 언제 왔는지 에릭의 옆에 서 있었다. 그가 생각보다 빨리 와 있다는 것이 약간은 든든했다. 재희의 결혼식장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가족의 소중함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았다.  
  일곱 시 정각에 딸을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수술실 문이 닫혀버리는 순간 내 심장의 박동이 잠시 멎는 듯했다. 뛰어들어가 수술현장을 지켜 볼 수만 있다면, 내 심장에 불덩이를 안겨 준 믿기지 않는 암 덩어리의 존재를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서 저주하고 싶었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사월의 하늘은 아직도 아침의 찬 공기를 머금은 채 부옇게 열리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의 얼굴이 갑짜기 떠올랐다. 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어머니께 동생은 뭐라고 변명을 했을까. 재희가 완쾌될 때까지 절대로 어머니에게는 알릴 수 없다.  
  오전 열 시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 초침만 숨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병원 대기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초조하게 훔쳐 봤다. 벽시계와 마주하고 앉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눈을 그 시계에 박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내 신경은 보이지 않는 끈이 잡아채는 것처럼 벽시계로 빨려들었다.
  세 시간 정도 걸린다던 수술이 삼십 분이나 더 지났다. 그 삼십 분은 내게 세 시간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작년 여름이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수술이라며 웃고 들어갔던 친구의 남편은 마취에서 못 깨어나 시체로 실려 나왔다. 온갖 방정 맞은 생각이 들면서 차츰 뷸안해졌다.
  남편도 대기실 불편한 의자에 몸을 푹 박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도 벽에 있었다. 그와 나는 의식적으로 서로의 눈을 피했다. 에릭은 우리 주위를 산만한 아이처럼 쉴 사이 없이 왔다갔다했다. 에릭과 나는 벽시계를 쳐다보다가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섬뜩 놀라 각자의 시선을 제빨리 거두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숨막히는 분위기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부터 내 방광은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다. 아랫배가 묵지근해 화장실을 들락거렸지만 소변이 시원치가 않았다. 소변을 못 본다 해도 딸의 엄청난 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문득 크란베리 쥬스를 마셔야 된다는 의사의 말이 떠오르자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하듯 고개를 흔들어 지워버렸다. 나는 지금 딸보다 내 몸이 더 건강하다는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내 몸을 학대함으로 조금이라도 딸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눈을 찬물로 몇 번 씻어냈다. 핏발이 선 눈이 조금 시원해졌다. 뿌옇게 흐려진 거울 속에서 아슴푸레 웃고 있는 딸의 애잔한 얼굴이 다가왔다.
  재희가 차라리 ‘엄마! 나, 정말 무서워. 억울해, 왜 내가 암에 걸려야 해!’하고 내게 매달리며 푸념이라도 했으면 더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꼭 나을 거야.’나는 자신이 있는 것처럼 큰소리를 쳤지만 요란한 괭과리에 불과했다. 괭과리가 울리고 난 다음 공허가 무섭게 내게 밀려왔다. 심장이 조여오고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열 시 반이 되어 푸른색 수술복에 마스크와 모자로 뒤덮인 두 의사가 눈만 빠끔히 내놓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달나라에서 방금 도착한 우주인들처럼 낯설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밖으로 나갔다.
  유리창을 통해서는 그들의 얼굴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남편과 에릭이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지만 두 의사들은 주로 에릭과 대화를 했다. 이런 때는 에릭이 보호자라는 것이 든든하고 의지가 되었다.
  나는 의사와 에릭의 얼굴 표정을 쉴 사이 없이 살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드디어 사위는 긴장한 남편과는 달리 밝은 표정으로 의사들과 악수를 했다. 나는 웃는 에릭의 얼굴에서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의사가 들어가고 난 다음에야 에릭은 나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남편은 자기가 앉았던 의자에 몸을 덜퍼덕 부렸고 에릭은 잰걸음으로 내게 왔다. 그는 파란눈을 반짝이며 의사의 말을 나에게 전했다.
  “어머니! 에브리씽 이스 오케이.”
