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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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다도해로 떠난 삼촌

2007.02.06 12:27

윤금숙 조회 수:847 추천:80

다도해로 떠난 삼촌
                                            
  
  며칠째 장마비가 계속되고 있다. 끝일듯 하다 다시 초저녁부터 후득후득 창가를 두드리고 있다. 빗소리를 외면한 채 외할머니는 열심히 곰방대를 빨아댄다. 긴 곰방대를 목줄이 불거지도록 빨아올리고는 모든 한을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 길게 내뿜는다. 외할머니의 한이 담배연기 속에서 조금씩 태워져 사라진다. 아마도 그 한은 평생을 태워도 계속될 것이다.
  장마철만 되면 외할머니의 병은 다시 도져 초저녁 단잠을 잃어버린 채 동그랗게 앉아 계신다. 긴 곰방대에서 뿜어내는 연기 속에 삼촌의 모습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어제 일은 잊어버려도 몇십 년이 지난 그 일은 아직까지도 할머니의 눈에 밟히나 보다.
  거센 풍랑 속에 웬만한 배들을 감춰버리고도 말이 없는 그 바다. 할머니는 분명 그렇게 앉아 그곳을 머릿속에 그렸을 것이다. 그런 모습의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나도 삼촌을 생각했다. 그리고 삼촌을 앗아간 바다를 원망하고 두려워했다.    
  나른한 봄날, 초등학교 사 오학년인 우리들에게는 소꿉장난을 하고 고무줄 넘기를 해도 하루해가 길기만 했다. 지루할 무렵쯤 어디선가 낯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간다 간다 떠난 항구 안개 속에 떠난 항구.....” 멀리서 찌릉찌릉 하는 자전거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삼촌의 구성진 노랫소리였다.
  친구들을 뒷전에 두고 나는 대문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가 삼촌의 자전거 뒷자리에 달랑 올라 앉는다. 오빠가 없던 나에게 삼촌은 나의 자존심이었고 특히 남자아이들 앞을 지날 때 내 턱은 한껏 치켜지곤 했다. 그런 날 밤엔 꿈에서도 너무 신이 나서 까르르 웃었다.
  골목을 돌고 들어온 삼촌은 대청마루에 벌렁 들어누워 네 활개를 쫙 펴고 “간다 간다...”를 멋들어지게 처음부터 끝까지 불렀다. 노래가 끝난 후 팔벼개를 하고 천장을 초점없이 바라보는 삼촌의 눈에는 항상 물기가 촉촉히 고이는 것 같았다.
  바람처럼 불쑥 나타났다가는 큰키를 건들거리며 바람처럼 훌쩍 나가버리는 삼촌,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그 뒷모습은 왠지 어린 내 마음을 슬프게 했다.
  어느 해질 무렵 삼촌은 불쑥 나타나 나를 데리고 어느 처녀를 만나 무성영화를 보러 갔었던 적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남녀가 소달구지 뒤에 나란히 앉아 어디론가 가고 있던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오래도록 어린 내 마음에 남겨졌다. 난생 처음 본 영화는 신기했고 특히 마지막 장면은 나를 뭔가 모르게 불안하게 했다. 어쩐지 삼촌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어딘가로 떠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딸 여섯에 아들이 둘인 집안의 큰딸이다. 삼촌은 여덟 형제 중에 막내라 큰누나하고는 열 여섯살이나 차이가 있었다. 삼촌은 후리후리하게 큰키에 호남형인 외할아버지를 닮았고 큰삼촌은 작달막한 키의 외할머니를 닮았다고들 했다. 두 형제는 내가 보기에도 외모부터 성격 모든 것이 달랐다.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큰삼촌이 집안의 가장인 셈이었다. 큰삼촌은 자기가 희생을 해서라도 동생을 자기의 이상형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일등을 놓쳤다고 작은삼촌을 때리는 것을 보고 나는 큰삼촌을 싫어했다. 그래서 더 작은삼촌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작은삼촌은 나름대로 힘들 때마다 큰누나인 나의 어머니를 찾아와 마음을 달래고 가는 것 같았다.
  그후 얼마 동안 작은삼촌은 공부하러 먼 섬에 가 있어 우리 집엘 오지 않았다. 삼촌이 가 있다는 섬에 가보고 싶었다. 삼촌과 바닷가에서 자전거를 타고, 똑딱선도 타 보는 상상를 해 보곤 했다. 편지 한장 보내지 않는 삼촌이 섭섭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삼촌이 불렀던 노래를 흥얼댔다.
  그러다가 삼촌을 잊어버릴만 할 어느 날, 어머니는 허둥지둥 외할머니 집으로 가서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로 알았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눈이 퉁퉁 부어서 돌아오셨다.
  작은삼촌이 죽었다는 것이다. 가족을 보러 섬에서 나오다 다도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혔단다. 그날 밤 무서운 풍랑이 일고 파도가 나를 덮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삼촌을 삼킨 바다가 너무나 무서웠다.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금방 물살이 허연 거품을 물고 나를 덮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후 바다는 지금도 내 머리에서 무서운 곳으로 남아있다.
  나는 차츰 말이 없어지고 우울한 아이로 변했다.
  외할머니는 큰딸을 찾아와 서럽게 서럽게 울다가 돌아가곤 했다. 큰아들 앞에서는 차마 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할머니는 서러운 한을 가슴 깊은 곳으로 접어 넣고, 대신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내 눈에도 할머니의 긴 곰방대를 피는 모습은 한을 조금씩 태워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여졌다. 긴 곰방대에 온 마음을 의지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외할머니 앞에서는 아무도 “바다”라는 단어를 말할 수가 없었다.
  스무 살이 채 안된 삼촌, 외모가 특출하고 똑똑했던 삼촌은 꿈을 펴보지도 못한 채 바다로 홀연히 떠나고 말았다. 작은삼촌에 대한 큰삼촌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또 작은삼촌의 꿈은 무엇이었기에 넓은 곳, 바다로 나가 그의 꿈을 이루려고 했을까.
  외할머니의 자식에 대한 소박했던 바람은 아마도 자식을 눈 앞에 두고 사는 것이었을 게다.
  이제서야 할머니의 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으로 나에게도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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