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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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둥지

2007.01.23 00:49

윤금숙 조회 수:850 추천:102

창밖에서 재잘대는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창문을 가만히 여니 봄기운이 코끝을 싱그럽게 했다. 어디선가 자스민 향기가 은은하게 기다렸다는 듯이 열린 창문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얼마 전부터 주인의 허락도 없이 새들이 대담하게 처마 밑에 둥지를 짓고 있었다. 등이 윤기나는 검은 빛에 날개와 꽁지가 길고 배가 흰색인 것으로 봐서 제비 종류인 것 같다. 많은 집들 중에 우리집 처마를 택해서 찾아 왔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다.

  종일토록 새들은 지푸라기와 흙을 물어날랐다. 파닥대는 날개짓과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소리는 주위를 생동감에 넘치게 했다. 무슨 말을 그리도 많이 재잘거릴까. 아마도 한 곳에 머물고 있는 나무들에게 세상 얘기를 전해주나 보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도 잘 드는 명당자리에 새둥지는 자리를 잡았다.  

  알을 품고 있는 어미새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그 눈은 희망과 기다림이 있기에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아침마다 커피 한잔을 끓여 들고 나는 뒷마당을 서성인다.

  새벽은 아직도 부옇게 빛을 머금고 밤새 어둠을 홀로 지켰던 초생달을 조용히 밀어내고 있다. 자욱한 안개 속에 이슬이 내 피부를 촉촉히 적신다. 밤새 내렸던 이슬을 담뿍 머금은 꽃들은 은구슬을 대롱대롱 잎마다 줄기마다 매달고 있다. 물방울만 그리는 화가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다. 꽃들은 자기의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끌기 위해 바쁘게 치장을 하고 있다.

  어디선가 벌새가 인기척에 놀라 후두둑하고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먼 발치에서 새둥지를 바라보았다. 새끼가 부화될 때까지 어미새는 알을 품고 인내해야 되는 것이다. 알을 몇 개나 품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몇 마리가 되든 한 알도 실패하지 않고 다 부화되기를 기원해 본다.  

  작년 봄에 이사를 온 바로 직후였다. 아직 뜰이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친구가 감나무 한 그루를 대문 앞에 가져다 놓았다. 자리가 잡히면 햇볕 잘 드는 곳에 심기로 하고 당분간 그곳에 방치해 두고 있었다.      

  어느 날 감나무에 물을 주려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 새 집 좀 봐.” 감나무는 화분에서도 봄을 놓칠새라 연초록 새잎을 무수히 달고 있었는데 그 속에 새둥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은 감나무 가지가 굵지 않아 새둥지는 불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짚으로 엮어진 새둥지는 작은 대바구니처럼 섬세하고 앙증맞았다. 이사를 오자마자 새둥지가 감나무에 자리를 잡았으니,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조심스럽게 창문으로 내다보니 새가 둥지를 틀고 명상에 잠겨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서 앞마당 공사가 시끄럽게 시작되었다. 소음과 먼지가 뿌옇게 날라와 집 앞에 세워놓은 차가 황토흙을 뒤집어 써 말이 아니었지만 나는 새둥지가 더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나는 궁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감나무로 다가가 새둥지를 들여다보았다.

  어찌된 일일까? 어미새는 간 데 없고 알 세개만 핏줄이 들여다보일듯 맑은 크림색을 띄고 알몸으로 새둥지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미새가 다시 나타나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어미새는 종내 나타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새둥지를 들어내어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궁리 끝에 나는 새털을 구해다가 살그머니 덮어주고 볕이 잘 드는 응접실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행여 새털로 따뜻하게 덮어놓으면 부화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서였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되도록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새둥지에 있는 알들이 꼭 부화되서 훨훨 날아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 주위에 친구들은 새들이 벽을 망쳐 놓으면 페인트를 다시 해야 되니 호스로 물을 뿌려 새둥지를 없애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벽이 어떻게 된들 무슨 상관이랴!      

  어느 날 새벽이었다. 창밖에서 가늘고 여린 새소리가 들렸다. 아! 기다리던 새 생명. 드디어 내 바람은 이루워졌다. 작은 기쁨이 가슴에 가득찼다. 새둥지에 있는 새끼들의 몸은 보이지 않고 주둥이만 어미를 향해 덤벼들듯 찍찍대고 있는 것이었다.  

  어미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고 있다. 머지않아 새끼들은 스스로 둥지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멋지게 날개를 펼칠 것이다. 새끼를 날려보낸 어미새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내 마음 한 구석이 찡해져 온다.

  나는 겨울이 되어 새가 떠나버린 후에도 텅빈 새둥지를 없애지 않고 내년 봄을 또다시 기다릴 것이다.

  언젠가는 내 자식들도 부모의 둥지를 떠날 것이며 그때 나는 빈둥지에 새로운 꿈과 희망을 채워넣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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