  나는 혀가 움직이지 않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 안에는 침이 고이지 않아 입술까지 타 들어갔다. 나는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에릭은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마치 큰 실언을 해서 내가 주저앉는 줄 알고 당황해 했다. 몸이 움추러들며 떨렸다.
  내 손에 에릭이 물병을 들려줬다. 아직은 안심을 할 때가 아니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재희의 얼굴을 볼 때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에릭은 내 어깨를 감싸안고 의자에까지 데려와 앉혀줬다. 나는  에릭의 어깨에라도 기대고 싶었다. 순간 맞은 편에 앉아있던 남편이 나를 향해 말을 했다.
  “수술이 잘 끝났다니까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고.”
  잠시후 간호사가 우리 쪽으로 오더니 에릭을 불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에릭의 뒤를 좇아가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내 자리로 돌아와 주저앉았다. 재희가 맨 먼저 나를 찾을 줄 알았는데 에릭을 먼저 찾았다는 섭섭한 마음이 잠시 스쳤지만 훌훌 털어버렸다.
  이십여 분이 지나서 에릭이 나를 향해 총알처럼 뛰어왔다. 나는 에릭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눈은 충혈이 돼 있었다.    
  “올라가 보세요. 재희가 어머니를 찾아요.”
  에릭은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는지 갈아앉은 소리로 말을 하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에릭한테 재희가 어떠냐는 말을 물어볼 틈도 없이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303호 병실 앞에 “스미스, 재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스미스’라는 미국 성이 재희의 이름 뒤에 붙어있다는 것이 낯설었다.
  재희는 눈을 감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링거가 걸려있는 스탠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다리에 뭔가 뭉클한 게 닿았다. 넙적한 가오리 모양의 오줌 주머니가 걸려있었다. 주머니에 담겨있는 붉으스름한 오줌이 내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재희의 손을 잡으려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힘없이 늘어진 팔목에 주사바늘이 두 개나 꽂혀 있었다.
  “재희야! 눈 떠봐, 엄마야.”
  “응, 어-엄마? 음.”
  딸은 눈을 감은 채 갖 말을 배우는 세 살짜리 아이같이 혀 짧은 소리를 냈다.
  “수술이 다 잘 됐대,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고 쉬기만 하면 돼.”
  재희는 여전히 눈을 못 뜬 채 신음 소리만 냈다. 아직도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재희의 바짝 마른 입술을 바라봤다. 갈라진 입술에 마른 피가 엉겨 있었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목구멍으로 울컥 올라왔다. 나는 그것을 목구멍이 아프도록 꿀꺽 삼켰다.
  “엄마! 어깨, 어깨 좀 주물러 줘!”
  마른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후다닥 놀라 떨어지려는 눈물을 손등으로 쓱 문질러버렸다.
  “응, 그래, 그래.”
  순간 재희가 발이라고 했나 아니면 어깨라고 했나 하는 착각이 들었다. 급하게 발 쪽으로 가려다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스탠드를 넘어뜨릴 뻔했다. 나는 재희의 어깨를 두 손으로 꼭꼭 눌렀다. 한참을 주무르다보니 손이 멍멍해지며 감각이 없어졌다. 자궁 제거 수술을 했는데 배가 아프지 왜 어깨가 아픈 것일까. 어깨에 다른 이상이 온 것은 아닐까. 왜 어깨가 아픈데? 하는 말이 입 안에서 우물댔다.
  ‘라프로스코피 라고 배를 길게 째지 않고 구멍을 다섯 군데 뚫어서 수술을 할 거래. 배에 공기를 넣어 부풀린 다음에 그곳에 기계를 넣어 수술을 한대나 봐. 그래서 마취에서 깨어나면 공기가 어깨로 빠져나가느라고 어깨가 무척 아풀 거라는데...’수술 전날 재희가 나에게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엄마! 졸-려, 나 잘래.”
  어깨를 주무르는 동안 죽은 듯이 있던 딸은 가물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아기의 응석을 받아주듯 ‘그래, 그래’하며 나는 계속 어깨를 주물렀다. 나는 딸의 파리한 얼굴을 들여다봤다. 이제 스물여덟밖에 안된 딸의 자궁이 제거됐다. 임신을 해보지도 못 한 채 폐경이 되었다. 내 자궁을 딸에게 이식할 수는 없을까.
  재희의 얇은 눈꺼풀이 잠자리 날개처럼 파르르 떨렸다. 희고 맑은 피부를 가진 재희의 얼굴은 현광등 불빛아래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순간 재희가 숨을 쉬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재희의 가슴에 귀를 갖다댔다. 가늘고 여린 소리가 들렸다. 목에 푸른 핏줄이 팔딱팔딱 미세하게 뛰었다. 그 목은 사슴의 모가지처럼 애잖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했던 재희의 목이 이렇게 가는 줄을 처음 알았다. 그런 재희에게 암이 걸릴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았단 말인가. 갑자기 나는 재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재희는 수술한 다음날 오후부터 몰핀을 끊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이를 악물고 일어나 오줌 주머니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링거가 걸려있는 스탠드를 밀고 아주 천천히 걸음마를 하기 시작했다. 걸어야 빨리 퇴원을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재희는 철저히 지켰다.
  재희는 수술한 지 사흘째 되는 날 퇴원을 했다. 오줌 주머니를 한 손에 들고 엉거주춤 구부린 허리를 에릭이 껴안다시피 받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재희의 모습은 며칠 사이에 제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보였다.
  “엄마! 집에 오면 잠을 잘 것 같았는데 전혀 잠을 못 자겠어.”
  “이제 수술도 다 잘 됐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잘 먹고 잘 자는 것만이 네가 할 일이야, 알았지!”
  나는 그저 재희가 내 눈앞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되었다.
  “엄마! 내 잠옷 하나 시원한 걸로 사다 줄래?
  “그래, 금방 갔다 올게.”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밖으로 뛰어나와 가까운 백화점으로 갔다. 갑자기 마땅한 잠옷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재희가 어떤 스타일 잠옷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에 부옇게 안개가 낀 것처럼 앞이 시원치가 않았다. 며칠 사이에 눈이 나빠졌을까. 눈을 자꾸만 비벼대며 잠옷을 들추겼다.
  “엄마! 어디있어!”
  갑자기 뒤에서 재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나는 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몇 발짝 건너 재희 또래 한국 여자가 자기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도 나는 재희가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아 주위를 휘 둘러봤다. 얼마 전만 해도 나는 재희랑 쇼핑을 했었다. 재희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재희 잠옷 하나도 내 마음대로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아! 재희가 살아있다. 이제 완쾌가 되면 재희랑 한국에도 갈 수 있다.’
  부러운 마음을 거두고 다시 잠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새 잠옷을 입으면 잠이 올 것 같다고 하더니 재희 방에는 새벽녁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다음 날 오줌 주머니에 불그스름하게 피가 고였다. 순간 다른 증상이 나타난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다행히 수술할 때 남았던 찌거기가 고였다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하루 하루가 천년같이 길었다. 가끔가다 재희는 배에 가스가 차 숨을 쉴 수가 없다며 괴로워했다. 그 아픔을 고통을 내가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항암치료를 받는 병실에는 발을 올려놓을 수도 있고 뒤로 젖힐 수도 있는 안락의자가 세 개 놓여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오른쪽 의자에 재희는 긴장된 얼굴로 앉았다. 재희는 다섯 시간 동안 항암주사를 맞아야 했다. 간호사는 발판을 올려줬다. 재희는 발을 그곳에 올려놓고 자기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나도 재희의 가늘고 긴 팔에 눈이 갔다. 저 긴 손가락으로 재희는 피아노도 잘 쳤고 그림도 잘 그렸었다.
  그런데, 그 하얗고 가는 팔목에 무자비하게 정맥주사 바늘이 혈관을 헤집고 들어갈 것이다. 그 바늘 끝을 타고 항암화학약이 혈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암세포와 무섭게 싸우게 되겠지. 그러는 동안 재희의 몸은 온 기관에 비상이 걸려 몸부림을 치게 될 게 아닌가.  
  항암주사를 맞기 전에 토하지 않는 주사를 삼십 분 동안 맞았다. 주사가 들어가자마자 재희는 어지럽다며 눈을 감았다.
  나는 아랫배에 뭔가 묵직한 것이 밑으로 빠져 나올 것만 같아 재희 옆에 있는 간이의자에 엉덩이를 조금 걸쳤다. 배에 돌이 짓누르는 것 같은 압박이 가해졌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소변은 쨀끔댔고 오줌 뒤끝이 따가웠다.
  재희와 마주한 의자에는 몸 무게가 삼백 파운드 정도 돼 보이는 뚱뚱한 여자가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오랜지색과 핑크색 꽃무늬로 된 하와이 무무 같은 옷을 입고 알록달록한 샌들을 신었다. 베이지색 밀짚모자에는 옷 색깔과 비슷한 리본이 벨트처럼 묶여있어 시원해 보였다. 모자가 썩 잘 어울렸다. 재희에게도 저런 모자가 곧 필요하게 될 것이다. 저 여자는 무슨 암으로 이 병실에 와 앉아 있는 것일까. 암에 걸린 사람 같지 않게 화려하고 생기가 있어 보였다.
  재희가 언제 눈을 떴는지 힘없는 소리로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어디서 본듯 한데, 어디서 사세요?”
  붙임성 좋은 재희는 내 궁금증을 알아챈 듯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그녀는 반쯤 감겨있던 눈꺼풀을 천천히 위로 치켜올렸다. 그리고는 재희를 바라봤다. 파란 눈이 흰 피부와 어울려 예뻤다.
  “나는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되었는데 자궁암이래요.”
  재희는 갈증이 나는지 빨대로 물을 깊히 빨아들였다. 가늘고 긴 목줄기가 턱에 닿을 듯 치받치다가 힘겹게 서서히 내려왔다.
  그녀는 재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안 되었네요. 그래도 나는 아기를 한 명 낳았으니 당신보다는 조금 낫다고 할까요. 난 결혼해서 오 년을 기다렸지만 임신이 되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인공 수정을 해서 딸을 임신했죠. 입덧까지도 즐겁게 하고 있던 차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나 주위에서들은 아기를 없애라고 했지만 아기는 내 생명과 같았어요. 나는 임신 상태에서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고 항암치료도 견뎌냈죠. 사 년 전 일이었는데 다시 자궁암이라잖아요. 그래서 지난 달에 자궁을 들어냈고 지금 항암치료를 다시 받고 있는 거랍니다. 난자를 채취해서 저장했다가 아기를 더 갖을 수도 있다는데, 하나도 감사하죠.”
  나는 그녀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수술 시에 재희의 난자를 채취해서 저장했는지 의사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었다. 우선 내 딸, 재희가 살아야 했다.
  그녀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는 재희의 표정을 흘끔 살폈다. 재희의 표정으로는 난자를 채취해 놓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재희의 건강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얼른 되돌렸다. 그녀의 손에 들려진 책을 보며 재희는 말했다.
  “책을 많이 읽나봐요.”
  그녀의 손에는 요즘 베스트 셀러인 조엘 어스틴의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있었다.
  “나는 책이 좋아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항암 치료가 끝나면 다시 일을 할 거예요.”
  암 치료도 마치 일상적인 일 중에 하나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달력으로 눈길이 갔다. 엄마와 딸이 야생화가 만발한 꽃밭에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평화로운 모네의 그림이었다. 나는 그 그림을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어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항암주사를 맞는 날과 방사선 치료를 받는 날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제 육 주에서 반이나 지나갔다.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반을 해냈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재희에게 맞는 예쁜 모자를 사러 가야겠다.
  나는 오랜 만에 집에 들렀다. 서울에 있는 영주한테서 음성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숨가쁜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다이알을 돌렸다.
  “어머니, 어떻게 됐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언니한테는 알리지 않으려 했는데...... 그래도 알려야 될 것 같아서, 뇌에 혈관이 터졌대.”
  그러면 내가 이 상황에서 한국에 나가야 하나, 아니야 나갈 수 없어. 안돼. 나는 재희를 돌봐야 해. 동생은 내 계산을 텔레파시로 알아차린듯 시원하게 말했다.
  “언니, 절대 나오지 마! 섭섭해도 할 수 없잖아, 어머니는 평소 소원대로 편안하게 잘 가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재희나 잘 간호하고 있으라고, 알았지!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가 뚜뚜거렸다. 수화기를 든 채 창밖을 바라봤다. 붉은 노을이 막 산등성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노을 속에 어머니가 ‘얘야, 걱정하지 마라, 재희는 꼭 나을 거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연세는 팔십이었다. 남들은 입을 모아 ‘호상’이라고 말하겠지만 나에게는 백 살의 죽음에도 호상이 될 수 없었다.
  “항공사에 있는 친구한테 비행기표를 부탁해 놓았는데 한국에 다녀오지 그래.”
  나는 남편의 호의에 깜짝 놀랐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유산 때문에 우리 부모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남편이었다.
  “됐어요, 재희 때문에 떠날 수가 없어요.”    
  재희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지 못한 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보다 재희가 살아있다는 현실이 나에겐 더 소중했다.
  ‘그래도 바람 안 피고, 때리지 않으니 다행이지. 별 사람 다 있느니라. 워낙 없이 살아서 돈이 좀 짠 것이 험이다만...팔자거니 생각하고 재희를 봐서 꾹 참고 살아야 한다.’
  어머니는 딱 한번 그렇게 말씀하셨다. 재희가 살아주기만 한다면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할머니가 내 대신 가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재희는 항암 주사를 맞으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 어머니가 재희 대신 가 주려고 갑자기 쓰러진 거 알고 있어요. 우리 재희 살려주세요.’
  여기서 더 힘든 일이 닥친다면 어떡하나, 잡념이 꼬리를 물었다.
  ‘재희야! 이번 일을 잘 이겨내면 되는 거야. 너는 언제나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을 잘 바꾸었지.’
  나는 눈을 감고 있는 재희의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 전보다 얼굴이 한결 평화로웠다. 그런 재희가 내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아픔은 정말 대신해 줄 수가 없었다. 자식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아팠다.
  내 자궁을 딸한테 이식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아기를 낳을 수만 있다면, 필요 없는 자궁을 내가 갖고 있다는 것이 딸한테 미안했다.
  ‘만약에 아기를 낳을 생각이 있다면 난자를 채취했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의 자궁을 빌려서 아기를 가질 수도 있어요.’뚱뚱한 여자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은 재희의 건강밖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나에게 지금 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으니까.
  재희가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암 병실을 기웃거렸지만 재희 같이 젊은 환자는 없었다. 거의가 허옇게 진이 쇠한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 같은 노인네들이었다. 그런데 재희만 새파랗게 젊은 환자였다. 왜, 재희가 이 낯선 곳에 와 있어야 하나. 억울하기도 하고 누구에겐가 화가 나기도 했다.
  오 주째로 접어들면서 재희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날마다 받는 방사선 치료보다도 더 힘든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 항암 치료였다. 다섯 시간 동안이나 항암 주사를 맞고 다 저녁이 되어 에릭에게 온몸을 의지하고 재희는 집에 돌아왔다.
  재희는 토하지 않는 주사를 맞았다고는 하지만 온종일 입이 써 아무 것도 먹질 못했다. 백혈구가 2.8로 떨어져 외부와의 접촉을 삼가해야만 했다.
  “저항력이 떨어져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바이러스에 무방비 상태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열이 나면 급히 응급실로 들어오세요.”
  의사의 당부였다. 날마다 숨막히는 순간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중에도 에릭은 회사 점심시간에 병원에 들렀다가곤 했다. 그러는 에릭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없이 어떻게 긴 결혼생활을 지탱해 나갈 것인가.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에릭은 퇴근해서 들어오자마자 재희의 등을 토닥거리고 이마에 키스를 했다. 그는 마켓에서 사온 유기농 닭, 감자, 브로컬리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런 에릭의 모습은 진지했다. 에릭의 젊고 단단한 등이 재희를 임신했을 때 남편의 등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재빠르게 음식을 만들어 쟁반에 놓고 작은 꽃병에 노란색 프리지어 한 가지를 꽂아 운치를 냈다. 재희의 부성부성한 얼굴에 생기가 잠시 반짝했다. 재희는 거의 먹지를 못했다.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것이 없고 항상 입이 쓰고 토할것 같다고 했다. 에릭은 강요하지 않았지만 재희가 닭고기 한점, 브로컬리 한 개를 더 먹는 것에 따라 에릭과 내 기분이 좌우됐다.
  “어머니, 저녁 좀 드시죠?”
  “괜찮아, 내 걱정은 하지마! 나는 건강하니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제 만들어 놓은 미역국과 갈비찜에 기름이 허옇게 껴 있었다. 갑자기 비위가 상해 입 안에 신물이 역겹게 고였다. 크란베리 쥬스를 유리잔에 가득 따랐다. 천천히 조금씩 마셨다. 무엇을 먹어도 입맛이 쓰니 익모초를 입 안에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쥬스는 방광염에 좋다하니 억지로라도 마시는 것이다.
  갑자기 딩동하는 벨 소리가 들렸다. 에릭은 닭고기 한 점을 입 안에 집어넣어 마치 풍선을 불 때처럼 양볼이 부풀어 있었다.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네프킨으로 쓱쓱 닦으면서 에릭이 문을 열었다. 꽃 배달원이 화려한 야생꽃이 가득 꽂혀 있는 큰 유리화병을 들고 서 있었다. 갑자기 실내가 환해지며 향기가 방 안 가득히 퍼져나갔다.
  에릭은 꽃 속에 꽂혀있는 작은 카드를 꺼냈다. 그는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카드를 다시 꽂아 딸이 누워있는 침실로 가져갔다. 그 꽃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누가 보낸 꽃이야?”
  나는 재희에게 물었다. 재희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야, 일주일에 한 번씩 아빠가 내게 꽃을 보내 주셨어. 엄마한테 말 안해서 미안해.”
  나는 당연히 에릭이 사다놓은 꽃이라고 알고 있었다. 남편이 자기 돈으로 꽃을 사다니, 쓸데없는 일에 그것도 시들어버리면 그만인 꽃에 돈을 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일단 그의 수중에 들어간 돈은 다시 꺼내 쓰지 않는다는 자기만의 철칙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를 그렇게 알고 있었다.
  “엄마! 이번 일로 인해 아빠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 냉정하고 이기적인 아빠, 한 번도 따뜻한 말을 아빠한테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빠가 열심히 꽃을 보내주셨어. 짧은 글이지만 ‘우리 가족을 사랑한다. 내 딸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말이 나에게 큰 희망을 갖게 해주셨어.”
  남편이 그렇게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재희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재희가 항암 치료를 받은 다음날 오랜만에 나는 집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잠에 빠졌다. 꿈에 나는 재희가 낳은 아기를 받아 품에 꼭 안고 있었다. 그러다 갓난아기가 갑자기 자박자박 걸어서 빠이! 빠이를 하더니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뒤를 좇아가다가 낯선 여자가 안고 있는 재희의 아기를 빼았었다.
  꿈에서 깨고나니 아기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기분이 찝찝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시계는 새벽 한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와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꿈의 연장인  듯싶게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재희가 화장실에서 쓰러졌어요. 지금 911을 불렀는데 병원으로 갈 거예요. 직접 병원으로 오세요.”
  나는 갑자기 바보가 된듯 에릭의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머릿속에서 정리를 했다. 재희가 쓰러졌다는 말만 귀에서 맴맴거렸다.
  나는 남편의 방문을 급하게 두드렸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에릭이 먼 곳에서 나를 보고 손을 들었다. 나는 한 걸음에 뛰어갔다. 재희는 산소호흡기에 덮혀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팔에는 정맥주사가 꽂혀 있었다.
  간호사가 친절하게도 물 한 컵을 갖다주며 내 어깨를 감싸 의자에 앉게 했다. 간호사는 다행히도 한국 간호사였다. 나는 간호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바람에 물이 찰랑하고 바닥에 쏟아졌다. 떨리는 내 손을 그녀는 꼭 잡아줬다.
  “항암 치료를 받다가 그렇게 됐나 본데요, 곧 깨어날 거예요. 약이 너무 독해서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따님은 젊으니까 곧 회복될 거예요.”
  내 딸, 재희가 눈을 떴다.
  “재희야! 엄마야, 엄마.”
  “재- 희- 야!.
  남편은 목이 메이는지 코 맹맹이 소리로 재희의 이름을 불렀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재희의 이름을 불렀다.
  “재희야, 아빠다. 아빠를 용서해라.”
  남편은 울고 있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듣질 못했다. 그는 설령 자신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평생 ‘잘못 했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게 눈물을 보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가 딸 앞에서 그리고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재희야! 울면 몸에 나빠, 울지마.”
  남편은 재희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손은 투박하고 매듭이 튕겨져 나와 있었다. 우직하고 고집스런 그의 성격을 손이 말해 주는 듯했다.
  재희가 겨우 눈을 뜨고 나를, 아빠를 천천히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마지막 남은 두 번의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나는 재희의 옆에 붙어서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직장에 나가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내 생활에 처음으로 감사했다. 무료했던 지난 시간들은 이제와서 생각하니 사치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서서히 내 가슴 깊은 곳에서 파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재희가 소파에 누워 텔리비전을 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침대 시트를 걷고 베갯잇을 벗겼다. 배갯잇에 눈물 자국이 얼룩 져 있었다. 나는 그 베개에 내 얼굴을 묻었다. 재희의 눈물 냄새를 나는 깊히 호흡해 가슴을 맑게 씻어냈다.                                                                                                                                                                                                                                                                                                                                                                                                                                                                                                                                                                                                                                                                                                                                                                                                                                          
  매일 아침 재희를 데리고 나는 산책을 나갔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며 햇빛을 쪼였다. 그동안 몸무게가 줄어 사이즈 육에서 사로 내려갔다. 다리는 그 사이에 휘청거리고 허리에 힘이 없어 보였다. 걸음마를 시키듯 천천히 걸었다. 한풀 꺾인 초가을 볕이 어깨에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군데군데 붉은 빛이 감도는 낙엽이 발에 밟혔다.
  한적한 길 저 편에서 두 살짜리 사내아이가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뒤뚱거리며 뛰어왔다. 아기는 뒤통수가 너무 튀어나와 잘못하면 뒤로 발랑 넘어질 것같이 아슬아슬했다. 재희도 나도 서로가 그 아이를 쳐다봤다.
  “엄마! 저 아이 너무 귀엽다. 그치?”
  재희는 유난히도 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결혼하면 아이를 다섯은 낳을 거라고 했었다. 건성으로 들었던 재희의 말이 가슴을 송곳으로 찔렀다. 문득 수술 시에 재희의 난자를 채취해 저장해두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준비하며 혼자만의 비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낮에 연락도 없이 남편과 에릭이 재희네 집으로 들어왔다. 그들도 뭔가 즐거운 비밀을 품고 있는 것처럼 신이 나 보였다.  
  “재희! 우리도 아기를 갖을 수 있대. 아버지와 같이 의사를 만나보고 오는 길이야.”
  재희와 나는 무슨 영문인 줄을 몰라 그들의 얼굴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에릭은 속눈섭 깊은 곳에 숨겨진 파란 눈을 껌벅거렸다.
  재희는 아빠를 바라봤다. 나도 재희의 시선을 따라 남편을 바라봤다. 남편은 생전 보지 못했던 온화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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